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조회수 : 8 별점
글쓴이 : 행인 날짜 : 2020-10-22 추천 : 0
무죄의 죄
하야미 가즈마사 | 비채 |

한 여성이 전 애인의 집을 불 질러 일가족을 죽게 만들었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정말 나쁜 여자다. 경찰의 수사 결과나 재판 과정에서 하나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은 그녀에게 사람들은 악녀의 낙인을 찍고, 그녀가 받은 사형 판결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당연함의 이면을 파헤치는데 작가는 재판 판결문의 문장 첫 부분들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이 판결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언론의 무책임한 발표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형수의 친구들 시선을 통해 하나씩 풀어낸다. 그리고 결국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그녀의 삶을 빠르게 돌아본다.

 

다나카 유키노. 사형을 선고받은 여자의 이름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시선으로부터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열일곱 살 미성년자였던 엄마, 낙태하러 왔다가 의사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 엄마.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해 결혼한 아빠. 엄마와 같이 갑자기 정신을 잃는 병을 앓고 있는 유키노. 언니와 함께 쇼 등과 밤하늘을 구경하기로 한 그녀. 하지만 이 평온한 일상에 외할머니가 찾아오면서 균열이 생긴다. 엄마가 사고로 죽고, 그녀를 사랑해 술을 끊었던 아빠는 술에 취해 딱 한 번 그녀를 때린다. 양부의 거친 폭력에 시달렸다는 문장의 허구를 보여준다.

 

1부는 이런 식으로 중학교 시절 강도치사 사건과 과거 교제 상대에 대한 이야기와 계획성 짙은 살의를 그녀가 아닌 그녀 옆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파고들어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 뒤틀린 삶과 관계의 서툰 모습과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하는 그녀를 표현한다. 읽으면서 그녀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세운다. 1부의 각 장은 이런 가정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유키노의 잘못이 아닌데, 나쁜 남자를 만났을 뿐인데, 전화만 그때 연결되었으면 되었을 텐데 하고.

 

2부로 넘어가면 어린 시절 친구였던 쇼와 신이치의 시점으로 변한다. 이 둘은 유키노의 사형을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둘의 관점은 다르다. 쇼는 그녀의 죄를 인정하면서 사형을 지연하고 감형 받으려고 한다. 신이치는 그녀의 무죄를 믿고 있다. 이런 차이는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벌어진다. 도쿄대 법학과 재학 중 변호사 시험에 붙은 쇼와 학교 이지메의 대상이었던 신이치가 살아온 길도 너무 다르다. 여기에 신이치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의 죄의식을 강하게 만들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이끌어낸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먹먹한 부분은 역시 에필로그다. 앞에서 보여준 유키노의 가짜 모습이 깨어진 순간을 보여준다. 살아남아 외롭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바라는 그녀의 바람이 강한 아픔과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유키노의 삶을 따라가면서 가정 폭력, 동네 소문, 학교 폭력, 이지메, 청소년 보호법, 흥미 위주의 미디어 문제, 사형제도 등을 간단하면서도 묵직하게 다루고 넘어간다. 그리고 유키노가 아닌 그녀에게 자신의 죄를 넘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나도 그들처럼 하지 않았을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이 준 먹먹함과 여운이 강하게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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