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지음 | 김상민 그림
2009-06-25
13,000원 | 280쪽 | 204*153mm
종합평점 : 3.5 ( 3 명)
《지구 위의 작업실》은 숨 가쁜 현대인의 로망을 일상으로 포섭한 한 남자의 일상, 오로지 작업실에서만 벌어지는 일상을 담고 있다(이 글은 <경향신문>과 <신동아>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의 추구에 있다는 ‘행복 담론’에 휩쓸려 ‘공인된’ 재미와 의미와 가치에 매진하지만, 결국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순간도, 뭔가 보람을 느끼는 일에 참여해도 집요하게 남는 부분”에 공허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저자는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서 너무나 ‘멀쩡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다른 가능성을 꿈꾸라고, 조금씩은 미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작업실이다.
작업실이 어디에 있든 간에, 그곳에서 무슨 작업을 벌이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결재서류나 상사의 질책, 잔소리하는 아내, 소파에 벌렁 누워 있는 남편 등등 나를 둘러싼 외부가 모두 배제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공간에서, 사사롭고 비본질적인 행위에 몰두하며 되찾게 되는 어린 시절 놀이의 순수한 즐거움과 ‘나’라는 존재와의 맞대면은 현대인들에게 마지막이자 유일한 해방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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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구 위의 작업실, 줄라이홀
\'THE\'와 \'나\'의 작업실 이야기
작업실이 지하로 피신해 들어가야 할 이유, 마흔아홉 가지
\'줄리아홀\'을 짓다
3만 장, 늙어도 늙지 않는 징글징글한 질병
유령과 키치, 작업실의 동거인들

작업실의 커피, 일상의 \'리추얼\'
커피, 자신에 대한 예의
작업실에서의 일과가 곧 리추얼이다
C8H1ON402 중독증, 우아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권리
쓸쓸한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는 커피를 볶는다
낭만아, 우리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자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작업실에 가득한 소리, 아날로그의 공감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은 모두 외롭다
차이코프스키, 나를 스치는 몽상
아날로그로 가는 길
소소하고, 사사롭고, 비본질적인

오디오,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오디오, 거기에 생의 \'저쪽\' 이 있다
음악이 다가오지 않을 때 오디오 놀음에 빠져보라
내 이름은 \'톤팔이\' 실은 나 불안한다
스피커, 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이야기들

에필로그 -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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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실이 필요치 않음이 확실해졌다 김갑수
    괴물 | 2009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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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말고 '김갑수'라는 유명한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이 책의 제목과 표지사진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김갑수라는 사람이 어떻다 하고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는 것을 슬쩍슬쩍 접하면서였다. 그렇다. '...

    배우 말고 '김갑수'라는 유명한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이 책의 제목과 표지사진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김갑수라는 사람이 어떻다 하고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는 것을 슬쩍슬쩍 접하면서였다. 그렇다. '슬쩍슬쩍'은 좋지 않다. 뭐든 열심히 하려 해야하고 제대로 알려고 해야지, 곁눈질로 보고 판단하려고 하고, 조금 알고 있으면서 많이 아는 체 하려 하고, 그런 자세는 '나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쁜가 하면, 피같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좋지 않은 눈을 괜한 데에서 혹사하게 되고, 무엇보다 기분이 더러워진다. 나는 이 책을 선택하기 전에 김갑수라는 사람, 아니 사람까지야 내가 알 수 없다치더라도, 전작이 어떠했나, 그는 어떤 시를 썼나, 시를 통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사람인가 그 정도는 알려고 노력했어야했다. 


    제목이 '지구 위의 작업실'이다. 자기 작업실 이름이 '줄라이홀'인데, 글쟁이니까 짐작컨데 글 쓰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 아니겠나싶다. 시작부터 저자는 예술가가 가져야 할 체통쯤이라 생각하는 듯 싶은 '기벽'을 좀 자랑한다. '지구 벌레들은 땅굴 좀 파고 작업실 하나쯤은 가져라들.'이라고 시작한다. 거기서 뭘 하냐고? 내사 모른다. 일단 이 책을 거기서 쓴 것 같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건 확실하다. 작업실이라고 불리는 거기서 커피마시고 음악듣다가 커피 얘기하고 음악 얘기하고 그러다 떠오르는 잡생각들 좀 글로 만들어서 집어넣고 그렇게 완성된 책이 이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의 작업실에서 태어난 작품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걸 쓰자고 굳이 작업실이 필요했나.


