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0
20,000원 | 336쪽 | 230*160mm
종합평점 : 5 ( 1 명)
이 책은 제3제국 당시 히틀러와 나치즘에 동조했던 43명을 인터뷰한 ‘역사와 기억’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연구팀은 유명한 나치 범죄자나 지도자들 대신 히틀러청년단, 독일소녀연맹, 나치돌격대, 나치친위대, 나치당 등의 조직에서 활동했던 ‘아주 평범한’ 나치 추종자들을 만나 그들의 기억을 정밀하게 탐사했다.

저자는 나치의 정치 프로그램이 추종자들에게 수치심 방어의 수단을 제공하고 그것을 정당화함으로써 독일 국민들의 수치심을 도구화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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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력적인 의식
2장 최면적 무아지경
3장 수치심의 방어
4장 나르시시즘과 자아도취적 공모
5장 이전 세대의 트라우마
6장 종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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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
    괴물 | 2009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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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나치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나치즘과 히틀러에 조금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나치즘과 그에 열광한 독일인들이라는 장면이 ...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나치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나치즘과 히틀러에 조금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나치즘과 그에 열광한 독일인들이라는 장면이 워낙 불가해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치즘과 히틀러가 여전히 신화적인 방법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에 러시아 국가 기록 보존국에 보관되어 있는 히틀러의 유골이 여자의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히틀러가 여자였으며 죽을 때까지 남성호르몬을 복용했다던가 심지어는 히틀러는 죽지 않고 어디선가 제3제국의 부활을 꿈꾸다 죽었다는 설도 있으며, 아주 황당하게는 히틀러가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떠도는 것을 보면 어쨌건 히틀러라는 인물은 미스테리하기는 한가보다. 물론 책을 읽고 난 지금에야 다분히 히틀러와 나치즘이 가지는 신앙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는 대중들을 손쉽게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이용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건 저자인 슈테판 마르크스는 이제까지 독일인들의 나치즘에 대한 연구가 히틀러와 주동자들에 대한 연구위주로 이루어져왔으며 연구결과 역시 히틀러와 나치즘이 어떤 마력적인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식으로 다시 한번 신화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배움과 반성을 얻고자 하는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히틀러와 주동자가 아닌 나치즘을 추정했던 일반인과 동조자들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소위 '마력'이나 '매력'으로 포장되어왔던 나치즘을 해부하고자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제3제국과 나치즘을 겪은 43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그것이 '역사와 기억'이라는 프로젝트이고 이 책은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책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총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장은 다음과 같다.


    1장 마력적인 의식
    2장 최면적 무아지경
    3장 수치심의 방어
    4장 나르시즘과 자아도취적 공모
    5장 이전 세대의 트라우마
    6장 종속성


    1장에서는 금기, 카리스마 같은 개념과 함께 마력적인 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분명 나치즘에는 금기, 카리스마, 그리고 특정인을 신격화하는 등의 원시신앙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여태 그것을 나치의 프로파간다가 조장한 분위기로 보기보다는히틀러에 대한 연구들이 히틀러라는 인물의 비범함과 카리스마를 기정사실로 삼기를 우선했으며 저자는 히틀러의 비범함과 카리스마가 다소간 사실이던 아니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히틀러 개인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비신화화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을 방해한다고 한다.

