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펼쳐진다. 조회수 : 142 별점
글쓴이 : 행인 날짜 : 2019-12-02 추천 : 0
반인간선언
주원규 | 자음과모음 |

<메이드 인 강남>을 아주 강렬하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간결하고 거침없이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그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펼쳐지는 이야기와 그 속에 담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는 이 작가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이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긴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현실 사회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담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 한 편의 영화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 그래서 속도감에 비해 읽는 독자들은 그 문제의식을 강하게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 좀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목차는 손, 발, 귀, 입, 눈, 머리, 심장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극중에서 하나씩 나타나는 신체의 일부분이자 카인의 증표이다. 광화문에서 잘린 손이 발견되었고, 이 손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정상훈의 아내에게 형사가 찾아간다. 그 아내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던 서희다. 아버지 김승철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서희가 보궐선거에 나간다. 여당의 표밭에서 당선된다. 서울 광역수사대 강력계 형사 주민서가 그녀를 찾아간 것은 손에 끼어진 반지 때문이다. CS그룹 직원 반지다. 이렇게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민서와 서희가 만나고,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뒤쫓는다.

 

서희는 상훈의 아내였지만 둘은 섹스가 없었다. 상훈의 양부와 서희 아버지가 주선한 만남으로 결혼했다. 이때 서희는 지도 교수와의 관계로 피폐해져 있었다. 3년의 명목상 부부 관계에서 이혼도 상훈이 원했고, 별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정말 법적인 부부였을 뿐이다. 그런데 서희가 국회의원이 되고, 민서가 찾아오면서 그의 행적이 중요해진다. 상훈은 회사 포상을 받은 후 휴직 상태다. CS그룹은 해능시에 거대한 재생에너지산업단지를 조성하려고 한다. 관과 합작 사업이다. 문제는 이 해능시 한 가운데 자리잡은 우성 조선소다.

 

서희의 아버지는 해능시의 재생에너지산업을 위한 입법 활동을 하던 중 돌아가셨다. 얼떨결에 국회의원이 된 그녀에게 아버지 친구들이 바란 것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 입법 활동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다른 국회의원이 초청한 자리에 가서 만난 인물이 CS그룹 직원이다. 그는 노골적으로 서희를 협박한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한국 최고 기업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어떤 그룹을 암시한다. 이미 금력으로 국가 공무원들을 자신의 손 아래 둔 그룹이다. 최근에 같이 읽고 있는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에서 이 부분을 잘 보여준다. 기업이 어떻게 언론과 사법, 행정부 등을 쥐고 흔드는지 말이다.

 

민서의 수사는 특유의 감과 탁월한 수사력으로 금방 핵심에 다가간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의 수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동떨어진 네 개의 사건을 하나로 엮어간다. 모두 CS그룹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있다. 이 수사에서 작가는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간결하게 풀어나간다. 관련자들을 빠르게 찾아가고, 특별히 수사 대상을 자극하지 않는다. 물러날 때를 잘 파악하고, 다른 방식으로 핵심에 다가간다. 그 사이에 살인 사건은 계속 이어진다. 필요한 순간에는 서희와도 연락을 한다.

 

작가는 한 장이 끝날 때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은 이야기를 넣는다. 어딘가에 기록된 것이 분명한데 출처가 나오지 않는다. 기업과 인간과 짐승과 사제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응답문은 각 장의 신체 부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 거대한 음모의 일각을 보여준다. 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힌 후에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메이드 인 강남>에도 나왔듯이 그들은 법 위에 존재한다. 공무원들은 국민이 아닌 금력의 공복이 된다. 자신들의 비리와 부패를 숨기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다. 언론과 공권력이 침묵한 자리를 대신하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허망하게 무너진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은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한 번 보고 둘을 비교해보고 싶다.

증오하는인간(1) 연쇄살인(23) 재벌(1) 국회의원(1) 기업의공복인공무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