    확실히 저자는 취향이 고급이다. 클래식 음악과 AV시스템에 일가견이 있고 커피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인용만 하면 벤야민에 프루스트에 사르트르에 어찌나 많이 하는지 심지어 자신의 스물 몇해전 일기도 인용하고, 확실히 고급은 고급이다. 그런데 그 고급취향들로도 악취는 감출수가 없는 법인가보다. 작업실 1층은 정육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육점아저씨는 저자를 볼 때면 늘 언제나 유쾌하게 웃으며(34) 이번 차돌박이 끝내주는 게 들어왔어요!, 항정살 맛이 진짜 남의 살 맛이라니까요!(34)고 고기얘기를 한단다. 그러면 저자는 흐흐하고 웃으면서 이런 상상을 하고 있다.


      아, 로버트 프로스트가 감탄해 마지않던 그 선연한 노을빛을 닮은 해거름이군요. 
      또는 이런다.
      조수미의 바로크 창법 음반은 좀 난센스가 아니겠어요?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너무 비교되잖아요.
      정육점의 답변은 추정컨데 이렇다.
      “뭐, 뭐라구? 야, 이 미친놈아!


    이거 게임끝 아닌가요, 님드라? 이런 식으로 저급함을 드러내는 부분은 한 두군데가 아니다. 오죽하면 포스트잇으로 붙이다가 포기했을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면 인격을 완성하는 데에는 좋은 음악 좋은 커피, 고급의 취향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저자가 그런 용도로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낭만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낭만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지 낭만가객 자신의 몫은 전혀 아니라며 낭만을 가장 혐오하는 것이 타고난 낭만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황인숙의 강 전문을 인용한다.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그럼 질문하겠는데, 그걸 그리 잘 아는 사람이 이런 책은 왜 내셨다나.


    저자는 실용의 시대에 자신이 관념을 허우적대고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기인지우니 마음 놓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진심도 진정성도, 단 한줄의 진지한 성찰도 느낄 수 없었다. 진짜 이래도 되는가 싶다.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문장 하나를 쓴 후 거울앞에서 자기자신의 눈을 똑바로,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마저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 지구 위의 작업실 지구,작업실
    루사 | 2009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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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생각한적은 여러번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은연중에 내머리속에 작업실은 예술가나 ...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생각한적은 여러번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은연중에 내머리속에 작업실은 예술가나 음악가들 만이 가질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문득 지구 위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얼마나 특별한 것들이 있을까? 그곳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까? 나와는 조금 다른 세상의 사람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아마 이책을 다읽고 났을때는 나도 모르게 작가의 작업실처럼 나도 하고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몰래 몰래 나만의 작업실을 찾아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작가는 작업실을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장먼저 결별해야 하는 것은 그날의 날씨, 또하나 결별해야 할 것은 소리, 아울러 결별해야할 것은 햇살이다.  작가는 마포의 한 건물 지하에 동굴을 파고 산다. 햇빛과 소리와 날씨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정말 깊은 동굴 속 같은 공간이다. 게다가 건물 1층에는 정육점이 있다.  작가의 개인 작업실인 줄리아홀에는 LP음반이 3만장 4천장의 CD가 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LP음반이라고 하니깐 작가와는 세대차이가 갑자기 생긴 것 같다. 나는 LP음반은 거의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작가는 자그마치 3만장이나 가지고 있다고 하니깐 놀라울 따름이다.


     


    차 중에 나는 커피를 각별히 좋아한다.커피는 독약이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잔의 문학이다작가는 커피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항상 줄리아홀에서는 커피 냄새로 가득 할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커피를 만들어 내는 머신도 2대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또, 작가는 혼자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있노라면 자신이 참 멋지다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작가의 에스프레소 만드는 모습을 혼자 상상하니 웃음이 지어진다...또 그렇게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것이 즐거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혼자 한번 만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했다. 사람이 누가 좋다고 하면 한번씩 따라 해보고 싶다는 말이 드니깐 말이다...


     


    사실 이렇게 보면 줄리아홀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줄리아홀은 음악을 듣는 곳이며 작가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곳인것만은 확실하다. 자신의 작업실은 줄리아홀에서 작가는 참 많은 것을 하는 것 같다. 자신의 독립된 공간에서 실컷 자신의 할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이 문득 부러워졌다. 혼자서 느끼는 여유도 있을 것이고 혼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다


    멀쩡한 사람은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다멀쩡함이라는 자기기만을 설명한다. 정말 맞는 말 같다. 나도 작업실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확들게 하는 결정적인 한마디 같기도 하다. 나도 나를 멀쩡한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나의 광기를 나도 모르게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내안의 숨겨진 광기를 풀 곳이 필요하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이제 듣지 않고 들으리라, 오래된 것들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들을 것이다..

