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25
9,000원 | 312쪽 | 188*128mm (B6)
종합평점 : 4 ( 1 명)
파리코뮌은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며, 노동자를 위한 혁명정부이다. 이 책은 코뮌 100주년을 기념하여 마르크스와 같은 코뮌 전사에게 헌정하기 위하여 집필되었다. 지은이는 노동자를 주체로 한 민중과 부르조아 정부·코뮌정부와의 대항·동맹관계를 기축으로 서술하였다. 고려대학교 교양총서 시리즈 중의 4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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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파리코뮌이란 무엇인가

I. 제정권력과 민중세력
1. 보나파르티즘
2. 민중세력의 대두
3. 제정의 붕괴

II. 국방 임시정부와 코뮌 요구
1. 국방 임시정부와 파리 20구 공화주의 중앙위원회
2. 10월 30일 사건과 지방도시의 동향

III. 파리의 농성전
1. 파리의 공방과 강화의 체결
2. 국민군 중앙위원회와 티에르 정부

IV. 반란의 파리
1. 3월 18일의 혁명과 국민군 중앙위원회
2. 파리코뮌의 성립

V. 파리코뮌과 민중세력
1. 파리코뮌의 사업
2. 코뮌기期의 민중조직
3. 지방도시의 동향과 군사정세

VI. 파리코뮌의 붕괴
1. 코뮌의 내분과 베르사유군의 진출
2. 피의 주간과 코뮌의 죽음

에필로그 파리코뮌의 의의
옮긴이의 글 철저한 고증을 통한 혁명의 현대적 재구성
파리코뮌 관계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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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뮌commune은 프랑스의 행정단위로서 일반적 의미에서 파리 코뮌은 파리의 시정市政 자치체를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파리코뮌은 1871년 3월 18일의 혁명 이후 파리에 수립되어 5월 28까지 72일간 존속한 반란정부를 가리킨다. 즉,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후, 임시정부·국민의회에 대항하여 국민군을 주축으로 하여 구성한 파리 소시민·노동자들의 정부이다. 이 파리코뮌은 적국 프로이센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의 공격으로 ‘피의 주간’의 투쟁 끝에 무너진다. 3만여명의 사망자를 냈고, 10만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4만여명이 군사재판에 기소되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동시대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파리의 투쟁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로써 세계사적 중요성을 갖는 하나의 새로운출발점이 획득된 것이다.
  • 노동자들에 의해 직접 구성된 정부의 한계였을까 파리, 코뮌, 노동자
    노란가방 | 2009년 0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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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여러분.여러분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은,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이 뽑고, 여러분과 같은 생활을 하고,같은 어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줄거리 。。...




    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이 뽑고, 여러분과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어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줄거리 。。。。。。。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들에 의한 정부 구성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파리 코뮌’에 관한 학술적 서술이다.

         나폴레옹 3세의 황제 취임은 프랑스에게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주는 것만 같았다. 공화정을 폐지하고 강력한 황제 주도의 각종 개혁들은 급속한 발전의 이유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정치체제에서, 황제의 판단력 저하는 치명적이었다. 잇따른 외교적 실패들은 프랑스 내에 경제적 위기를 불러왔고, 한창 뜨고 있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은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갔다.

         결국 포로가 되어 권좌에서 밀려난 나폴레옹 3세를 대신해 프랑스를 대표하게 된 것은 ‘국방정부’. 하지만 전세는 이미 기울었고, 국방정부의 요인들은 이름과는 반대로 항복을 할 궁리만을 하고 있었다. 절대항전을 주장하는 민중들과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수도 파리에서는 마침내 무력을 동원한 혁명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정부의 구성과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수도 파리를 빼앗긴 국방정부파와 왕정복고를 노리던 왕당파들, 그리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부유층들은 당연히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 전열을 가다듬은 국방정부측은 어제까지의 적이었던 프로이센과의 협상을 통해 포로가 되었던 정규군들을 반환받고 일거에 파리를 포위한다.


    2. 감상평 。。。。。。。                     

         말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권력은 소위 ‘지도층’들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행정과 법률을 다루는 데는 ‘전문가들’의 능력이 필요한데,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그런 것을 감당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부족하니까.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보다는 작은 공동체가 적절하다. 이를테면 ‘도시’ 같은.

         파리 코뮌의 한계도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파리라는 한 개의 도시 안에서 그들은 실제로 노동자들에 의한 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그들이 세운 정부는 파리라는 한 도시의 정부인지, 프랑스라는 국가의 정부인지 그들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이는 코뮌 성립 이후 여러 급박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도시들의 연합체 정도를 생각했던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프로이센은 물론 인근의 강력한 국가들의 압박을 그런 연합체로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정치라는 체제의 한계는 아니었을까.


         파리 코뮌을 보며 새삼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그들이 코뮌을 성립시키는 데 있어서 철저히 민주적 절차를 고수하려 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물론 우파 쪽도 마찬가지이지만)이 단숨에 정권을 장악해 자신들의 사상을 통한 정부를 구성하려고 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 역사적 사실 아닌가.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라고 잡아 죽이고, 좌파는 우파를 수구꼴통이라고 비난하며 잡아 죽이는 행태는 근대 이래로 계속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하지만 파리 코뮌 안에서는 전적으로 모든 것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국방정부 측의 실책으로 정권을 잡은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제한된 시간 동안만 행사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다음 정부를 구성했다. 당연히 코뮌 세력을 견제하는 왕당파나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의원들도 선출되었고, 두 세력은 저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가운데 심각한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랑스다운 모습인건가.


        
    코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앞두고 사회주의 측에서 했던 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시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활하고 여러분과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이라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치인들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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