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e Wand (1957)
2009-10-05
13,000원 | 376쪽 | 188*128mm (B6)
종합평점 : 4.5 ( 1 명)
어느 날 갑자기 화석으로 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자,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기록!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더불어 20세기 오스트리아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장편소설 ‘벽’이 출간되었다. 1952년 마릴리라는 여자아이의 성정체성 갈등을 그린 단편 ?다섯 살?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장편 ‘한 줌의 삶’ ‘비밀문’ ‘우리가 죽인 슈텔라’ 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외받는 여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가의 대표작이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본질적인 작품이라고 말한 ‘벽’은 어느 날 갑자기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에 혼자 남겨진 여자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삶을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소설이다. 죽음보다 깊은 고독, 생존보다 가혹한 노동을 견디며 주인공은 자신처럼 벽에 갇힌 동물들을 돌보며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꾸리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순수한 삶을 영위해나간다.
‘벽’은 1963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어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핵전쟁에 대한 위기의식과 유럽을 휩쓸던 여성 문학 붐에 힘입어 1983년 독일에서 재출간되면서 ‘하우스호퍼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이는 하우스호퍼가 이 소설에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아남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위해 무한히 강인해질 수 있는 모성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암울함과 화사함,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고 있는 ‘벽’에서 생명을 낳고 생명을 보살피는 모성의 고통과 희열은 계절의 순환과 함께 무한 반복된다. 훈훈한 봄바람, 쨍쨍 내리쬐는 여름 햇볕,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천둥과 소나기, 젖소가 풀을 뜯는 초원의 냄새, 감자가 단단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 흰 눈이 덮여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는 혹독한 겨울…… 그 고요한 순환 속에서 어느 하루도 특별하지는 않지만, 또한 다른 날과 같지도 않다. 암소와 암고양이의 배가 불러오고 새끼가 태어나고, 새끼들이 죽어가고, 또다시 배가 불러오는 과정의 반복과 주인공이 그들을 보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는 감각들, 모성을 지닌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하우스호퍼는 이 작품으로 1963년 아르투어 슈니츨러 문학상을 받았다.

‘벽’ 속으로

사촌 내외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산장으로 휴가를 떠난 ‘나’는 도착한 날 저녁, 사촌 내외가 마을에 볼일이 있다며 나간 뒤 혼자 산장에 남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지난 밤 돌아오지 않은 사촌 내외를 찾아 나섰다가 적막한 숲 속을 둘러싼 투명하고 차가운 벽을 발견하고 그 안에 갇혀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밤사이 벽 바깥의 세계는 죽음의 폐허가 되었고, 모든 생명체가 돌처럼 굳어 있다. 카프카의 ‘변...
어느 날 갑자기 화석으로 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자,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기록!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더불어 20세기 오스트리아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장편소설 ‘벽’이 출간되었다. 1952년 마릴리라는 여자아이의 성정체성 갈등을 그린 단편 ?다섯 살?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장편 ‘한 줌의 삶’ ‘비밀문’ ‘우리가 죽인 슈텔라’ 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외받는 여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가의 대표작이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본질적인 작품이라고 말한 ‘벽’은 어느 날 갑자기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에 혼자 남겨진 여자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삶을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소설이다. 죽음보다 깊은 고독, 생존보다 가혹한 노동을 견디며 주인공은 자신처럼 벽에 갇힌 동물들을 돌보며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꾸리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순수한 삶을 영위해나간다.
‘벽’은 1963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어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핵전쟁에 대한 위기의식과 유럽을 휩쓸던 여성 문학 붐에 힘입어 1983년 독일에서 재출간되면서 ‘하우스호퍼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이는 하우스호퍼가 이 소설에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아남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위해 무한히 강인해질 수 있는 모성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암울함과 화사함,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고 있는 ‘벽’에서 생명을 낳고 생명을 보살피는 모성의 고통과 희열은 계절의 순환과 함께 무한 반복된다. 훈훈한 봄바람, 쨍쨍 내리쬐는 여름 햇볕,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천둥과 소나기, 젖소가 풀을 뜯는 초원의 냄새, 감자가 단단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 흰 눈이 덮여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는 혹독한 겨울…… 그 고요한 순환 속에서 어느 하루도 특별하지는 않지만, 또한 다른 날과 같지도 않다. 암소와 암고양이의 배가 불러오고 새끼가 태어나고, 새끼들이 죽어가고, 또다시 배가 불러오는 과정의 반복과 주인공이 그들을 보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는 감각들, 모성을 지닌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하우스호퍼는 이 작품으로 1963년 아르투어 슈니츨러 문학상을 받았다.

