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 조회수 : 162 별점
글쓴이 : 행인 날짜 : 2019-11-25 추천 : 0
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 크로스로드 |

스웨덴의 작은 마을 오름베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다. 인터넷 서점 목차를 보고 2009년 10월에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시간대에 벌어지는 것은 한 소녀가 오줌을 누다가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이 전부다. 분량으로 치면 몇 쪽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건이 8년이 지난 후 2017년 겨울에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은 8년 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두 명의 전문가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 명은 발견된 후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한 명은 실종 상태다. 그리고 8년 전 시체를 발견한 말린이 현지 사정에 밝다는 이유로 조사단에 포함되었다.

 

만신창이 상태로 발견되었고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은 프로파일러 한네다. 그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마을 소년 제이크다. 제이크가 그녀를 발견할 당시 입은 옷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제이크가 여장하기를 좋아하고, 발견 당시 여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이크가 한네의 일기장을 발견했지만 전달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일기장은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 제이크는 이 일기장을 읽으면서 한네의 솔직한 자기고백을 듣게 된다. 그녀의 불안과 두려움과 사랑이 담긴 글이다. 하지만 제이크는 이 일기장을 단숨에 읽지 않는다.

 

8년 전 사건 현장에서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들의 노력으로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오래 전 사라진 그녀가 어떻게 그곳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일까? 그녀는 8년 전 난민이었다. 그 당시 난민을 관리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오름베리의 사람들 중 일부는 이 난민들에게 불만이 많다. 자신들의 삶에 비해 이들이 너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린과 안드레아스 사이에 벌어진 작은 논쟁은 이 난민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두 관점을 잘 보여준다. 8년 후 오름베리는 또 다른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지역민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내는 말린의 논리 속에서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이 실려있지만 경제가 몰락한 동네라면 이 주장이 더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 이야기는 말린과 제이크가 번갈아가면서 화자로 등장해 풀어낸다. 하지만 직접적이지 않지만 한네가 일기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다. 실제 마지막으로 가면 한네가 화자로 등장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다. 말린은 떠나온 동네에 다시 온 것이 불안하고, 제이크는 자신의 복장 성향이 알려질까 두렵고, 한네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무섭다. 눈과 숲으로 둘러쌓인 마을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파헤친다.

 

말린은 어릴 때 사고 때문에 오름베리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 수사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기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삶과 현실은 오름베리로 오면서 충동한다. 잊고자 했던 일은 다시 되살아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선택한 남자를 자신도 모르게 밀어내는 행동을 한다. 잊기 위해 떠난 곳이지 싫어서 떠난 곳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그녀의 엄마다. 그녀의 선택에 의문을 계속 제기한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사실들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이 균열이 조금씩 벌어진다.

 

제이크는 엄마가 암으로 죽고,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의 희생자다. 한네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마을의 숨겨진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이 정보는 어느 순간 힘으로 바뀐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벌어지는 일이지만 정보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단순히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반전의 순간은 예상 외의 시간에 찾아온다. 이 사건이 그가 한 발 더 나아가게 만든다. 답답하고 황량한 이 마을에서 짧지만 통쾌한 순간은 이때가 처음이다. 거대하고 깊은 숲과 많은 눈이 만들어낼 아름다룬 풍경은 읽는 내내 사진이나 영화 등에서 본 풍경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이 더 좋다. 긴박한 전개는 아니지만 세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풀어낸 이야기가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설마 했다. 그런데 그 설마가 맞았다. 삶에서 강한 확신과 믿음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8년 전 씨앗을 뿌린 사건이 태풍으로 변해 현재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 과학 수사가 큰 힘을 발휘하지만 이것을 발견하고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좋은 수사관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네와 페테르는 좋은 콤비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계속 보여주는 것은 가족, 사랑, 사회적 관심 등이다. 작가가 안드레아스를 통해 말한 부분은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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