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지음
2009-05-15
13,000원 | 312쪽 | 204*142mm
종합평점 : 5 ( 1 명)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성 야고보의 아름다운 전설이 시작된 길,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불리는 길,
처음엔 혼자 시작해도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끝나게 되는 길
평범한 이들을 위한 그 길에서, ‘나’ 그리고 ‘그들’의 산티아고를 발견하다!

나 홀로 있는 곳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근심은 가벼운 웃음으로 깨어진다.

이 여행이 내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해주는 시구도 없으리라. ‘가벼운 웃음으로 근심이 깨어지는’ 반복적 경험을 통해 나도 마음을 열고 길이 선물하는 우연한 만남을 기꺼이 받아 안았다. 어디 온전히 ‘나뿐인 나’가 가능하기나 할까.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카미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 이 글은 동시에 낯선 곳에서 만난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_본문 중에서

카미노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 자신의 ‘발견기’

_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다
관계, 믿음, 지향 , 용기,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로마와 예루살렘에 이어 유럽 3대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에서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 길’, 일명 ‘카미노(Camino)’라고 불리는 길이 가장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카미노는 셜리 맥클레인이나 파울로 코엘료 등 명사들이 이 길에서 체험한 영적 깨달음, 삶의 변화를 고백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최근 2, 3년간 다양한 종류의 산티아고 여행기가 출간되었는데 거의 모두가 산티아고로 가는 여행의 기술, 개인적 감상,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17년째 직업 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2008년 4월 11일부터 5월 14일까지 34일간 카미노를 걸으면서 자신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굳이 산티아고라는 길을 찾아 걷는 이유’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며 적어 내려간 기록이다. 기자 특유의 꼼꼼한 관찰과 취재를 바탕으로, 여행기로서는 보기 드물게 단단한 구성과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순례자들이 이 길에서 얻은 대단한 영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종류의, 삶의 획기적 변화와는 다른 소소하고 익숙한, 그래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깨달음을 전해준다. 저자는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자기 걸을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고 일상의 숭고한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각 장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기의 일기식 구성을 취하지 않고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더욱 간절하게 고민하게 되는 타인과의 관계, 믿음, 삶의 방향성, 용기, 아름다움 등에 관한 성찰이 저자와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때론 담담하게 때론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천 년이 넘도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길” 위에서 펼쳐지는 진솔한 이야기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답이 보이지 않아도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삶의 건강성과 긍정성을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지금, 여기’를 떠나서 발견하게 된 바로 ‘지금, 여기’의 아름다움

_낯선 곳에서 맨 얼굴의 나를 만나는 강렬한 경험,
그곳에서 내 안의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다

산티아고 하면 진지한 추구를 전제하는 ‘순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저자는 애초부터 깨달음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어떤 장소에서 정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진작 지리산 꼭대기, 설악산 능선, 페루의 마추픽추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어야 했다”며. 저자는 카미노가 “한쪽 방향을 향해 800킬로미터가량을 걸어가는, 안전하고 단순한 길, […] 길을 헤맬 걱정도, 내일은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메고 걸어갈 체력만 있으면, 그저 화살표를 따라 쭉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선택했다. 오로지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저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낯선 길 위에서 평소에는 지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치사하고, 소심하고, 까탈스러운 모습들이 부지불식간에 수시로 밀려드는 것에 당황하지만 마침내 이것이 결국 길이 주는 선물이라고 받아들인다. 이처럼 일상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통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흔을 넘어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하지만 그런 모습을 거부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끌어안아 삶의 긍정성으로 전환 시키기. 이는 마침내 이런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나는 이미 마음 안에 불투명하지만 조심스럽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를 갖고 있는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이 진창길이나 험한 언덕일까 두려워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건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오르거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를 품고 지금 당장은 땅에 밀착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인내. 그것뿐이지 않을까.”

