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지음 | 정일 그림
2009-05-13
11,000원 | 236쪽 | 210*150mm
종합평점 : 4.5 ( 8 명)
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장영희 교수가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순수 에세이집이다. 9년이란 시간 동안 그에게는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1년 처음 암에 걸렸고, 방사선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2004년 척추로 전이, 2년간 어렵사리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난 후 다시 1년 만에 간으로 암이 전이되었고 투병 중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암 환자 장영희’로 자신이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는 도리어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은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말한다. 또 기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면서 버텨낸 나날들이 바로 기적이며,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내 생애 단 한번》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는 저자 개인의 경험을 넘어 우리네 삶의 체취와 감상들이 반듯하고 따뜻하게 녹아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정겨운 사람 내음과 온기가 보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지펴준다. 그의 글들은 절망 속에서도, 나날의 힘겨운 삶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그의 글들은 결코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다. 암 투병, 장애… 자칫 암울해지기 쉬운 소재들을 적절한 유머와 위트,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적 재능과 여유는 장영희만이 갖는 독특한 힘이자 아름다움이다. 견디기 힘든 아픔을 건강하고 당당하게 바꿀 줄 아는 삶의 자세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살아온 기적은 살아갈 기적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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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 비가 되고 싶어

1...
다시 시작하기
‘미리’ 갚아요
루시 할머니
사랑을 버린 죄
마음속의 도깨비
미술관 방문기
20년 늦은 편지
‘오늘’이라는 가능성
아름다운 빚

2...
와, 꽃 폭죽이 터졌네!
‘늦음’에 관하여
못했지만 잘했어요
어머니의 노래
침묵과 말
돈이냐, 사랑이냐
파리의 휴일
무위의 재능
무릎 꿇은 나무
내가 살아 보니까

3...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괜찮아
너만이 너다
뼈만 추리면 산다
진짜 슈퍼맨
결혼의 조건
민식이의 행복론
창가의 나무
나는 아름답다
재현아!·

4...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
‘오보’ 장영희
오마니가 해야 할 일
너는 누구냐?
새처럼 자유롭다
김점선 스타일
‘좋은’ 사람
스물과 쉰
속는 자와 속이는 자
나의 불가사리

에필로그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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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 장영희
    agnes | 2009년 07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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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달 전, 장영희 교수님의 비보를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많은 리플에서 훌륭하신 분이라고, 책도 참 잘 읽었었다길래 그저 ‘아, 아까운 인재를 하늘에서 한분 또 데려가셨구나’ 하고 ...

      두달 전, 장영희 교수님의 비보를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많은 리플에서 훌륭하신 분이라고, 책도 참 잘 읽었었다길래 그저 ‘아, 아까운 인재를 하늘에서 한분 또 데려가셨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그분의 죽음 뒤 에세이집이 나오게 되었고 그 뉴스를 계기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져서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거였는데.. 프롤로그를 읽고 첫 칼럼을 읽는 순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 제목도 낯설지 않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교 채플시간에 이분이 오셔서 강연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연히 그분이 와서 강연하시는 날짜에 채플을 수강하고 있었고 그렇게 멀리서라도 저는 장영희 교수님을 보고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순간, 아 이분이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가슴 한 구석이 저릿했습니다.



