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8
13,000원 | 564쪽 | 195*135mm
『파랑이 진다』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관록의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장편소설로, 주인공 료헤이의 대학 사 년간의 궤적을 좇으며 청춘의 눈부신 열정과 나른한 우울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1982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30쇄를 웃도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2007년에 재출간되었을 정도로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그야말로 청춘소설의 고전이자 스테디셀러입니다.
재수생 시이나 료헤이는 목표했던 교토의 대학에 들어갈 성적이 되지 않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새로 생긴 대학에 지원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지원서를 내러 간 날, 빨간 레인코트를 입은 미모의 여학생 사노 나쓰코와 마주쳐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입학 첫날에는 테니스부원을 모집하던 거구의 가네코 신이치와 만나는데, 그의 페이스에 말려 얼떨결에 테니스부에도 발목을 잡히고 맙니다. 우연히 마주친 이 두 사람이 료헤이의 대학생활을 좌우합니다.
이 소설에는 나쓰코라는 버거운 상대와 테니스에 매달린 료헤이의 대학생활을 통해 풋사랑과 우정, 좌절과 우울,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는 청춘의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젊음이라는 보석과 넘치는 자유를 가지고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망설이는 청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놓치고 마는 청춘, 뭔가에 혼신의 열정을 쏟고 환희를 맛보거나 좌절을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청춘……. 청춘을 기다리는 사람이든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이든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파랑은 청춘을 상징합니다. 청춘이란 말 그대로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날 같아서 영원하지 않고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졸업을 앞둔 료헤이가 인생에서 한 시절이 끝났음을 깨닫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출발에 대한 암시로 가득합니다. 소설가 모리 에토는 이 작품에 대한 서평에서 “책을 덮고 끝도 없이 상상했다. 그와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던 걸까?”라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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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3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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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랑이 진다 미야모토 테루, 일본소설
    치카 | 2010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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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이 진다,라니... 왠지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이라고 나직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아, 그러고보니 나는 이제 파랑이 진다는 느낌을 넘어서 오래전의 내 청춘을 기억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지도 ...
    파랑이 진다,라니... 왠지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이라고 나직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아, 그러고보니 나는 이제 파랑이 진다는 느낌을 넘어서 오래전의 내 청춘을 기억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만큼 파랑은 청춘의 파릇파릇함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된 색인거네.

    그동안 읽었던 청춘에 관한 일본의 소설들은 대부분 좀 더 어린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많았고, 생각보다 가벼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리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미야모토 테루의 '파랑이 진다'는 좀 더 진지하게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의 줄거리라고 하면 주인공 시이나 료헤이의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맥락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맥락속의 줄거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파랑이 진다'는 시이나 료헤이의 대학 입학과정과 대학생활의 일상을 통해 청춘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기보다는 청춘이기에 가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로 어긋나고 엇갈리고 오해하게 되는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용기 또한 담고 있다.
    십대를 지나 이십대 초반의 삶은 너무나 희망적이고 열정에 넘치거나 무기력하고 미래가 없는 듯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많이 읽었던탓인지 이 책은 담담한 일상이기에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조폭같은 분위기의 응원단이라거나 대학입학과 동시에 사법고시합격만을 위해 공부만 하는 친구라거나 첫사랑을 숨기고 바라보기만 하는 우정은 그들 나름대로의 특별함을 담고있기도 하다.

    닥치는대로,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마구 살아가고 있는 듯한 청춘들이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그들 나름의 고민과 좌절과 희망을 모두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이십여년전에 씌여진 이 작품을 여전히 살아남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테니스의 왕자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춘소설이라는 특성으로 좀 더 멋진 테니스 경기의 모습이 그려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처음엔 괜한 섭섭함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평범한 이들의 최선의 모습이 훨씬 더 멋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도 이 책을 청춘소설로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리라.
  • 청춘은 아름답다
    행인 | 2010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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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은 아름답다. 미숙하지만 열정과 정열이 있어 그 아름다움은 빛난다. 가끔은 주춤거리고, 가끔은 무모할 정도로 달린다.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그 청춘을 완전히 불태우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다. 몇 개의 이야...
    청춘은 아름답다. 미숙하지만 열정과 정열이 있어 그 아름다움은 빛난다. 가끔은 주춤거리고, 가끔은 무모할 정도로 달린다.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그 청춘을 완전히 불태우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다. 몇 개의 이야기 거리와 밋밋한 생활의 반복만 있었다. 그런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소설 속에서 만나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삶은 부럽고 아름답고 보면 즐겁다.