    2장에서는 인터뷰에 응한 사람 중 상당수가 당시 최면과 유사한 상태를 경험했다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른바 최면적 무아지경의 상태를 경험한 나치 추종자들의 의식상태는 시야가 좁아지고 주의력은 특정대상인 히틀러에 한정되고 구속되며 비판력이 감소된다. 따라서 인터뷰이들은 당시의 자신의 상태를 현재의 이지적인 의식상태에서는 이해불가능하다거나 말도 안되는 것지만 당시에 어떠했다라는 식으로 자주 표현했다. 이러한 최면적 무아지경은 선동, 수사학, 의식(儀式), 음악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생산되어졌다고 한다. 그 중에 인상적인 것이 수사학이었는데 종종 히틀러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어마어마한 군중들은 한 시간 이상씩 히틀러가 도착하기를 무리속에서 기다려야 했으며 히틀러가 도착한 후 시작된 연설은 끝임없이 이어지는 설명과 길고 긴 문장으로 이어져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하고 몽롱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한다. 히틀러의 그러한 연설방식은 종종 인터뷰이의 말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실제로 인터뷰를 한 기자들은 그들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고 긴 문장과 모호한 말들 속에서 극심한 피로감과 몽롱함을 느껴 돌아가는 길에 차사고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그와 비슷한 방식의 수사법이 많은 사람을 주의력과 비판력 상실로 몰고 가며 집단적 최면 내지는 유사종교와 비슷한 광증을 유도해내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3장에서는 1차세계대전의 패배를 겪은 후 독일국민이 느낀 수치심을 나치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도구화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들먹이며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에서 독일의 명예를 세우리라고 역설하는 히틀러는 독일인에게 그들의 수치심을 ‘방어’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제공해 준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즘에 충성하는 것은 무력하고 굴욕적 존재였던 독일인들을 쓸모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독일은 도덕적 권위가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수치문화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차대전에서의 패망과 나치즘에서 늘 하는 소리인 명예와 독일인의 자부심운운 하는 소리를 생각해 보면 독일이 수치문화권이라는 것은 금방 유추가 가능하지만 언뜻 지금 당장 생각나는 수치문화권이 대표적으로 독일과 일본이라는 것은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었듯이 일본 역시 도덕률이 양심의 내재율에 따른다기보다 외부와의 관계속에서 결정된다.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의 참전 배경 역시 일본문화의 독특한 계층의식에서 바탕했고 그 계층의 최상위에 일본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민의식 역시 독일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물론 극단적인 자기훈련과 억압을 감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수치심의 방어로 기능한다는 점도 두 나라가 비슷하다.

    4장 나르시시즘과 자아도취적 공모는 어떻게 본다면 수치심이 방어되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패전국민으로서 무력함을 느끼던 개개인들이 나치의 소조직에 가입하고 받게 되는 갖가지 크고 작은 보상들은 그들의 망가지고 상처난 존재감에는 달콤한 특효약이 아닐 수 없다.


    사이밍턴은 병적인 나르시시즘을 인간이 견디기 힘든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전략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들어 유년 시절에 어른들의 관심을 받지못하고 방치되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처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생성된 트라우마의 체험과 같은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병적인 형태의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다.(p169)


    두 말할 나위없이 여기서 말하는 ‘트라우마’는 1차 대전의 패전 후 어린아이들이 그 세대 부모들에게서 방치된 트라우마를 말한다. 물론 어린아이였던 그들이 방치된 것은 1차대전을 겪은 그들 부모세대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5장에서는 어떻게 부모세대에서 다음세대로 트라우마가 전이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트라우마가 방어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탈현실화 - 고통의 차단(불감증) - 이상화와 영웅주의. 이러한 단계는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6장에서는 나치즘과 그 추종자들의 종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속성이란 다시 말해 ‘중독성’이다. 실제로 2차대전 당시 마약과 같은 정신성 약물의 남용이 횡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치즘은 추종자들의 의식 상태를 지배함으로써 매개물의 남용없이도 종속성을 가지게 된다.

    이상 각각의 여섯 장이 다시 말해 보통의 사람들이 나치즘을 추종하게 된 원인과 배경인 것이다. 저자가 말했다시피 이 책은 어떤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주지시키는 책이 아니라 나치즘이 그들의 추종자의 의식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나치즘에 종합적 고찰을 위해서는 개몽과 기념 기억과 반성의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기억과 반성의 과정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다시 히틀러와 나치즘을 신화의 영역으로 돌려보내게 되고 또다시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범죄자로 몰고가게 될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염려는 명백하게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충동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염려를 의미한다. (p286)

    마침 얼마전이 안중근 의사 100주년이었다. 한국은 2차대전의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겪어오며 가해자의 입장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다는 점에서 분명 이 책에서 분명히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여태 집중한 것이 단순히 사과와 보상, 그리고 단순히 역사적이고 객관적 사실에 대한 반복적 교육과 기억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일본인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에 어처구니 없는 일로 한 일본인과 말다툼을 한 후 심각한 자괴감을 느낀 적이 있는 나로써는 세대를 이은 트라우마의 전이라는 것을 아주 날 것으로 생생하게 경험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단순히 분노가 아니라  어떤 병증과 같은 것이었고 그것을 깨달은 후 나는 스스로에게 이차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 피해자의 트라우마 역시 치유되지 않았다. 지정학적으로나 여러면에서 한국은 일본과 좋으나 싫으나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면 좀 더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슈테판 마르크스의 이야기처럼 계몽과 기념, 기억과 반성의 과정을 통해 뻐아픈 역사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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