      채플시간은 응당 수면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죠. 장영희 교수님시간에 채플을 듣게 되었던 건 정말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몇 년간의 공을 들여 거의 끝이 보이는 논문을 잃어버리고 절망을 보았지만 결국 다시 일어나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그 도둑 덕에 처음엔 살맛을 잃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너무 당당해 보여서였을까. 그날의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기억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보여주었던 그 당당하고 또랑또랑한 모습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재기발랄한 글부터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며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글까지 다양한 성격의 칼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칼럼들의 공통점은 매우 솔직하며 개인적이고 충분히 흥미롭다는 점이었습니다. 글 중에서도 교수님은 영문학 숙제를 내줄 때면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쓴 숙제가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편해서 그렇게 써오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그런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칼럼들이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교수님 자신에 대한 글, 가족들 이야기, 가르치던 학생들과 있었던 이야기. 일반론에 머무르지 않고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습니다. 저는 남이 읽을 글을 쓸 때 너무 개인적인 내용은 왠지 제가 부끄러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의 주변 일상과 그 자신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 앞에 저는 조금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책은 읽고 나서 뭔가 거창한 것이 남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문장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우 교훈적인 것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장영희라는 한 인격체를 좀 더 가까이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짧막한 칼럼들은 한 주제에 대해 읽는 사람들이 지루해지지 않게 해주고,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책 안에 그려져 있는 삽화들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요란함이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소박함을 담고 있는 그림들이더군요. 정말이지 이보다 더 교수님의 글에 어울리는 그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이 극단적이며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고 있는 이유는 아마 이미 세상에 없지만 그래도 그 분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인간적이고 소탈한 장영희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뻥공주 | 2009년 0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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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나를 위한 책을 놓은지가 한참이다.그러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내가 읽을 만한 책을 한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의 책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그 짧은 기간 중에 선생님께서  ...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나를 위한 책을 놓은지가 한참이다.
    그러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내가 읽을 만한 책을 한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의 책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그 짧은 기간 중에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무슨 느낌인지는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으나 왠지 모르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돌아가신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아리한 것이 헛헛해졌다.


    아마도 이런 경험이 유일무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렴풋 하게 나마 짐작해본다. 그리고 며칠 후 선생님의 책이 도착했고 아이들 때문에 긴 책은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내가


    하루 아니 몇시간 만에 선생님의 책을 다 읽고 이렇게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이야기들을 감히 되새김질 해보고 있다.  


    선생님은 프롤로그에서 책의 제목을 정하는데 대한 고민스러움과 함께 이런 저런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꺼내셨다.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고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이 분 어쩜 내 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셨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평범하지 않은 삶과  나의 힘겨운 삶을 생각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나와 큰소리 내어 웃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게 참으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그려졌다.


    그리 고민이 많으니 제 살 깍아먹고 사는 게지.. 해도 할 말 없을듯 하고
    그리 불만이 많으니 제 속 까맣게 태우고 사는 게지..해도 할 말 없을듯 하고 


    리 눈물이 많으니 제 맘 상처내고 사는 게지...해도 할 말 없을듯 하여...
    입술 꾹 다물고 안으로 안으로 삼키며 사는 나의 인생 넋두리.  


    이 책은 또 한번 나를 깊이 깊이  한숨 짓게 만들기도 하고
    제대로 목숨 걸고 살아본 적도 없으니 이제라도 다시  일어서라고 제촉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기 속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간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며 끝내 울컥하여 휴지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선생님은 어디에서 이런 대단한 마음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하며 의아해 하기도 하고 선생님의 툭툭 던져지는 말투에 큭큭거리며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의 중심이 바로서 다른이들에게 훌륭한 조언과 소중한 글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을 만나며


    몸은 멀쩡하지만 마음은 늘 중심을 잃고 휘청휘청 갈피를 못 잡고 늘 헤매기만 하는 나의 인생이 다시금 부끄러워진다. 


    '무위의 재능'으로 똘똘 뭉치신 선생님의 게으름의 미학을 읽으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주위 환경적, 타고난 성격적으로 편안하지 못하고 모난 성격의 나를 탓해보기도 한다. 


    가슴 아픈 인생을 살아가는 제자의 뒷모습에 더 마음 아파하시며 온몸으로 울고 있음을 느껴주시는 선생님. 


    나에게는 이렇게 뒷모습만 보고도 내 마음의 상처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러한 동시에 나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거나 알아차려준 적이 없구나 하는 반성도 한다.


    선생님이 어느 TV에서 본 명품으로 휘감은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다는 인터뷰처럼 나 또한 가식과 겉멋으로 내 마음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사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사는거 아니야?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 누군가에게 간절히 이해받고 싶어질때가 있다. 그 이해를 위해서는 자신을 놓아햐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선생님은 인생에 있어 힘이 되는 어머니의 말을 소개해 주셨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깍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우리네 인생 언제 어디서 뒤통수 맞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것에 늘 대비하며 사는 사람도 없다.다만 그 불행을 불행으로 끌어안고 있을 것인지 아님 그 불행을 어서 빨리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것인지가 나중 인생을 다르게 만들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자꾸 자꾸 선생님의 말들을 세기고 곱 씹고 다시금 들춰 본다. 혹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도 한다. 


