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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J씨에게 들려드리는 ‘보물섬’ 이야기 조회수 : 3331
글쓴이 : 파란흙 날짜 : 2012-01-11 18:52:00 추천 :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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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에게 들려드리는 ‘보물섬’ 이야기




밤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는 하나, 나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시작했는지요? 나는 믹스 커피 두 봉을 털어 넣고 휘저어 죽 같은 커피 한 잔 했다지요. 더운 커피를 마시노라니 모처럼 아무도 없는 아침, 문득 추억이라는 걸 뒤적이고 싶어졌어요.

장롱 위 상자를 꺼내 언젠가부터 시대로부터 버려져 삽시간에 고색창연해져버린 VHS 테이프들을, 버릴까 어쩔까 궁리하며 뒤적거렸습니다. 그러다 <애니메이션 보물섬>을 발견하는 순간 주책맞게도 가슴이 ‘두근’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유난히 좋아한 우리 아이들의 어릴 적이 보석처럼 떠오른 게 아니라, 정말로 보물들이 눈에 잡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습니다. 보물섬이라. 눈을 감고 보물섬을 떠올려 봅니다. 누런 황금과 반짝이는 보석이 다 가지지 못할 만큼 들어찬 커다란 상자도 떠올려 봅니다. 갑자기 배부른 느낌이 차오릅니다. 고백... 사는 게 팍팍하다 느낄 때(아주 자주 오는 느낌)는 희한하게도 노다지, 흥부네 박, 엘도라도, 화수분 그리고 보물섬을 떠올립니다. 저열하다 느끼면서도 그럽니다. 참 형이하학적인 인생이구나, 자조적인 웃음도 지으면서요. 물론 나의 형이하학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께서는 내 표정을 잘 짐작하시리라 믿어요.

거실 한 귀퉁이에서 초등학생용 보물섬을 한 권 뽑아 단숨에 훑어 읽습니다. 보물섬을 향한 전력질주, 음모와 배신, 아귀다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현실감이 어린이 책인데도 생생합니다. 속고 속이며 다다른 보물섬에는 또다시 해골 표시만 있고, 그 표시를 따라가면, 텅 빈 구덩이가 있죠. 우리 인생에서 흔히 보는 장면.^^ 늘 보물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간 뒤입니다. 텅 빈 구덩이 앞에서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보물을 차지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두 종류의 사람들은 또다시 삶의 방향, 누구와 편먹을지를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탕을 치고 마는 그 허망한 결말이 뭔가 개운합니다. 어쩌면 보물이 문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죠. 어쩌면, 어쩌면 모두가 원한 건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위험한 항해 그 자체가 아니었나 하는 그런 이상한 생각 말이죠. 그래서,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항해는 오늘도 계속되는 걸 겁니다. 적어도, 한 번 떠나본 이들은 또다시 위험천만한 항해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당신도? 나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어린 시절, 모험이라는 것의 대명사처럼 각인됐던 책입니다. 다른 모험 책들이 판타지를 동반하는 데 비해 이 책은 뭔가 진한 현실감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었죠. 외다리 요리사 존 실버는 지금이라도 골목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람 좋은 인상으로 내게 말을 건네올 것만 같습니다. 어느 순간 그가 낯색을 바꾼 채 내 목을 겨눌 걸 알아도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위험한 뒷골목으로 따라나설 것만 같습니다. 보물섬은 그렇듯 은밀한 위험 뒤에만 존재하는 장소니까요.

보물섬은 어린 시절 모험의 대상에서 나이 들어가면서는 ‘종내 내 것이 아닐 것임을 번연히 알아도 한번쯤 가슴에 담아 두고 살게 되는 그 어떤 꿈’으로 변모합니다. 행복이라는 고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보물섬, 그 황금과 보석은 신기루같은 행복의 딴 이름일 겁니다. 온화한 행복 말고 더 찬란하고 모두가 부러워 할 행복은 절대로 내가 있는 이 비루한 곳에 있을 것 같지 않고, 출렁이는 대양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떠나야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이죠. 억만금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해도, 그건 보물섬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황금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악전고투 끝에 내가 찾아내야 하는 그런 거죠. 로또라는 네온사인 번쩍이는 값싼 이름 뒤로 숨어버린 인생역전을 향한 극한 도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빛나는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기 위해 인생에 한번은 도전하고야 말 동해 깊은 바다 속 고래 같은 신화. 그것이 보물섬, 그 보물이니까요.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곳을 향해 거친 바다를 달리는 이들은 쉽사리 기존의 모든 가치를 저버립니다. 보물섬이 가까워질수록 체내에서 탐욕이 차지하는 자리가 눈에 띄게 자라나 자칫 동료를 배신하기가 십상입니다. 그들에게는 혼자만 잘사는 일의 슬픔은 보이지 않고, 보물 하나로 행복해질 거라는 몽매만 그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아아, 그러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요. 우리 사이엔 그런 몽매가 앞으로도 주욱 없기를요, J씨.

J씨. 우리 시대, 보물섬은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보물섬이 떠 있는 그 바다가 지금 내 방에도 출렁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떠나 볼까요? 우리? 마치 빌 선장이 죽고 유품을 뒤져 나온 금화 주머니에서 더도 덜도 아닌 딱 숙식비만을 챙기는 짐의 어머니와도 같은 외곬 하나만 챙겨서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꾸지 않을 신념 하나가 없는 이들은, 보물섬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함께 떠날 보물섬으로의 여행, 첫 행선지는 당신이 골라 보세요. 비용도 당신이 대세요. 나는 당신이 내미는 손을 가볍게 잡기만 할 겁니다. 싫으면, 시집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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