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 자신의 속도 발견하기

_삶을 과정으로 인식하는 순간,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도 800킬로미터가량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복적인 보행, 단조로운 풍경, 발의 통증, 열악한 숙박 시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육체의 고단함을 통해서 삶의 단순한 진실을 깨닫는다. 결국 삶이란 과정이라는 깨달음. 여기서 저자는 이런 경험을 일회적으로 끝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이를 일상적인 삶에 전반적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한다. “카미노에서의 여행을 끝낸 뒤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건 금세 시들고 마는 벅찬 느낌이 아니라” 삶이란 “어디에 도착할 수도 없고 완수될 수도 없는,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여행 중반을 거치면서 저자는 이에 대해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엔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운명을 흉내 내려 안달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했다.”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_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을 섞고 친구가 되다
‘산티아고의 순례자’가 아닌 ‘길 위의 순례자’,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저자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혼자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한 달여간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게 된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한 번 만나고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몇 번씩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순을 앞두고도 산 것 같지가 않다면서 모든 걸 청산하고 카미노에 온 신디,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서른 살의 시영, 혼자가 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흔다섯 살의 마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다던 서른세 살의 애런, 자기 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싶어 했던 예순다섯 살의 조지” 등등. 저자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물음표를 안고 길을 떠났으나 답을 가진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고. 하지만 그 대신, “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고 외롭다고 느끼던 이들을 만나 마음을 섞었다”고.
저자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이 길이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임을 몇 번씩 경험했는데, 이 길이 보여주는 가장 큰 경이는 “내가 속한 현실에서 무겁게만 느껴지던 일들을 낯선 사람들과 서로 털어놓고 나면,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손아귀 안에서 버둥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묘한 연대감”을 느낀 것이라고 말한다. 국적, 나이, 직업에 상관없이 저마다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주저앉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의 건강성에서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시간의 횡포에 대해서도 웃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환한 얼굴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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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러우면 지는 거다 + 리더스 하이 (Reader\'s High) 문학,여행기,에세이
    들풀처럼 | 2009년 0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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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얼마나 다르면서 또 얼마나 같은가. (296)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한달 이상을 - 걷는 데에만 34일이라니~ - 떠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였다. 그래,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 길에 서보리라는 ...
    우리는 얼마나 다르면서 또 얼마나 같은가. (296)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한달 이상을 - 걷는 데에만 34일이라니~ - 떠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였다. 그래,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 길에 서보리라는 엄두는 커녕 이 곳에서 단 며칠이라도 자유롭게 떠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옥죄이며 살아가는 나같은 이에게 산티아고는 먼나라 별같은 존재였다.

    여기서 걱정할 미래라곤 딱 세 개밖에 없잖아. 어디까지 걸어가고, 밥은 뭘 먹으며, 어디에서 잘 것인가. 삶이 실제로 이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겠어! (86)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걷고 먹고 잘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하지만 삶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걸어가는 이들도 이 점은 잘 알고 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풀밭에 앉아 감탄사를 주고받던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삶이 실제로 그렇게 단순해지거나, 지속적으로 '지금', '여기'의 순간에 몰두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86)

    그러하리라.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것임을, 우리가 어디로 떠난들 풀어지고 찾아질 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 서는 것이다. 지은이가 만나는 많은 낯선 사람들이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처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장면들은 처음엔 신기해보였지만 어차피 그네들도 지은이도, 우리도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쩌면 많은 말이 필요없으리라.

    무엇보다 이 산티아고 여행기에서는 하루종일 걸어가며 만나고 느끼는 지은이를 둘러싼 일상!들이 소개되는데 눈에 띄게 들어오는 대목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워커스 하이'라고 지은이 스스로 이름붙인 느낌이다.

    '워커스 하이'는 마라토너들이 경험하는 절정감을 일컫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빗대 내가 만든 말이다.(141)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과 온 신경이 순수한 진공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내 안의 텅 빈 공간. 어떠한 생각도 없이 잠시나마 자아의 하찮은 주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 (142)

    '순수한 진공상태'의 순간, '워커스 하이'를 읽으며 나는 '리더스 하이(Reader's High)'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랬다. 적당히 부러워하고 시새움하면서도 지은이의 발걸음을 따라 가는동안 나도 모르게 그 현장에서, 그 느낌을 같이 즐기는 듯한,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한번씩 상쾌하고 맑은 기분으로 책을 읽다 만나곤 하던 그런 느낌을 표현할 방법을, 드디어 여기서 그 낱말을 찾아낸다. 리더스 하이! 이 책도 그런 차분한 황홀감을 내게 안겨주는 편안한 책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던 우리가 가야할 길과 앞으로 만날 세상은 규정되어 있지 않은 법,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제 깜냥만큼 열심히 걷고 전념하고 추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138) 지은이의 지적처럼 '확신에 찬 사람은 한 달씩 여길 걸으며 올 것 같지도 않다. 모두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기 길을 걷고 있' (256) 을 것이다. 그러하리라. 한 달씩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쉬운 기회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나같은 이는 이러한 책을 통하여 지은이만의 [나의 산티아고]를 우리의 '산티아고'로 만들어가려 할 뿐이다.

    걷고 또 걷는 것이 몸에도 좋지만 생각에도 좋다는 것은 지은이가 때때로 들려주고 인용하는 잠언투의 말씀들에서 충분히 경험한다. 어디선가 한번씩은 들어봄직한, 듣고 또 들어도 삶의 지침이 될 좋은 말씀들을 이 조그만한 책에서 듬뿍 만난다. 이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하여 이 글 끝에 몇 문장을 따로 옮겨둔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17) 이라는 생각으로 바깥으로만 내달리던 시절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마흔이 넘어서야 돌아보는 지나온 흔적들은 초라하고 또 초라하다. 어찌 내게도 이처럼 먼 곳으로 오랬동안 떠나있을 시간이 없었으랴, 이 핑계, 저 핑계로 안으로 안으로만 방황하던 시간들을 좀 더 일찍이 추스릴 줄 알았다면 나 역시 나만의 '산티아고'를 소개할 수 있을 터인데….. 아픈 시간들을 뒤로하고 떠난 지은이의 '순례길'에 얹혀가며 다시 배우는 고마운 시간들이다.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체험 (조지프 캠벨) (298)을 하게 해주는 이 책, 여행을 준비하는 이에게도, 어디론가 잠시라도 떠나보려 하는 이들에게도 부담없이 권해 드릴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걷기를 통하여 우리들의 '산티아고'로 떠나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해두지만 '부러우면 지는거다!'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158)

    (*책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여행/풍경 사진만으로도 배부른 책입니다.^^*)


    2009. 7.12. 스스로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미 출발하였습니다.