  •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에세이,한국에세이
    들풀처럼 | 2009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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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자. 이런 冊, 재미있게 읽고 좋은 이야기들도 넘쳐나지만 나는 싫다. 지은이의 작업실 이야기에 120% 공감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실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리츄얼에도 ...
    솔직히 말하자. 이런 冊, 재미있게 읽고 좋은 이야기들도 넘쳐나지만 나는 싫다. 지은이의 작업실 이야기에 120% 공감하지만 나는 그런 작업실을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는 자괴감,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리츄얼에도 공감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는 열등감, 커피를 나도 좋아하지만 지은이가 들려주는 열정에는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등등 이 책을 재미잇게 읽고 즐기면 즐길수록 다가오는 나는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으리라는 느낌. 어찌 이 책을 내가 좋아할 수 있으랴.

    그것은 리추얼(ritual)이다. 절차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적 행위, 즉 문화행위라는 뜻이다. ~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재배치되는 ~ 커피 따위를 갖고 왠 호들갑이냐고 비웃는 친구야. 그럼 네게 중요한 일은 뭐니? 재테크니? 민족 통일과 세계평화니? 킁. (74)

    그래, 세상 사는 일이 어떻게 자로 잰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랴. 조금 여유가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아도 자신이 몰두하는 한가지에 지은이처럼 미쳐버린다면 그 경지만으로도 무언가 얻을 것은 있는 법이다. 지은이는 옛날음반(LP) 3만여장에 CD 4천여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는! 음악광!!!이다. 아니, 음악광의 단계를 넘어서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레벨이다. 건물 지하 37평을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 음악과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줄라이홀'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는 여유라니....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보니 단순히 사람 이름을 붙였다는 그 쿨함이라니.....

    어, 그럴까? 오늘 줄라이가 왔네. 그럼 앞으로 줄라이홀이라고 부르지 뭐.(44)

    책을 통하여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업실이 필요한 까닭이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위무해야할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지은이에게는 커피와 음반과 오디오에 대한 예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내용들이 어쩌면 너무 사치스럽거나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꺄진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쪼글쪼글하고 누글누글하고 나른한 ' '회사원 생활'(19)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작업실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업실의 의미를 얼마만큼 준수할 수 있을까? 그 기준에 맞출 수는 있는걸까?

    중요한 건 혼자 숨 쉴 공간이었다. 멍하게 면벽하고 시간 죽이는 것도 작업이다. 나만의 비밀 공간에 틀어 박히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현대인의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로망의 사명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경탄을 위해 얼마나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하는지, 그 일상을 말해야 한다. 실은 나 자신이 언제나 내 작업실의 방문객이다. 문을 열고 발을 디디는 순간 탄성과 탄식, 감동과 회한, 그런 감흥이 일지 않으면 그것은 작업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업은 추억의 공간이다. 당장의 한순간이 추억의 시간이다. 작업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추억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28)

    작업실은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 ~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것이 그날의 날씨다. ~
    또 하나 결별해야 할 것이 소리다. ~
    아울러 결별해야 할 것이 햇살이다. ~ (32)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러한 나만의 작업실을 마련할 것인가? 설사 마련한다 하여도 제대로 활용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저 지은이의 흉내만 낸다, 그리고 또 좌절한다. 물론 날마다 좌절하지만 날마다 다시 일어선다. 나에게, 작업실은 물론 없다. 4인 가족에 방 3 개, 어디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 하여 겨우겨우 숨을 공간을 만든 것이 거실이다. 거실에 있던 TV를 치우고 거의 모든 벽면을 책꽂이로 도배하고 2000여권의 책으로 감싸안았다. 다 진열할 수 없는 책들은 별도 박스에 보관하여 베란다에 재어놓았다. 그리고 밤 깊은 새벽녘에야 거실에 나선다. 가족들도 모두 잠든 시간, 그때는 당연히 '캄캄'하고 '날씨'도'소리'도'햇살'도 피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작업실의 조건을 겨우 흉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나만의 작업실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은이의 글을 읽고 즐기면서도 그 생활을 싫어하는 까닭이다. 지은이의 생활 끝자락이라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처럼 태생이 한 곳에 몰두하여 미치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의 생활이, 다 이룬듯 보여 스스로 '불쌍'해질 수 없다는 그 생활이 부럽다못하여 싫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그래, 지은이의 말처럼 '마음만 젊으면, 마음만 젊으면 무엇이라도!'(50) 못하랴. 게다가 그처럼 '남의 글 떠올리며 생각의 단서가 풀려나가는 것도 병인 것 같다.'(39) 나도 그렇다. 그에게 '아내의 책이 내게는 음악'(195)인 것처럼 내게는 책이 그의 음악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하여 나처럼 질투하고 시새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새로운 경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분도 있으리라.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만난 속시원한 詩 한 편 옮겨본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리니…..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전문 (117)

