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 ウエハ-スの椅子
2004-12-15
9,500원 | 247쪽 | 190*135mm
종합평점 : 3.5 ( 2 명)
에쿠니 가오리의 2001년 작. 특유의 간명하고 명징한 언어로 한 여자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사랑에 빠졌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

화가이자 스카프, 우산 디자이너인 여자의 일상은 고요하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애인을 기다리고 가끔 도둑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동생의 연애에 귀기울인다. 얼핏 똑같아보이는 하루하루가 지속되지만 여자는 자신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선택한 사랑의 끝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소설의 중심 단어는 \'사랑\' 혹은 \'절망\'. 지극히 고독하고 내면고백적인 내용으로, 읽고 나면 한없이 쓸쓸해지는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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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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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과 죽음, 그 역설적 의미 에쿠니 가오리
    agnes | 2009년 0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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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저는 그녀가 쓴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쉽고 편안하거든요.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진 일본 작가로 흔히 그녀를 소개하는 글에는 ‘감성작가’라는 말이 붙어있어요. 아마도 그...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저는 그녀가 쓴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쉽고 편안하거든요.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진 일본 작가로 흔히 그녀를 소개하는 글에는 ‘감성작가’라는 말이 붙어있어요. 아마도 그녀가 쓴 글 속에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 보다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감성적으로 (또는 감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편안하고 쉽게 쓰인 문체에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본소설을 깔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꼭 소설이 어려워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감성작가면 어떻고 칙릿이면 어떻고 장르소설이면 어떻습니까.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작업 아닌가요? 꼭 그렇게 무거운 책을 쓰는 작가만 고집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야 이 책을 추천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이 책은 1장부터 51장까지 자잘하게 나뉘어있습니다. 240페이지 가량 되는 책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장이 나오려면 한 장에는 몇 페이지 할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시겠지요? 처음에는 저도 꼭 소설의 흐름이 장을 바꿔가면서 뚝뚝 끊기는 것 같아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방법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불쑥 불쑥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생각에 잠겨있다가도 누군가 그녀의 방을 방문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의 구성이에요. 원래 사람이라는게 항상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생물은 아니잖아요? 이리 건너뛰고 저리 건너뛰고,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을 하다가 문득 지금과 관련도 없는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사람을 참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신없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 다듬어진 느낌? 하지만 본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답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는 언제나 절망과 외로움, 슬픔, 죽음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이런 어두운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와요. 

    슬픔.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슬픔에 대해, 빈틈없이 생각하고 밝히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진귀한 식물이나 무엇인 것처럼 여겨지고, 전혀 슬프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만 눈앞에 엄연히 있을 뿐. 나는 이 집에서 그 진귀한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 웬만큼 잘 맞는지, 그것은 놀랍도록 쑥쑥 자라고 있다. 그것 앞에서 나는 감정적이 되기가 힘들다. 슬픔은 나와 따로 떨어져있어서, 나는 나의 슬픔을 남 일처럼 바라본다. (130p)

      그녀는 이런 어두운 단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읽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아요. 단지 우리들에게만 말해줍니다. 마치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그녀 마음속에 있는, 그녀만 아는 또다른 존재인 양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버겁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죠. 그녀는 삶이라는 것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사랑을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그이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신에 갇혀있는 거라고. 애인이 없는 삶은 그래서 삶이 없는 것이고 즉 죽음과 연계됩니다. 애가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에 매달려 이렇게 저렇게 삶에 끌려 다닙니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나 생각해오던 죽음을 꿈꾸지요. 애인이 없는 삶을 그려보지만 애인을 사랑하기에 그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은 ‘웨하스 의자’로 나타납니다.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웨하스였다. (71p)
    나는 그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앞에 있지만, 그리고 의자는 의자인데, 절대 앉을 수 없다. (71p)

      그녀는 살고 싶은 걸까요, 죽고 싶은 걸까요? 그녀의 내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도 모릅니다. 그녀는 죽고 싶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시겠죠?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아, 정말 세상 살 맛 안 난다고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있음에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그녀 안에서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목욕하면서 하얀 몸뚱이를 보고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애인과의 헤어짐을 생각하며 죽음을 그리기도 합니다.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이런 역설적인 마음이 꼭 제 마음 같다고 느끼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애인과 헤어지고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접해오던 터라 죽음은 그저 어떤 시점에 누군가에게 찾아오는 것일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찾아오지 않고 애인이 그녀를 다시 찾아오죠. 굶어서 거의 죽어가던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다시 삶이라는 곳으로 가두어 놓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싫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함께 휴가 계획을 세우며 책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 뒤로 그녀는 삶을 긍정하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어느 날 찾아온 죽음에 그렇게 가버렸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네요.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는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그녀는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까, 죽음은 곧 자유라고 생각하니까 그편이 그녀에게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요?