    들풀처럼

    *2009-160-07-12

    *책에서 옮겨두다

    질문을 품은 순례자라기보다 깃발을 꽂으러 온 모험가의 얼굴이다.(38)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39)

    순례가 뭐 별거인가 싶다. 몸과 마음 모두 어딘가에 도착하려 안달하는 대신 길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아 걸어보면 되는 것을. (41)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카미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6)

    낯선 풍경과 사람들, 세상의 무수한 사건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내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뭔가 겪고 싶다면 근사한 풍경과 만남, 사건이 날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으로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55)

    ~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성장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꼭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 꾸준히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 그것말고 어떤 다른 희망이 가능하겠는가. (256)

    인생에서 유일한 문제는 부족하고 못난 나 자신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 단 하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262)

    산티아고의 밤도 하루 일정을 마치면 씻고 빨래를 하던 평소의 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있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큰 감동은 없다.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267)

  •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에세이, 산티아고, 여행에세이, 김희경
    NO-buta | 2009년 0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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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지금도 여전히 제주의 고향땅에서 살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제주에는 올레길이 있다. 제주 올레에 관한 책이 나오고, 친숙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저자 서명숙씨와 이...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지금도 여전히 제주의 고향땅에서 살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제주에는 올레길이 있다. 제주 올레에 관한 책이 나오고, 친숙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저자 서명숙씨와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올레길을 걷기도 했었다. 아니, 그렇게 개발된 올레길이 나오기 전에도 어릴적에는 동무들과 손잡고 소풍을 걸었던 길이고, 자라고 나서는 내 고향의 역사가 담긴 땅을 순례하기도 했던 길이다. 지금은 또 자연유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오름을 걷기도 한다.

    내가 산티아고에 대한 책을 잡고 읽고 있으려면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이라면 올레를 걸어도 되는데 왜 굳이 산티아고를 가려고 해?라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글쎄, 올레나 걸으면 됐지 왜 굳이 산티아고일까?
    솔직히 나 역시 굳이 산티아고를 걸을 생각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로 혼자서 그 먼길을 떠나는 것이 두렵고, 체력이 뒷받침 안되는 것도 문제였고, 낯선사람들과 냄새나고 시끄럽고 때론 축축하기도 할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면서 한달이나 버틸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난 자꾸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게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산티아고를 걸었던 이들에 대한 글을 읽으며 좋지 않았던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문득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단지 그들은 걸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 길에서 그들 모두는 자신을 만났고, 친구를 만났다. 기나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단지 걸었을 뿐이라고 느꼈던 산티아고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이기때문에 좋을 수밖에 없었고, 또 나는 그들의 만남에 감동받고 괜히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라는 것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솔직히 처음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막연한 동경으로, 그리고 언젠가 한번쯤은 시도해 볼 여정으로 생각하다가 조금씩 그 길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그 길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그 두려움은 내가 굳이 그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정말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은 죽음을 막아주기는 커녕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게 삶을 가로막는 것이 아닐까. 일상에서 문제가 되는 건 구체적 대상이 있는 두려움보다 그런 막연한 불안일 것이다. 평소 겁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는데 내 엉터리 관찰에 따르면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까지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할수록, 일이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일수록,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며 일이 잘못되면 오래 후회하는 완벽주의자들일수록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는 겁쟁이들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갖고 싶은 용기는 매사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강박을 버리고 삶에서 우연의 여지를 열어두는 태도였다. 예기치 않은 일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면서 살아가기, 실수를 저지르거나 일이 잘못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래도 어디까지 한번 가보겠다고 하는 마음, 내가 갖고 싶은 용기는 그런 거였다. 카미노에서도 그런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251)

    아직까지 내게 제주의 올레길이나 머나먼 이국땅의 산티아고, 야고보 순례길이나 길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걷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그 머나먼 곳까지 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있어 새로운 한발을 내딛는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길, 그 한걸음을 가로막는 두려움을 떨쳐 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단지 '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또 다른 어떤 만남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길의 끝에 나의 변화된 새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길의 여정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수만 있다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수많은 만남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새로운 도전이 되는 것이리라. 아, 제주의 올레 길 역시 그러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나는 산티아고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제주의 올레길을 좋아하니까.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에서 저자가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세세히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대한 책들은 날짜별로, 만난 사람들별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이라면 이 책은 곁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커다란 줄기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글을 풀어놓고 있다.
    우리의 인생길과 마찬가지로 그 길에서 온전히 혼자이기 위해 떠나고 또 실제로 시작은 혼자이지만 가는 길에서 마음을 열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믿음과 아름다움, 용기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 체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저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마음에서 놓았던 산티아고에 대한 열망을 다시 찾게 되었다. 어쩌면 굳이 산티아고를 가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에서 그곳을 순례해보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나도 그 길에서 만난 나 자신과 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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