글제목 : 아들과 둘이서 한 추석연휴 산행 조회수 : 1952
글쓴이 : 본드jr 날짜 : 2013-09-22 14:36:00 추천 : 1 [추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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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적으로 시니어가 된 것이 확실하다. 언제부터 인가 내 글의 내용에 딸이나 아들 이야기가 자주 담기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아들 눈에 아빠가 쓸쓸해 보였나 보다. 6월에 누나가 출가하고 식구가 한 명 줄어든 헛헛함을 표현한 것이 직장 2년차를 바쁘게 보내고 있는 아들 눈에 그렇게 비쳤나 보다. 지난 8월에 한 여름인데도 아빠랑 등산을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아들과 둘이서 함께 할 프로그램이 없어서 오랫동안 많이 아쉬워 하고 있던 참이다. 어쩌다 우리집에 음악공연 티켓 2장이 오면 으레 아내와 딸 차지 였다. 내가 기막힌 음치라서 설령 4장이 와도 무슨 핑게를 대고라도 나는 빠지게 되므로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 중학생 때 까지는 아들과 둘이서 산에도 가끔씩 갔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대학생 때 동네에서 당구를 몇번 같이 쳐 본 것 밖에 기억이 없다. 밖에 나가 맥주 한 잔 하자는 데도 동의 한 번 하지 않던 아들이라 반갑고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바쁜 청춘이 시간내기가 쉽지 않았다. 

 

등산이라야 멀리 높은 산에 간 것도 아니다. 내가 사는 송파구에서는 남한산성은 뒷산이나 마찬가지다. 계획이나 준비가 없어도 둘이 시간만 맞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다. 뒤풀이까지 포함하여 왕복에 4-5시간이면 충분하다. 드디어 추석연휴 4일차에 부자간의 작은 소원(?)을 이루었다. 이글을 읽는 분 중에 뒷산 한번 다녀오고 호들갑이라 생각할 지 모른다. 아니다. 

 

긴 명절연휴의 끝자락이라 발 디딜틈 없이 등산객이 많다. 혼자 온 사람,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부부, 친구들 끼리, 때로는 동네 산이라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도 있다. 아빠와 딸, 엄마와 딸이 온 가족도 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그림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나혼자 다니면서 느끼던 것을 생각해 봐도 아빠와 장성한 아들이 둘이 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새삼 오늘 산행이 즐겁다. 자랑스럽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사나이 세계인가? 모여서 정담 나누는 게 서투른 남자의 세계? 그리이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것 처럼 아버지와 아들도 경쟁관계?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안노나? 모두 틀린 말이다. 남남간의 갈등(?)도 전혀 아니다. 삶 나름이다. 산을 오르다 보니 집안에서 대화하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여러번 대화하던 주제도, 직장 2년차의 고뇌도, 결혼문제도 더 폭넓게 표출되고 해줄 말도 자연스럽게 생산된다. 어쩌다 함께하는 밥상머리, 밤 늦게 억지로 틈낸 시간에서의 내용과는 긴급성도 다르다.

 

오늘은 내가 너무 약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 아직 30도 덜된, 한참 청년인 아들에게 보조를 맞춘다고 초반에 너무 빠르게 시작했다. 자주 다니던 길이고 요즘에도 가끔씩은 논스톱으로 정상까지 올랐으므로 나름으로는 자신이 있었다. 1/3쯤 올라서 내가 지쳤다. 얼굴이 하얗게 되었음을 스스로 느꼈다. 정상에 4번이나 쉬고서 올랐다. 아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욕심이 오히려 아빠를 나약하게 보여주었다. 

 

아빠인 내가 오히려 한가지 인식을 확실히 했다. 나는 육체적으로도 시니어다. 앞으로는 내 보조에 맞추기로 원인분석을 마치고 한달에 한번이라도 함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점이 오늘의 제일 큰 보람이다. 무엇보다 아들과 소통할, 결혼전에 부자간의 추억을 더 깊게 할 기회를 약속한 날이어서 기쁘다 

 

추억이 많으면 덜 외롭다. 두사람 사이에 추억이 없으면 마주 하고도 외롭다. 초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해 있는 일본에서는 시니어의 3대 애로사항이 경제 건강 고독이란다. 노년의 외로움은 그 때 노력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한 추억이 많다면, 결혼하여 한집에 사는 울 안이 아닐지라고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작은 보험 하나를 아들이 들어 주겠다 하니 생각만 해도 나는 참 행복하다.

 

덧 글
  • 알지 2013-09-23 16:56:00 댓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머지 않은 일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