    “잘 들어. 나는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니야. 다만 죽어가고 있었지. 병원에 가서도, 당신을 만나서도, 이렇게 식사를 하면서도, 그것은 변함이 없어.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어. 그건 슬픈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슬퍼하지마, 믿어.” (242p)

  • 웨하스 의자
    까루 | 2010년 08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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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모딜리아니를 좋아했다. 그가 그린 여자를. 불행해 보여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목이 길고, 안구가 없는, 불행해 보이는 여자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녀들은 어쩌면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
    엄마는 모딜리아니를 좋아했다. 그가 그린 여자를. 불행해 보여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목이 길고, 안구가 없는, 불행해 보이는 여자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녀들은 어쩌면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은 남편이 있었거나, 자랑 삼을 아이가 있었거나, 그래서 그녀들 모두가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엄마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도.


    그녀의 엄마는 화가였다. 괜찮은 아내였고, 두 딸의 괜찮은 엄마였고, 게다가 요리도 잘했다. 엄마는 딸들이 자신과 비슷한 인생-가정을 이루고, 아내나 엄마가 되어-을 살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38세 미혼이지만, 사귄지 6년이 되어가는 깊이 사랑하는 골동품 가게와 헌책방 두 가게를 운영하는 돈이 좀 있는 애인이 있다. 글의 중반에 스리슬쩍 애인이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미루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유부남이다.



    애인이 유부남이라는 것이 작품 전면에 부각되지 않지만, 세상이 인정하지 않을 커플로서의 갖힌 듯한 폐쇄적인 느낌에 깊이 시달려 하는 ‘나’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자신을, 애인의 인생의 사랑방을 빌려 더부살이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낀다. 그의 옵션으로, 그의 인생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처럼. 애인은 친절하지만, 친절하면 할수록 ‘나’는 자신이 가공의 존재인 것처럼, 그의 공상의 산물인 것처럼 느낀다.



    애인과는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필리핀의 섬 등등 해외 국내 가리지 않고. 한번은 애인이 맘조르카 섬에 둘이 가서 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 섬에는 가본 일이 없다. 하지만, 애인과 함께라면 거기서도 잘 해내 갈 수 있으리란 것을 안다.
    그들은 그곳에서 꿀처럼 행복하리라. 파도처럼 자유롭고, 바람처럼 고독하리라.
    ‘나’와 애인의 계획은 완벽하다. 아무 문제없다. 다만,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란 것을 ‘나’가 알고 있다는 그 한 점만 제외하면.


    사치스럽고 달콤하고 가냘프고 고독한 ‘나’




    한없이 다정한 애인에게 매몰되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애인과 헤어지려 하고, 죽으려도 해본다. 우산 디자인과 스카프 염색을 주로 하는 화가인 나. 일에 빠져 있는 시간을 그러저럭 좋아한다. 그러던 나는 가을 학기부터 대학의 강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려나.

    ‘나’는 자신이 가르치는 입장에 서려 한다는 것에 우선 놀란다. 그렇지만, 학생 시절에, 미래가 없는 중년 여성이라 여겼던 여선생이 자꾸 떠오른 것은 왜일까.

  • 웨하스 의자.
    학진사랑 | 2012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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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등장하는 화가인 '나'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 유부남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지금의 가정을 깰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열...

    여기에 등장하는 화가인 '나'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 유부남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지금의 가정을 깰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열정적이지 않다. '나'는 이런 관계를 정리해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죽음'만을 떠올린다. 기르던 개 줄리앙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 부모님과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들. 결국에는 그녀 자신의 죽음도 떠올리게 되지만 이마저도 아이처럼 보호받는 현재의 사랑에서 벗어나 타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깨어나는 의미를 가진다.   


     


    그녀에게 웨하스는 행복을 상징하고 사랑은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오직 그녀에게만. 나에게 웨하스와 사랑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린 시절부터 '절망'이 따라다닌 '나'에게 현재의 외로움을 떨쳐내지 못할 기억할만한 사건이 있었던가. 동생이 태어나던 날 차 안에 있던 개와 자신이 동족이라는 것을 느낀 일?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위기감은 아니었다.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느껴야 하는 감정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핑크빛 사랑조차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도, 규범도 왜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일깨워야 할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절망은 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몰고 오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에서조차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불륜때문은 아니다. 평범한 사랑을 했어도 그녀는 결코 평범하게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꼬꼬맹이 여동생의 사랑도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두 여자 사이에서 오고가는 애인을 왜 끊어내지 못하는 것인지 사랑이라는 거 참 어렵다. 그런데 동생의 애인만 '나'에게 찾아오는 경우는 뭐란 말인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가는 그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일까. 절망을 매개체로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일까. '웨하스 의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나'의 사랑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성장통을 겪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죽음만이 모든 것에서 놓여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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