    선생님의 글은 참으로 정직하다고 느껴진다.


    감히 논할 자격도 없이 부족하고 미약한 나의 견해이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말해 주실 듯 하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에세이 ★★★★★
    오로지 관객 | 2009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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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분이 세상에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뜻한 마음을 전하는 그 많은 말들을 보며 어떤 분인지 궁금했지만, 쌓여 있는 책 때문에 이 책...
    나는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분이 세상에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뜻한 마음을 전하는 그 많은 말들을 보며 어떤 분인지 궁금했지만, 쌓여 있는 책 때문에 이 책을 언제 읽을지는 기약이 없었다. 지인이 보내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읽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 읽은 지금 미리 이 분의 책을 읽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마음을 열고 많은 사람들의 글을 읽고자 했건만, 독서에 몰입한 시간이 너무 짧아 많은 분들을 아쉽게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고통 속에서도 이런 상큼한 글을 써내셨던, 아름다운 영혼 장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인쇄가 끝나고 책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신 것이 뒤늦게 마음 쓰인다.

    내 마음이 내려앉아서 그런지 장영희 선생님 본인은 싫어하시겠지만, 몸이 불편한 것에 마음이 쓰였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불편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내 부주의로 발톱이 빠졌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절둑거리면서 그 아픔과 불편함을 입으로 떠들고 다녔었는지, 방향감각이 없는 일도 어찌나 창피했는지, 아무것도 안하는 무위의 재능이 부끄러워 말로써 부지런 떨었던 나날들과 서슴없이 뱉어내는 말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혔는지 새삼 부끄럽다. 평범한 판형에 깨끗하고 마음편해지는 그림이 따뜻하고 솔직한 글과 참으로 잘 어우러진다.

    이 책을 다 읽고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눈물을 쏟아 냈다. 엄마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고비를 넘어서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면서 왔다. 가족이 암에 걸리면 온 가족이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데 우리는 그냥 잘도 지나간다 싶어서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처가 없다는게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삶의 애정이 가득차 천장의 얼룩까지 정겨워 보이는 상황이라는 거.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수 없는 것 아닐까? 나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나 엄마를 보고 있자니 삶에 대한 애정이 저런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에필로그에 언급된 빨간약. 엄마의 여러 개의 주사약 중에 갈색 비닐에 싸여 나왔던 그 빨간색 주사약. 항암주사 맞는 환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그 약이다. 혈관을 상하게 할 수 있어 빠른 속도로 맞아야 하고 그 내려가는 속도 만큼이나 효과도 빨라 온몸이 삭아들어가는 느낌이 나게 하는 약이다. 맞은 후에는 눈이 시리고, 구토와 메스꺼움으로 몸을 괴롭힌다. 한 15일 즈음 지나 약이 온몸에 퍼지면 체모가 빠지는데다가 약한 눈은 물론이거니와 손끝과 발끝이 뜯어지게 아픈 약이다. 그 약을 견뎌낸 엄마가 다 빠져버린 속눈썹 때문에 거울 앞에 앉아 연신 눈썹을 그리며, 가발을 내려쓰는 걸 보면서 아침마다 속상해서 그런가? 빨간약 소리에 이렇게 눈물을 펑펑 쏟아 내게 될 줄은 몰랐다.