‘벽’ 속으로

사촌 내외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산장으로 휴가를 떠난 ‘나’는 도착한 날 저녁, 사촌 내외가 마을에 볼일이 있다며 나간 뒤 혼자 산장에 남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지난 밤 돌아오지 않은 사촌 내외를 찾아 나섰다가 적막한 숲 속을 둘러싼 투명하고 차가운 벽을 발견하고 그 안에 갇혀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밤사이 벽 바깥의 세계는 죽음의 폐허가 되었고, 모든 생명체가 돌처럼 굳어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어느 날 아침 갑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하듯, 벽이 생긴 원인이나 과정은 수수께끼로 남은 채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할 수 없이 개를 옆으로 밀치고 혼자 걸음을 내딛었다. 개가 길을 막는 바람에 내 걸음이 느려진 것은 다행이었다. 몇 발짝도 못 가 나는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룩스가 다시 킁킁거리더니 내 다리를 물고 잡아당겼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보니 무언가 매끄럽고 차가운 것이 만져졌다. 공기 이외의 다른 것이 있을 리 없는 곳에 매끄럽고 차가운 장애물이라니!(15쪽)

벽은 차단과 고립을 의미하지만 보호의 기능도 갖는다. ‘나’는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이었고 결혼 뒤에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던 주부였다. 늘 시간에 쫓기고, 고독과 공허에 시달리는 삶,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한숨 돌릴 겨를도 없는 삶을 살아온 ‘나’는 그런 사회(또는 현실)가 파멸한 것에 대해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사십 년 넘게 자신을 이루어온 세계와 단절된 가운데 ‘나’는 이제 산장지기가 키우던 룩스라는 사냥개, 초원을 헤매다 자신을 찾아온 벨라라고 이름 붙여준 암소, 새끼 밴 고양이와 함께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주인공이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고, 암소와 암고양이를 돌보는 삶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벽’의 존재가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벽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부숴버릴 수도 없는’ 삶의 조건 같은 것일 뿐이다.
벽으로 단절된 주인공은 처음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고 데리러 올 것을 기대하지만 머지않아 이를 두려워하게 된다. 벽에 갇힌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손도끼를 들고 나타난 낯선 남자로 인해 가족 같은 동물들을 잃고 사방에서 엄습해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쓰는 것이 즐거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쓰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 나를 생각하고 염려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길고 어두운 몇 달 동안의 겨울을 혼자 견뎌야 한다.(5~6쪽)

지금까지도 나는 그 낯선 남자가 왜 송아지와 룩스를 죽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휘파람으로 룩스를 불러세웠었다. 룩스는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다가 머리를 관통당한 것이다. 그 낯선 남자가 왜 내 동물들을 죽였는지 알고 싶다. (……) 11월이 되어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마지막 시도였다.(356쪽)

그로부터 넉 달 동안 ‘나’는 종이가 바닥날 때까지 사냥개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암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며 살아온 ‘벽’ 속의 날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땔감 마련하기, 암소에게 먹일 건초 마련하기, 암소의 젖 짜주기, 사냥하기, 감자밭과 콩밭 일구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한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에 따라 기록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벽 속에 갇히기 전 주인공이 딸로,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았던 지난 삶의 기억이 뜻밖의 깨달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로서의 벽

벽 이편과 저편은 문명사회와 자연으로 대립된다. 주인공이 갇힌 세계는 사냥을 위한 산장이 있는 숲으로 된 자연 공간으로 여기에 남겨진 문명의 흔적들은 점차 자연으로 대체된다.

