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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시인들의 산문집 조회수 : 2754
글쓴이 : 알지랑 날짜 : 2012-04-12 14:14:00 추천 :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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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단다. 다들. 그의 시도 사실은 어렵다. 그는 일부러 그렇게 쓴단다. 그럼에도 내 시가 좋으면 너네가 수준을 내게 맞추도록 해라. 강심장이다. 독자에게. 그러나 맞다. 이 정도의 배포와 개성은 있어야 한다. 읽고 싶은데 이해를 못하면 읽는 사람만 답답할테지. 어렵다는데 나는 다 이해했다. 나, 잘난 척! 어쨌든 이런 개성 좋다. 몸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시인의 감성으로 훨씬 아름다운 몸이 되었다.

오래전 ‘우울증은 비밀에 대한 고통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은 몸이 의도하는 것과 저항하는 것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그럴 경우 몸은 뭉클하다. 대개의 경우 환자가 지적하는 통증의 부위는 은유의 화려함에 결정된다는 디알로그는 심층적이다. 몸에 관한 글을 써내려가면서, 몸을 관통하지 못하는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몸에게 닿으려는 언어는 비밀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시가 단어 하나 속에서 숨이 차오르는 숨 쉬기이듯이, 시는 육체를 밀월하는 어떤 부위를 나 아닌 누군가의 몽정이라고 부르려는 호명에 가까운 것이다. 밀어 &란 보이지 않는 언어로 떠나보는 여행이다. 네 몸의 어떤 부분으로 떠나는 밀월이다. 시인은 몽롱한 번개 같은 언어를 데리고 ‘살 속의 연’처럼 흘러가보고 싶다. 혹은 속삭이는 번개처럼, 내 몸속으로 들어가 네 몸을 잊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해 보이는 느낌이 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이에게는 뭉클한 몸처럼 그리운 허구 같은 것이 되었으면 한다. 그건 우리들의 언어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남길 것이다. 찰과상처럼.

내가 뜬금없이 시인의 산문집에 대해 써보겠다는 것은 다 서효인 때문이다. 그의 야구 산문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탓이다. 시보다 산문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아니 시도 좋지만 산문도 시적이어서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야구와 함께 시작하고 자란 시인의 야구 사랑은 사라진 야구에 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올 시즌이 되면 어떤 팀이든 정해 나도 야구 사랑 한번 해보겠다, 책을 덮으며 다짐했더랬다. 야구 시즌 돌아왔다. 뉴스에서만 잠깐씩 본다. 아직도 누굴 응원해야할지 정하지 못한 탓이다. 내 남은 인생도 서효인이 야구와 함께 살아온 것처럼 야구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혼자 생각했다. 주말에 야구 봐야겠다. 근데 누구 응원해?

내가 태어난 이듬해 프로야구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야구처럼 커왔다. 촌스러웠고, 즐거웠다. 혹독하고 뻔뻔했으며, 지금은 시끄럽다. 시끄러운 세상의 구석에 선 채로 야구를 본다. 야구를 보고 즐거워하고 화내면서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당신이다.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 예쁘다. 멋지다.
예쁘고 멋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다행이다. 당신이어서 영광이다. 오늘 나는 밤을 샐 작정이다. 쉬지 않고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지구 밑으로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머리 위로 떠오르기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의 야구와 내일의 야구에 관하여 그리고 당신의 야구와 나의 야구에 관하여. 그러니 당신, 나와의 수다는 어떤가. 태양까지 홈런을 날리잔 말이다.

그의 첫 인상은 수다(!)스럽구나, 였다. 다른 시인들에 비해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습을 본 탓이다. 한데 두 번째 만남에서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서야 왠지 시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생각. 시인은 수다떨면 안 돼? 뭐 안 될 것은 없지만. 왠지 시인은 조용하고 무게 있고 감성적이고... 그런 편견을 버렷! 내가 아는 한에서 시인의 산문집 중에 제일 늦게 나왔다. 독특하지 않으면 그 아무리 유명한 시인이래도 책 팔아먹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산문은 개성이 팍팍 넘친다. 야구도 몸도 아닌 그림과 색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오홋, 시인들은 왜 다들 이렇게 멋진거지? 블루를 좋아하니까 블루에 관한 예문.

블루는 흘러요. 블루는 멈춰 있어도 흐르는 것처럼 보여요. 정지된 상태에서도 파닥거릴 수 있지요. 날개를 지닌 블루는 언제나 꿈을 꿔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지요. 따라서 블루는 오션ocean이 되기도 하고 프린트print가 되기도 하고 때때로 문moon이 되기도 해요. 어떤 영화감독은 블루를 가지고 벨벳velvet을 만들었고 뮤지션들은 블루를 가지고 아름다운 음악blues을 연주했지요. 블루는 월요일monday과 결합해서 사람들에게 피로를 안겨다주기도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우량주blue chip로 각광받지요. 블루는 우울할 때도 있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아요. 약간 괴팍한 구석도 있지만 사람들이 결코 버릴 수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블루예요. 블루는 흐르고 흘러, 그 속에 파묻힌 사람들이 스스로 넘실거릴 수 있게끔 도와주지요. 그 순간을 블루는 ‘푸름blueness’이라고 부른답니다.

여기 또 개성 팍팍 넘치는 시인 한 명 등장. 시라면 시, 노래라면 노래, 그에 하나 더 보태어 산문이라면 산문, 사랑이라면 사랑(응?) ->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이번에 낸 산문이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했기 때문. 그리고 독특한 구성. 동료의 시를 본인의 산문으로 승화시켰다 . 멋지다. 한데 산문의 내용마저 죽인다. 푹 빠져 허우적대게 만든다. 아직도 안 읽었다고? 이런, 후회할걸?!

떠나간 것에 미련을 갖거나 스스로 선택했던 일에 대해 후회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한 시절의 상처 따위 태양의 농도가 변화하고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바뀌는 대로 저절로 잊히는 걸 인지상정이라 생각하며 나름 거동 가볍게 살아온 편이니까. 어떤 무게에 매섭게 짓눌리다가도 잠깐 고개를 돌려 내다본 창가의 다른 풍경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을 줄 아는 탄력이 곧 시의 힘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3년 전 가을 이후로 내 안의 그 작은 창이 두텁고 어두운 베일 뒤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바깥이 보이지 않았고, 내부로 굽어든 시선이 불 밝혀줄 그 어떤 아름다운 그림도 내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퍽퍽한 어둠과 불안한 서성거림 끝에 나의 손을 놓아버린 한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연모와 사죄의 심정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떠나간 누군가를 오랫동안 그리워하는 일, 그리고 그것으로 생의 다른 윤리를 모색하고 과거를 재편성하는 일이란 참 힘들고 허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게 아니고서는 내가 다시 나 자신을 향해 솔직하게(난 요즘 그 어떤 웃음도 진심이라 믿을 수 없다) 웃을 수 있는 방도가, 지금으로선 없다. 이건 고통과 슬픔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와 책임의 문제다.

 
   오월의 그날을 기억하며  
   우울, 상처 그리고 슬픔의 심리를 다룬 세 권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