    전에 내가 알던 '빨간약'은 일명 '아카징끼'라고 부르는, 시골에 살때 배 아플때 배꼽에 바르고,머리 아플때 머리에 바르면 귀신같이 낫는다는 만병통치(?)의 약인데, 같은 빨간 약이면서도 어찌나 이리 다른지. 그 아픈 약이 엄마의 만병통치약이었기만을 바란다. 어쨌든, 이제 방사선 치료와 더불어 항암치료도 끝이 났다. 검사결과는 깨끗하다고 했다. 수술 부위에 작은 물집이 잡혀 있다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서른 두번의 방사선 치료와 여덟번의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온몸의 통증 때문에 몸이 않좋아 운동을 할 수 없어서 팔에 부종이 오기는 했지만, 운동을 하면 좋아질 수도 있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약을 1년간 먹기로 했다. 어쨌든, 마음이 편하게 내려 앉아서 그런가? 엄마 아픈 동안 잘 흘리지도 않았던 그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 괜히 울고 나서 생각했다. 나는 사지도 멀쩡하고 내가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마음 다잡고 엄마의 아픔을 마음으로 나누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인데, 왜 이리 구질거리나 싶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지 설움에 겨워 허우적 거린게 부끄럽다. 내공의 크기가 다르니 선생님이야 투병 중에도 이런 상큼한 글을 쏟아내셨겠지. 감사의 편지라도 써서 하늘에 띄워 올려야겠다.
  • 나에게 아직 살아갈 기적이 있어 다행입니다. 장영희, 기적, 에세이
    영원한청춘 | 2009년 07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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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당신의 글이 아니었다면 전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과 삶의 이유들을 손톱의 때만큼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건방진 믿음으로 내게...

    고맙습니다.
    당신의 글이 아니었다면 전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과 삶의 이유들을 손톱의 때만큼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건방진 믿음으로 내게 남은 삶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의 글을 신문 칼럼으로 접하고는 ‘좋은 글’에 위안을 삼으며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만 당신의 삶이 그렇게 평탄치 않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다면 당신의 글을 접하면서 문자를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를 비롯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힘차게 응원하고 싶어 했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했을 텐데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선물하고 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 속에는 당신의 고귀한 삶과 인생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기적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천형의 삶이 아닌 천혜의 삶을 살고 있노라고 당신이 누리는 축복들을 하나하나 세고 있는 모습에서 나 자신 또한 너무나도 많은 축복 속에 둘러싸여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살을 해서 당신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던 제자의 명복을 온통 미안한 마음으로 빌어주던 모습에서 당신이 또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싶어 하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말괄량이처럼 천진난만한 일상의 모습들에서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발견하였고 제자들의 고민과 상담을 제 일처럼 여기고 열심히 답 해주는 모습에서는 인생의 선배임을 느꼈습니다.


    그런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지도 천금같은 말로 답해주지도 못하겠지만 당신의 품성과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좋은 책을 유산처럼 남겨주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제는 평안하신 가요?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 잠이 깬 당신이 천장의 얼룩마저도 소중하고 악착같이 남은 생을 살아가겠다며 부여잡던 침대의 난간처럼 저 역시 그런 힘으로 제게 부여된 삶을 살아가고자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당신이 장영희의 흔적을 이 세상 여기 저기 깊고 향기롭게 남긴 것처럼 저 또한 저의 흔적을 남겨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을 지라도 내가 죽은 후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크나큰 바람을 살짝 가져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내 인생에 살아온 기적과 함께 살아갈 기적들이 남아있어서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해 봅니다. 매일 매일 그 기적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당신 몫까지...

  • 절망이 말하는 희망
    낙서가 | 2009년 0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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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편이다. 늘 비관과 회의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잘 되어가는 일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하나 찾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현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늘 그 뒤에 음모나 배후가 도사리...
    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편이다. 늘 비관과 회의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잘 되어가는 일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하나 찾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현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늘 그 뒤에 음모나 배후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우선 의심부터 하고 본다. 애국이나 효도와 같은 말은 나를 구속하는 말로 전락한지 오래다. 에너지를 이렇게 부정적인 곳에만 쓰다 보면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충고를 해준 사람도 있었다.

    이런 나도 장영희의 글을 읽을 때면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녀는 비관과 회의에 빠지는 법이 없다. 그녀의 글은 항상 사랑과 행복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증오와 불운과 절망을 말하다가도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늘 그 반대편으로 돌아선다. 그녀는 또 자신의 느림과 건망증과 정리 못하는 습관과 말을 조리있게 못하는 약점을 장점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나와는 달리 낙천성을 타고난 사람같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느끼며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어쩌면 부끄러움이 아니라 부러움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에는 '아니야,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마술이 숨어있다. 그것은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희망보다, 절망을 겪어본 사람이 말하는 희망을 더 신뢰하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장애인이자 암 투병 환자로 기억한다. 장애와 암 투병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글을 읽을 때도 그녀의 장애와 암 투병이 떠오른다. 천상병 시인의 삶을 알고 난 후 그의 시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듯, 그녀의 삶을 알고 난 후 그녀가 말하는 희망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녀와 그녀의 글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인들이 전신마비의 리브에게 진짜 슈퍼맨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나 또한 장영희의 글이 아니라, 장애인이자 암 투병 환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타고난 낙천성도 어쩌면 나의 그런 기대가 만들어낸 착각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나의 이런 착각이 그녀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암 발병 사실을 감추고 글을 연재했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짙어졌다.

