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지음
2002-05-29
12,000원 | 352쪽 | 220*170mm
종합평점 : 4.3 ( 2 명)
역사학자가 쓴 그림 이야기. 「국민일보」에 연재되었던 \'이석우의 역사가 있는 미술\'에 열두 꼭지의 글을 보충하고, 에세이를 더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지은이는 그림은 곧 역사이고, 모든 그림은 어떤 형태로든지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전제 아래 그림에 얽힌 역사, 역사에 따른 그림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 그림이 탄생하게 된 당시의 시대상,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리게 된 까닭, 그림에 숨겨진 사회학적 의미 등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설명해 준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시작하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내용은 앤디 워홀, 조지 투커 등의 현대 미술가에까지 이르러 끝을 맺는다. 맨 마지막 장에 실린 \'나의 작은 역사 스케치북\'은 개인적인 사연을 섞은 에세이로서 지은이가 직접 그렸던 그림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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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초에 그림이 있었다
2. 중세의 음울함을 화장으로 가리다
3. 르네상스, 자연과 인간을 찾다
4. 혁명이 지나간 자리
5. 화려한 진보의 뒷모습
6.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다
7. 또다시 시작된 유럽의 불운
8. 길 잃은 도시, 길 잃은 현대인
9. 나의 작은 역사 스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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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을 역사적으로 읽어내기~
    노란가방 | 2009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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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는 사람이 내적으로 단순해지면 단순해질수록 사물을 보다 폭넓고 깊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필사자는 문자 삽화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통해 무한한 탐구를 시도함으...



     어떤 이는 사람이 내적으로 단순해지면 단순해질수록
     사물을 보다 폭넓고 깊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필사자는 문자 삽화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통해 무한한 탐구를 시도함으로써
     
    거기에서 영원과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림을 ‘읽어가면서’ 그 그림이 담고 있는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학 교수이면서 아마추어 미술가이고 싶은 저자의 심리적 경향이 드러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흐름은 저자가 뽑은 각 시기를 반영하는 그림들을 실어 놓은 후, 그림의 작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식이다. 예를 들자면 황제 유스티아누스와 황후 테오도라의 거대한 그림에서 그들을 신성시하려는 당시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식이다.


         책 제목처럼, 그림은 역사가 남긴 자서전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그림 이외에도 인간이, 그리고 자연이 남겨놓은 수많은 유물, 유적, 기록, 생각이 모두 역사가 남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역사학자이면서도 미술에 관심이 많았기에 특별히 그림이라는 주제로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내려가고자 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단 그림이 아닌 다른 소재를 중심으로 역사적 흐름을 읽어 내려가는 책이 나올 법도 하다. 이를테면 ‘신발로 읽는 역사’ 등등..

         저자가 기독교인인지 책의 곳곳에 그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한 줄 글이나 성경의 한 절이 적혀 있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통상 역사책을 내면서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책 자체가 엄격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저자가 본 그림들을 차근차근 그 자신의 소감을 적은 것(다만 저자의 전공은 속일 수 없기에 거기에 역사적 배경이 들어갔을 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도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저자의 의도를 엄청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저자의 그런 시도 덕분에 역사상 남은 위대한(저자의 주관적 선택이지만) 그림들을 컬러 사진으로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럼에서 나의 시간을 보다,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빨강머리앤 | 2010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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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요한 드로이젠은 “역사야말로 동시에 예술이 될 것을 요구받는 모호한 행운을 누리는 유일한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역사란 당대의 숨결에 공명하는 예술가들에...

     독일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요한 드로이젠은 “역사야말로 동시에 예술이 될 것을 요구받는 모호한 행운을 누리는 유일한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역사란 당대의 숨결에 공명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로 태어난다. 그렇기에 후대의 우리는 예술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연결해 과거를 나름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리비도적인 관점으로 인지하는지 모른다.


    한국의 유명 역사학자 이석우가 쓴 <그림, 역사간 쓴 자서전>은 과거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거나 그것 안에서 다른 자의식을 표출한 예술가들의 그림을 역사와 연계해 풀어가는 미술사 서적이다. 위대한 인류 문화유산으로 칭송받고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 ‘들소와 사람’에서부터 한국의 정치사회적 환경 안에서 절망하거나 그것을 위무하려했던 김병기의 그림 ‘인왕제색’과 권순철의 ‘넋’까지, 역사학자는 역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위대한 그림의 역사를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역사학자다운 비판의식으로, 때로는 시대의 아픔에 동승하는 한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미술사에 대한 무지한 지식을 늘리고자 그간 여러 권의 미술서 관련 서적과 화보를 읽고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르네상스,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인상파,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파 등 각각의 미술사조를 시간의 순서에 억지로 끼워 맞춰 설명하고 있어 역사와 연관돼 고찰하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했다. 때문에 아무리 미술사 관련 책을 읽어도 왜 이 그림이 이 시대에 ‘왜’ 또는 ‘어떻게’ 그려졌고, 이것을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명작이네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가에 대해 나는 무지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미술과 역사에 대한 갈증을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은 다소나마 해갈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요 근래 본 미술관련 서적 중 단연 최고의 책이었다.


    총9장으로 나뉜 책의 목차는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근대, 그리고 현재별로 나뉘어 각각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상징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그림과 역사의 시간 속으로 읽는 이를 빨아들인다. 이석우 역사학자 자체가 그림에 매료된 사람으로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시대의 명화를 감상한 생생한 소감과 그것을 역사의 향기로 풀어내는 글솜씨는 가히 최고이다.