가스관, 화물차, 송유관 등등. 이제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것들은 실용적인 물건 이상으로 우상화되어왔다. 이 산속 한가운데에도 그런 물건이 하나 있다. 후고의 검은 벤츠 자동차가 그것이다. 우리가 그 차를 타고 여기 올 때 차는 거의 새것이었다. 지금 그것은 수풀이 우거진, 쥐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287쪽)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대변되는 문명이 자연으로 대변되는 산에서 볼품없는 잔재만 남기고 있다. 낡고 쓸모없이 버려진 기술 문명의 산물들은 인간의 이룩한 문명의 종말을 상징한다. 또한 잡초에 뒤덮여 쥐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검은 벤츠는 남성 중심 문화의 해체를 알리기도 한다. 문명이 남성으로 대변된다면 자연은 여성성, 모성의 반영이다. 주인공은 문명에서 단절된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
‘벽’의 주인공이 처한 고독의 상태는 외적으로는 로빈슨 크루소와 흡사한 것으로 ‘여성판 로빈슨 크루소’로 불리기도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가 기존의 사회를 긍정하고 문명사회에서 배운 지식들로 자연을 이겨나가는 것과는 달리 ‘벽’의 주인공은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자연의 요소들을 배워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문명사회의 상징인 손목시계와 자명종이 멈추자 시계는 매일 오전 아홉시경에 날아오는 까마귀 소리로 대체된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동물들의 이름도 종을 표시하는 정도의 이름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인공의 문명에 대한 거부를 읽을 수 있다.

고립과 고독의 상징으로서의 벽

하우스호퍼가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유독 여성의 공간을 나타내는 제목이 많다는 것이다. ‘벽’ ‘비밀문’ ‘다락방’은 집의 내부 공간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더 가까운 영역이며, 여성들의 내면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두 아이를 키우며 치과 의사인 남편의 진료실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고, 시간이 나면 부엌 식탁에 앉아 글을 쓰던 작가에게 글쓰기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자 가능성이었다. 이렇듯 ‘벽’ ‘비밀문’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일기체의 서술 방식은 고립된 화자의 내적 독백이며, 폐쇄된 공간은 글쓰기 보호와 피신의 공간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벽’의 주인공의 글쓰기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주인공이 시계가 멈추거나 망가졌어도 결코 아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확한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이 여성의 시간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하우스호퍼는 주인공의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자아상을 다른 색으로 인해 무리에서 따돌림당하는 하얀 까마귀에게 투사한다.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날아올랐다. 그들은 숲 위를 맴돌며 울어대고 있다. 까마귀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나는 공터로 나가 하얀 까마귀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357쪽)

이 하얀 까마귀는 무척 아름답지만 다른 까마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까마귀들이 먹이를 먹고 떠난 다음에야 혼자 숲에 와서 주인공이 주는 먹이를 얻어먹는 외톨이 새다. 다수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경쟁에서 뒤지지만, 인내심을 가졌으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인공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 하얀 까마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주인공이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벽’의 주인공이 희생과 수동의 상태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았음을 암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벽’은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서이며, 여성의 소외를 밝히고 그 극복을 요구하는 페미니즘 소설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위한 제안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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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자, 유토피아를 건설하다!
    정군 | 2009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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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에 놀러간 여자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서 있는 언덕의 주변이 벽으로 가로막혔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유리벽이다. 바깥세상이 보인다. 그녀는 벽을 뚫으려 하지만 소용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산장에 놀러간 여자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서 있는 언덕의 주변이 벽으로 가로막혔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유리벽이다. 바깥세상이 보인다. 그녀는 벽을 뚫으려 하지만 소용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새로운 무기일까. 바깥세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다만, 사람들이 죽어있다. 모두 죽어있다. 벽 안에 있는 그녀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녀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갖고 있는 자원들을 모두 모아본다. 그녀에게는 강아지와 어디선가 떠돌던 고양이가 있다. 그리고 소도 있다. 그녀는 그것들을 키우면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주변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그녀는 남자 없는 세상에서 동물들의 가장이 되어 세상을 지키고 있었다.