    수필이 아무리 작가의 일상과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글이라고 해도, 글과 작가가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라고 해서 글에는 차마 쓰지 못한 증오와 불운과 절망이 왜 없었을까?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하니, 어쩌면 글을 쓰면서 그것을을 다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그랬듯이.
  • 삶이 곧 기적이다.
    린넷 | 2009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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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소설은 언제나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장르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 수 많은 이야기들의 감동보다 때로는 삶...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소설은 언제나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장르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 수 많은 이야기들의 감동보다 때로는 삶이 녹아든 200자 원고지 서너장 분량의 짧은 글들이 내 삶을 뒤흔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아마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나보다 조금 더 먼저 겪은 인생의 선배들이 들려주는 교훈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좀 더 일찍 깨닫게 해주는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절절하고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래서 바람이 선선한 이 계절은 다른 계절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조용히 읊조리듯 들려주는 다른이들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에세이집을 더욱 찾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삶을 기적처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샘터에서 오랜 시간 짧막한 글들을 연재해온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 그러나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수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온 존경받는 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2009년 5월 암투병중에 생을 마무리 하였다. 일생을 목발에 의지해 남들보다 힘겨운 걸음을 걷고, 생의 마지막에는 고통스러운 암이라는 병까지 얻어야 했던 그녀의 삶은 그 누가 보더라도 너무도 힘겨운 삶이었을테다. 한걸음 떼는것 조차 쉽지 않은 삶을 이기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의 인내와 노력은 얼마나 대단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라면 힘겨움을 먼저 떠올릴 것만 같은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작은 책 한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세상을 웃으며 바라보는 그녀의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러나 생각만큼 어둡거나 힘에 겹지 않다. 아니 오히려 유쾌하고 즐거우며, 신이 나고 미소짓게 한다. 과연 이 글을 쓴 사람이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 살아가며 힘겨운 병마와 싸웠던 사람일까에 대해 의심하게 할만큼, 어쩌면 전혀 생각나지도 않을만큼 즐겁다. 또 누구나 한번쯤 했을 법한 고민과,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까지 고스란히 고백처럼 엮여 있는 이 책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제목보다는 살아가고 있는 기적이라는 느낌이 더 크다고나 할까? 어쩌면 삶이 기적 같았으나 그 삶을 너무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여유로움이 그녀가 책을 통해 타인에게 전하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기적이 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짧지만 긴 시간을 아련하고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 기적같은 삶을 부르는 사랑의 힘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사벨 | 200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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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장영희 교수님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내가 상상했던, 차분하고 조용한 문학부 여교수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카랑카랑하고 밝은 목소리, 해맑은 얼굴, 영락없이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2009년 5월 13일, 날씨가 유난히도 맑고 화창하던 오월의 어느 날, 서강대학교 성당에서 나는 다시 그 분과 마주쳤다. 영정사진 속의 웃고 계신 교수님이 무척 오래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아직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데,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 함께 있어 주실 줄 알았던 교수님을 다시는 볼 수가 없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관을 덮고 있는 검은 벨벳천은 침묵으로 만든 것인 양 뚜렷하게 산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를 긋고 있었다. 그날 결국, 그날까지 실감할 수 없었던 그 분의 죽음을 마주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오랫동안 울었다.

    며칠 후, 서점에 들렀다가 이 책,『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발견했다. 고인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라도 있을까 싶어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페이지를 넘겼다. 못난 나를 꼭 안아주고 기운내라며 씩씩하게 한마디 건네는 것 같아 고마움에 눈물이 흘러 손등 위로 떨어 졌다.