    특히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명저를 남긴 역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음을 책의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를 과학, 즉 객관적 과거의 시간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시(詩)로 파악해, 역사를 문학과 예술의 세계로 이해하려 했다.


    때문에 이 책 역시 이런 관점에서 역사와 예술을 독자가 마주할 수 있도록 써졌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대가의 그림들 안에서 역사의 숨결과 고통, 환희, 절망 등을 자연스레 공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정 이렇게 읽는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림’을 보고 읽는 것에 흠뻑 빠져 본 것은 처음일 정도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역사와 그림 소개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근대화의 시절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5장, 화려한 진보의 뒷모습’부터였다. 그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그 시대에 더 이상 왕과 귀족에게 후원의 명목으로 예속된 고용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느끼고 표현하고픈 것들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들을 혹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고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내면의 고독과 싸워야 했던 ‘불운한’ 예술가의 시대를 겪어야만 했다.


     





    이중 반 고흐의 ‘운동하는 죄수들’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 해석과 예술적 가치를 설명한 대목은 막연히 고흐를 좋아했던 나에게 일순 번쩍할 정도의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말년(말년이라 해봤자 35세다)에 생 레이미 정신병원에 수용됐을 때 그린 그림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구스타브 도레의 ‘교소도의 운동장’을 자신의 정신세계와 연결시켜 모사한 그림이다.


    그런데 높다란 병원의 건물 벽 사이로 원 대형을 이루며 걸어가는 환자(혹은 죄수)의 모습은 고흐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고 있음에도 그 시대의 아픔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석우는 고흐의 ‘그림에는 한 치의 속임수도 없었다.’고 표현했다. 난 그의 표현에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감동 한방을 제대로 얻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고흐의 그림을 한 개인의 불운에서만 보려했던 나의 편협한 시선의 잘못을 깨달았고 고흐의 그림에서 그 전 어느 때보다 깊은 감동을 받기까지 했다.


    이로써 진정 과거의 시간을 예술가의 주관적인 취사선택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 왜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림을 볼 줄 아는 대단한 안목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도식적인 설명에 의지한, 막말로 한쪽 눈 감고 보려했던, 나의 미술보기의 즐거움을 분명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대두된 부르주아의 출연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구폭발에 의한 개인의 존재적 박탈의식과 소멸감을 담은 엔소르의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도 근대의 이면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어 신선했다. 이석우는 엔소르의 그림에 빗대 ‘진보란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저 19세기 말에만 해당하지 않고, 오늘날의 진보에 퇴행까지 포섭하는 모습을 고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시대는 직․간접적으로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쳐, 한 폭의 그림을 남겼다. 허나 그 시간이란 것은, 결국 지금의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엔소르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또한 내가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이 책을 통해 체득한 부분이다.



    현재, 우리는 혁명을 꿈꾼다. 부조리한 정권의 행태로 인해 사회 전반에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혁명의 이중성을 샤갈은 자신의 그림 ‘혁명’(p.266)에서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출신 샤갈이 1차 대전 당시 모스크바에 머무르면서 목격한 혁명(레닌의 10월 혁명 또는 볼셰비키혁명)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였지만, 현실과 환상의 괴리로 말미암아 실패의 시간으로 역사에 각인되어 있다. 이것을 샤갈은 1937년 ‘혁명’이란 그림 안에서 자신의 내면에 각인된 고통과 과거의 시간에 새겨진 혁명의 의미와 그 상흔을 역설적인 배치로 표현해냈다.


    이석우 역사학자는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며 또 역사가 진실을 말해 줄 때까지는 얼마만큼을 기다려야 하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며 곤혹스럽기까지 하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샤갈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훗날 오늘의 한국이 겪고 있는 이 모든 부당한 일들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를 상상하게 됐고 두려움에 순간 움찔했다. 역사란 책임을 끝끝내 묻고 마는 생물적인 ‘결과물’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지금을 이런 식으로 내가, 우리가 방조(傍助)하는 것은 분명 뼈아픈 책임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돌아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샤갈의 그림은 그 점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었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앤디 워홀을 위시한 팝아트 이후, 보이는 것을 다시 보이게 하는 예술의 세계를 걷고 있다. 예술을 대량 소비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얼마나 과거와 연계해 예술을 소비하고 있는지 한번 쯤 자문 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보는 이의 의식과 이미지의 충돌을 의미하며, 그 이미지는 한 예술가의 가치관과 생애 그리고 그림을 그린 순간의 내면의 의식을 표출한 것이기에, 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역사와 시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술은 역사의 표정이며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자 역사와 만나는 직접적인 통로이다.’(p. 318) 또한 ‘세월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과 함께 자란다.’(p.322). 그러기에 나는 그림을 보면 마음을 키울 것이고 개인의 역사를 촘촘히 이어나가려 한다.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은 마치 나의 자서전을 보는 듯한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고 그럼으로써 예술과의 거리를 한 발짝 더 좁힌 것만 같다. 이제 그림에서 역사를 물을 때 ‘왜?’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를 스스로 묻고 답하며 그림과 진정으로 마주하고 소통하고 싶다. 설사 그것이 내 안에 내재된 고통과 상처의 시간을 다시 꺼내보게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책 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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