    <벽>은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이 사라진 후에 홀로 남겨진 여자가 애를 쓰면서 살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읽는 즐거움이 독특하다. 이야기는 느릿느릿한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슬쩍 긴장감이 있고 이야기는 정적으로 보이지만 생존에 관한 치열한 욕망이 서려있기에 역동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의 즐거움은 ‘여성이 만든 유토피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시간으로 쓰여 진 소설이다. 남자 없이 여자가 동물들과 자연의 힘을 합쳐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분명한 성격을 갖고 있고 그만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소설은 흥미롭다. 그것을 만끽하고 있을 때, 별안간 무슨 일이 생긴다. 스포일러가 우려돼 말할 수 없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무엇일까. 벽이 갈라지는 것일까. 여자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중요한 것을 건네는 <벽>, 정말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 그녀의 강인한 생활력과 의지는 놀랍다.
    행인 | 2009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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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자고 일어나니 투명한 벽이 생겼다. 이 벽 너머 풍경이 보인다. 그곳엔 세수하다 죽은 듯한 노인이나 나무 위에 멈춰선 새 등이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폼페이의 화석 등을 연상한 것은 죽을 당시 표정이나 동...
    잠을 자고 일어나니 투명한 벽이 생겼다. 이 벽 너머 풍경이 보인다. 그곳엔 세수하다 죽은 듯한 노인이나 나무 위에 멈춰선 새 등이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폼페이의 화석 등을 연상한 것은 죽을 당시 표정이나 동작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벽 너머의 세계는 죽음으로 가득하고, 그녀가 머무는 벽 속의 세계는 자연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벽을 따라 혹시 끊어진 곳이 있나 찾아보지만 견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그녀는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으면서 로빈슨 크루소가 먼저 생각났다. 고립과 외로움과 생존을 위한 노력이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로빈슨 크루소는 섬 밖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살아남아 구조되길 바라는 반면에 그녀는 벽 밖의 풍경 속에서 희망을 잃고 있다. 희망이 없는데 그녀는 삶을 계속한다. 도시인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구의 종말일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말이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근육은 당겨지고, 초보 농사꾼으로 살아간다. 대단하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 강인한 생명력과 생활력은 단순한 풍경과 상황 속에서 긴장감을 전혀 늦추지 않는다.

    작가는 그녀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만들었다. 먼저 그녀가 사는 산장이 바로 핵전쟁 등이 발생하면 오랫동안 먹고 살 식량을 비축해둔 것이고, 다음으로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줄 동물로 개 룩스와 어미 고양이 한 마리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임신한 암소 한 마리를 주변에 놓아둬 풍부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중 의복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것이다. 옷이야 추위나 다른 곤충이나 벌레를 막을 정도면 되고, 옷장엔 옷들이 꽤 많다. 보여줄 다른 사람이 없으니 기본 기능만 제대로 되면 문제없다. 이런 기본에 산이란 공간이 지닌 풍부한 열매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같이 있다. 비록 그녀가 도시인으로 살아왔다고 하지만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살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이다.