    이 책은 위로 같은 책이다.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책, 외로워 울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 주는 책이다. 삶이 팍팍하고 어렵고 힘겨울 때, 사랑 한 방울로 마음을 적셔주는 책이다. 장애, 암, 재발, 같은 무서운 단어들이 찾아올 때마다 당신의 삶은 남들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을 텐데도 장영희 교수님 당신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본인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축쳐진 마음까지, 짧은 글들로 어루만져 준 셈이다.

    지금 나는 한국에서 이억만리 타국에 있다. 비행기를 타도 이틀이 걸리는 먼 곳에서 채울수 없는 짙은 고독이 무겁게 나를 짓누를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 또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웃으면서 안아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곤 한다.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인생이라지만, 언제든 돌이켜보면 나는 혼자는 아니었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도 함께 있어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기억. 이것은 내가 장영희 교수님에게 진, 갚을 길 없는 빚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또다시 내가 마음으로 느꼈던 이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살아갈 기적을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닐까 싶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김햇님 | 2012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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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전 들었던 책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하는 하룻동안 책의 절반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을 읽는데 몇일이 걸렸다. 마음만 먹으면 두세시간이면 족히 읽고도 남을 책, 페이지를 넘...

    몇일전 들었던 책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하는 하룻동안 책의 절반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을 읽는데 몇일이 걸렸다. 마음만 먹으면 두세시간이면 족히 읽고도 남을 책,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더 잘넘어가는 책. 그러면서 생각이 늘어가는 것이 바로 이책이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 나는 이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적이라 불릴만한 일들이 몇번쯤 일어날까? 정말 한번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기적이겠지. 요즘들어 삶에 대한 많은 생각들과 맞물려 장영희 선생님이 살아온 삶속에 어쩌면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샘터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았다는데, 한편 한편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글한편을 쓸때마다 장영희선생님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살아보니깐 별거아니더라고, 살아보니깐 겉모습이 중요한게 아니고 사람 내면이 중요한거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글 속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또하나의 진리를 발견한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는 몰라도 사람 겉모습'도' 중요하다고 느끼는 건 나뿐일까? 물론, 머릿속으로는 내면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고, 사람이 내면이 아름다워야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다 겉모습도 아름다우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지도.  나도 모르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그사람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거, 오늘을 살아간다는 거, 어쩌면 그것들이 그렇게 거창한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렇게 거창한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 숨을 쉬고 있고, 지금 두발로 서서 학교를 갈수 있고, 먹고 싶은걸 먹을수 있는 그런 일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장영희 선생님의 말 속에서 내가 쫓던 것은 무엇일까, 너무 큰 행복을 바라고 삶을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늘이 모이고 모여서 삶이 라는게 이루어지는데, 나는 너무 거창하고 대단한 삶을 바란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참 많이 들었다.


     


    정말 말로는 순간 순간 감사하다고,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고 있는것도,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내가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겉으로만 그렇게 말한게 아닐까? 정말로 나는 내 내면을 들여다 보기는 한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타인의 말을 통해서 내 삶을 돌아볼수 있다는 거. 그거 참 좋은것같다.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이 되는것같으니깐.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는 장영희 선생님의 편안한 글이, 어쩌면 편안하지만은 않은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내면의 나자신과 자꾸 맞딱뜨리게 되니깐.


     


    항상 나는 내가 참 불행한 사람이고, 내삶만 유독 어렵다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삶을 살아가고, 순탄하게 살아가는데 왜 나는 이럴까 하는 의문을 참 많이 가졌었다. 하지만 이젠 그 모든 의문의 답은 나에게 있고, 결국 이모든 것이 내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이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또 책임감을 느낀다. 장영희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정말 그냥 웃어넘길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금 곱씹어봐야할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읽고나면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책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간다면, 지금 불행하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책이다. 더이상은 불행해 지지 않을테니깐.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우리는 그 행운을 제대로 누릴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책 속의 한줄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오래전 나는 정말 뼈아프게 '다시 시작하기'의 교훈을 배웠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


    오래전 나는 정말 뼈아프게 '다시 시작하기'의 교훈을 배웠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이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서 절먕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 다사시작하기 중에서)


     

    soon | 2009-07-01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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