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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우울, 상처 그리고 슬픔의 심리를 다룬 세 권의 책 조회수 : 2998
글쓴이 : 롤러코스터 날짜 : 2012-03-15 17:20:00 추천 :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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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라는 것은 단어의 뜻풀이처럼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를 말하는 거다. 아무 일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어느 날 불쑥 그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에 변화가 생겨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된다.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면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을 테지만 '심리'라는 녀석은 항상 불쑥, 나타나기 일쑤다. 그럴 때 그 변화된 마음과 의식에 대해 혼자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보다는 내 말을 잘 들어줄 친구나 내 마음이 드러나있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 까닭에 심리 관련 책들은 끊임없이, 나온다. 읽어보면 언젠가 읽었던, 다 아는 내용. 그럼에도 읽고 나면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어딘가에 있을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내게도 불쑥 찾아왔다. 그건 슬픔이라는 단어다. 슬픔이란 단어를 만나기 전에 우울과 상처란 단어를 먼저 찾아 읽었지만 나완 그다지 관련이 없었다. 한데 슬픔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아! 이것이로구나. 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읽었던 우울상처에 관한 책을 다시 찾았다. 이제 진짜,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다. 왜냐면 난 대체로 긍정적인 사람이고, 현실만족주의자이므로 호기심때문에 읽을 수는 있어도 그것들과는 깊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늘, 자부했으니까. 한데 그게 아니면 이런 걸까?

우연히 읽었던 박상륭 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에도 나왔듯이 사람은, 여덟 달 동안 내리는 비, 나머지 넉 달도 습습한 공기 속에 살다 보면 '어쩌다 끼어드는 청명한 날'에 자살을 해버리기도 하니까, 혹은 《한낮의 우울》에 나왔던 그린란드 이누이트 에스키모인들처럼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5월이 오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슬쩍 나가 죽어버리기도 하니까. 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게 심리의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그러나 그 정확한 원인을 나는, 알고 있으므로 일부러 찾아 읽었다는 말이 맞는 말이겠지만도).

먼저 찾은 단어는 '상처'였다. 유난히 상처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제목에 '상처'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도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 마치 내가 나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왜 진짜로 나는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 걸까?

이 책에서 제일 주목한 부분은 '두려움'이었다. 심리치료를 받을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두려움도 상당하기 때문에 몰입했다. 내가 주로 상처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면엔 항상 그 두려움이 있었다. 용기를 낸 어떤 제안에 대해 거부당할까봐 생기는 두려움, 내가 맡은 일을 못해낼까 싶은 두려움, 지속적인 두통이 있음에도 큰 병을 얻을까봐 병원에 가지 못하는 두려움, 사랑한다고 말하고 거부당할까봐 말하지도 못하는 두려움 등등 세상의 온갖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편이다. 다만 어떤 문제냐에 따라 그 강약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도망치기'다. 책에서는 두려움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도망치기 혹은 싸우기' 상태가 지속된다. 라고 했는데 난 싸움엔 젬병이므로 도망치기의 선수다. 일단은 무조건 도망친다. 그러고선 결국 몰릴만큼 몰린 후에야 맞서서 싸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두려움'을 만들지 않으려고 소극적인 행동을 하는 편이다. 나와 같은 사람의 최대 희망은 '평화적인 관계 맺기'란다. 인정! 하지만 내 경험상으로도 그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평화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궁극적으로 두려움을 인정하고 해결하여 진정한 평화에도달할 수는 없게 되어버린다. 빙고!

사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진짜로 그 두려움때문에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사람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징징대는 이유는 강약을 떠나서 어쨌거나 그것 때문에 생기는 심리의 변화는 깊든 얕든 똑같기 때문이란 것. 그래서, 그렇다면, 책을 읽고 나서 '두려움'에 관해 나아졌냐고? 물론이지. 이해 했다. 다음 두려움이 찾아오기까지는.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단어는 '우울'이었다. 우울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잘 빠지는 심리의 변화이므로 병적으로 우울하지 않다면 굳이 찾아서 고쳐보겠다고 할 필요는 없는 거다. 우울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결론이니까.

한데 이 책 《행복을 미루지 않기를 바람》을 읽은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내 삶의 모토이다. '행복을 미루지 않기' 그것이야말로 우울을 극복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삶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 행복하기. 사실 이것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하기 그지없다. 미래따윈 생각지도 않고 현재만 즐기면서 살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해 아니다. 진심이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아니, 당장 오늘 저녁의 일조차 모르는데 그 일을 미리 생각하며 살 일은 아니니까.

책의 저자는 우울증을 13년이나 겪으며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이다. 지속적인 우울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던 그녀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나름 그 방법을 찾아 비슷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일명 '지금부터 행복해지는 우울 극복 프로젝트' 우울증이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대체로 긍정주의자인 나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는 척 하지만 그건 항상 왜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로 끝나버린다. 즉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 환자는 다들 비관적인 거니까, 그것만 바꾸면, 생각만 바꾸면 된다고 긍정적인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도 말했다시피 다리뼈가 다 으스러진 사람에게 왜 못 달려? 모든 인간은 달릴 수 있어. 달리기 싫어서 게으름 피우는 거 아니야? 라며 힐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 환자에게 네가 게을러서 그런 걸 누구 탓을 해.라고 말하는 것은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자학'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역시 공감한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걸 13년 동안 경험한 저자가 나름의 방법으로 가르쳐준다. 대체로 긍정적인 나는 사실, 다 아는 내용인데다 그녀가 제안하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들과 일치하는 일들이므로 혹여라도 그대들이 그런 우울 속에 빠져 있다면 ''를 위해서라도 '행복을 미루지 않기를' 나 역시 바라는 바다.

그리고 어제 '슬픔'이란 단어와 마주쳤다. 내가 심리와 관련한 책에 주기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딱 잘라 어떤 단어와 마주쳤을 때,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적은 없다. 요며칠 내게 가장 필요했던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직은 닥치지 않은 '슬픔'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곧 닥쳐올 '슬픔'에 관한 '두려움'에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슬픔'이 뭔지. 내가 이것을 이겨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슬픔'과 맞닥뜨렸을 때, '가만히 응시'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슬픔의 위안》에 나오는 온갖 '슬픔'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슬픔'이란 단어가 이토록 슬픈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이게 시작인 것이다. 책은 슬픔과 맞닥뜨리고, 슬픔에 빠지고, 그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과 슬픔의 흔적이 남는 과정까지 들려준다. 오홋, 그렇다면 난 진짜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어제부터 시작하여 이제 겨우 25쪽 읽었다. 그기까지 읽는데 눈이 얼마나 맑아져서 책을 덮어야 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더 읽고 싶었지만 지난 밤 읽은 최선의 쪽수였다) 옮긴이의 말처럼 자신의 슬픔을 객관화해서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며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C.S. 루이스라는 북아일랜드의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단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슬픔은 누군가로부터 남겨지는 것과 관련이 있으니, 사람들이 극심한 슬픔의 고통 속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물론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슬픔을 깨달을 때, 사람들이 뼛속 깊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책을 엮었다.

상처도, 우울도, 슬픔 또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저절로 해결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경험이 많은 어른들은 내내 하는 것일테다. 그들은 다 겪으면서도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 까닭에 어쩌면 지금 우울과 슬픔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어쨌든, 지나가니까.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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