    책 속에 다루어지는 시간은 2년 반 정도다. 첫해에 겪었던 시행착오가 되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점점 적응한다. 다만 풍족하지 못한 음식과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 때문에 고생할 뿐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농사일이란 것이 반복의 연속이다. 새로움도 있지만 땀과 정성으로 일궈지는 것이다. 거기다 그녀 주변에 동물들이 가득하다. 개, 고양이, 암소 등의 가금류뿐만 아니라 고기를 제공할 들짐승도 있다. 고양이와 암소는 임신한 상태고, 새끼를 낳는다. 이 가족이 점점 불어난다. 불어난 가족 덕분에 그녀의 할 일은 점점 많아진다. 쉬고 싶은 순간도 있고,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몸을 이끌고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만이 지구에 홀로 남은 상황에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이다. 과거 속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에게 큰 아픔이나 의미를 주는 것 같지 않다. 단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풍경에 대한 묘사와 그 속에 담긴 그녀의 심리와 행동을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려낸다. 문장은 간결하다. 감정이입을 강하게 시키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설명한다. 약간 건조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그녀가 처한 상황을 더 잘 알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역시 홀로 남았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고, 힘들지만 오늘 하루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데 말이다.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될 것 같다.
  • [벽]이 가로막을지라도 벽,문학동네
    행운바다 | 2009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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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자...생각을 해보자.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 그렇...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자...생각을 해보자.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과정을 추리해보기는 쉽지 않다.
    몇 일도 아닌 몇 년의 시간을 상상력만으로 그려내기엔 지나치게 경험밖의 일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 기대하고 설레였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40대의 여주인공은 사촌부부를 따라 주말여행을 떠나 산장에 머물던 어느날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산장 주변에 투명하고 딱딱한 벽과도 같은 장애물이 세워진 것이다. 만질 순 있지만 보이진 않는 존재. 그 존재 너머로 보이는 세계엔 움직이는 생명체라곤 없다. 모두 화석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죽은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녀는 강했다. 주변을 이해하고 정리하며 차분히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올때까지. 어쩌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상황일지도 모를 사태를. 다행히 그녀에겐 친구가 있다. 어미소와 개와 고양이. 그녀가 돌봐야하는 부담인 동시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나눌 친구들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벽은 쉽게 헐린다.
    우리 모두는 결국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며, 외롭고 불행해지면 아주 먼 친척들 사이에도 우정이 생기는 법이다.'


    벽이 생기기 이전의 그녀는 삶이 주는 무게로 벅차고 힘들었다. 오히려 혼자인 지금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며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그녀의 지난 날의 삶은 지금 '나'의 삶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땅의 평범한 주부들의 모습과 닮은 것이다. 가정과 자식이 주는 버거운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바람. 그래서, 그녀가 처한 고독을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그 안엔 해결해야할 생계문제가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식량이 줄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


    그녀와 함께 밭을 일구고, 소를 돌보고,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반복적인 시간들을 살다보니 어느새 지루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지만 그 또한 내마음에 쏙 드는 상황은 아니다. 어느 것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없다. 산속에서 홀로 지낸 2년 여의 세월을 그녀는 잘 꾸려 나간다. 감자와 콩은 제 때에 수확을 했고, 어미소는 수소를 낳았고, 여전히 발랄한 개는 졸졸 따라 다니고, 고양이는 세 번이나 출산을 했으니 이들의 세상은 평화롭다. 그런데, 그런 가족의 평화를 짓밟는 인간, 남자가 등장한다. 느닷없이 나타나 그녀의 개와 송아지를 죽인 한 남자.


    벽이 생기고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상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다른 생존자가 아니던가. 어쩌면 안정적인 그녀의 삶에 파란을 일으킬 존재 이상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의 세상에 들어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헤치는 인간은 이제 '적'일뿐이다. 남자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궁금함도 없다. 이미 그녀의 세상에선 필요하지 않기에... 


    2년 반 동안 홀로 산속에서 지낸 일들을 기록한 이 일기는 경험할 수 없는 범주의 공포와 암담함을 차분하게 풀어가며 동참하게 해주었다. 그녀와 함께 벽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동물들을 걱정하며, 밭을 일구고 풀을 베고, 매서운 날씨를 견뎌내며 어느새 강인한 여자가 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보다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감동이 밀려드는 소설이었다. 다시 곱씹어 볼 수록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런 책 때문에 책을 읽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하루도...

책 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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