    책 속에는 커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에서부터 심오한 원두커피의 더 깊은 곳까지, 음악, 특히 클래식의 기초부터 전반적인 흐름까지, 오디오의 어마어마한 세계까지 많은 상식과 지식이 등장한다. 그 지식만으로도 본전은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마냥 부러워만 할 것인지 흉내라도 낼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그 결정은 여러분의 몫이리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부터 그저 차근차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2009. 7.26. 밤,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도 '내부가 그립'(133) 습니다.

    들풀처럼

    *2009-167-07-19


    *冊에서 옮겨두다

    땀꾸멍 하나하나까지 명명백백한 이 세상에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이 가능하다는 꿈을 말하고 싶다. (7)

    꿈은 도시 탈출이었고 정착점은 작가 생활이었다. (13)

    이 순간의 점점에 머무르듯 살아가는 거다. 이 순간 이전과 이 순간 이후의 지루한 인과의 법칙과 응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거다. 이 순간 점점의 끄트머리에서 칼처럼 살아가는 거다. 저지르자! 암, 저지르고말고. (13)

    한자에 '졸(拙)'이 있고 '박(薄)'이 있으니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그게 되지 않는다. 좋박이 되지 않는, 과잉으로 넘쳐나는 성정이 화근이다. (36)

    매력없고 상스러워진 사람의 피난처, 그곳이 지하실에 꾸미는 작업실 공간이다.(39)

    아파트 위 아래 층 이웃들의 끝없는 항의로부터 탈출해서 집밖 어딘가에 음악 감상실을 만들고자 한다면 첫째 높은 천장, 둘째 완벽한 방슴, 셋째 가능하면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 지하실을 찾아야 한다. (41)

    욕심 없고 절제하는 태도, 그것이 고매함이다. 할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충분한데 사양하는 것, 그래, 그것이 고매함이다. 고매, 그 빛나는 광채 곁으로 다가가고만 싶은데 내게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45)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다. (78)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훨씬 열심히 공들여 청소한다는 것. 실내의 때깔이 달라지는 비법이 그거였다. (91)

    공지영이 그렇게 썼었다. 슬퍼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도 죄스러워지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저물녘 강변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는 청춘기를 보냈다고. 나도 그랬었다. (97)

    혼자서 하염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 사람 없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람처럼 사는.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원두를 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 지금 줄라이홀은 혼자를 견디는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 집에 들른 지 너무 오래됐다. (98)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튀르크 카베시의 커피 예찬) (110)

    만일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섬세함에서 온다. 그것은 괴로움에 짓눌려 끙끙거리며 자라나고 좁다란 밀실에서 아른아른 피어난다. 낭만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면, 낭만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지 낭만가객 자신의 몫은 전혀 아니다. (116)

    아직도 근육과 정신이 근질거리는 혈기방장의 젊은 나이였다면 나는 아나키스트가 됐을 것이다. (127)

    그 안에는 떠돌이, 건달, 외돌토리, 허풍선이, 날라리…….(129)

    내부가 곁에 있어도 나는 내부가 그립다. (133)

    다들 그렇다. 바빠 죽겠다면서 고독에 치를 떤다. 일감에 숨이 막힌다면서도 마치 나의 음악처럼 각자의 한가 속으로 도망치고 침몰한다. 그게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 아니 호모 히스테리쿠스들이다. (143)

    공간이 사람이다. 공간의 구성과 외양은 그 사람과 정확히 일치한다. (162)

    읽기 싫은데 책을 읽고 듣기 싫은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건만 계속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이 인생에 있다. ~ 그것이 비가역이고 불가역이며 다른 말도 팔자고 숙명이다. (212)
책 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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