    비록 삼류대학이고, 별 볼일 없는 테니스부원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열정과 진심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일류대학의 어중간한 학생들은 평생 동안 경험할 수 없는 멋진 경험이다. 우정, 사랑, 열정, 운동 등이 어우러져 사년 동안의 학교생활이 눈앞에 결코 화려하지도 과장되지도 않게 펼쳐진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벽에 부딪히는 그들을 보면서 눈을 떼기 힘든 것은 아마 청춘과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열정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보여주는 미숙함도, 서투름도, 허세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료헤이가 삼류대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입학서류를 내려고 왔을 때 본 한 여학생 때문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아마 학교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녀가 바로 료헤이의 짝사랑인 나쓰코다. 나쓰코는 입학 후 료헤이가 테니스를 하게 되는데 일등공신이다. 평생 친구가 될 가네코를 만나서 테니스부에 가입하고, 사년 동안의 학창시절을 운동으로 보내게 된 것이 바로 그녀와의 만남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테니스로 가는 길만 열어준 것이다. 그 후는 테니스에 대한 재미와 열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청춘과 스포츠를 엮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료헤이를 비롯한 대학생들이다. 그들의 감정과 열정이 이야기 밑에 도도히 흘러가고, 강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서로 엮인 관계가 우정이란 이름으로 맺어지고, 숨겨진 감정은 조용한 관찰로 조금씩 알려진다. 이런 미묘한 관계들은 뒤로 가면서 하나씩 밝혀지고, 그 속에서 그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이 성장을 작가는 사년이란 시간을 통해 공들여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천재적인 테니스 선수는 선천적인 정신병으로 그 결실을 맺지 못하고, 평범한 선수들은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더디기만 하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수백 번 수천 번 라켓을 휘둘러 실력을 키우지만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으로 내공을 다진 그들을 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사랑에 머뭇거리고,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에 두려워하지만 그것 또한 견뎌내는 그들을 보면 지나온 나의 시간들이 생각난다. 지금도 변함없는 부분이 있으니 시간이 모든 것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결코 어렵거나 난해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가독성 좋은 문장과 이야기로 젊음과 열정을 보여준다. 신문 연재라 약간은 중복이란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지만 대학시절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빠르고 가끔은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면서 진도가 나아간다. 그 덕분에 읽기는 더 편하고, 설명이 생략된 곳은 상상력으로 그곳을 조금씩 채워나간다. 그리고 시대 배경이 일본의 1970년 전후 같은데 지금과 너무나도 다른 그들의 모습에 조금은 낯선 느낌이다. 뭐 한국도 불과 십 수 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과거의 시간은 단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청춘과 삶인 것이다. 바로 그 곳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지나온 시간들이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제 낭만이 점점 사라지고, 입사학원으로 변해가는 대학을 생각하면 이들의 삶은 더욱 빛난다.
  • 내 씁쓸한 실패의 기억, 청춘 <파랑이 진다>
    빨강머리앤 | 2010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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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일본에서 발간된 미야모토 테루의 청춘소설 는 마치 빛바랜 사진 같은 소설이다. 누렇게 변한 사진 속에서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종종 아려한 향수와 미약하나마 가슴 저린 통증을 수반한다. ...

    1982년, 일본에서 발간된 미야모토 테루의 청춘소설 <파랑이 진다>는 마치 빛바랜 사진 같은 소설이다. 누렇게 변한 사진 속에서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종종 아려한 향수와 미약하나마 가슴 저린 통증을 수반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나는 청춘일까?’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답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이른 봄날, 주인공 료헤이는 오사카 교외의 신설 사립대학교의 입학 접수창구 앞에서 입학신청을 놓고 망설인다. 그때 빨간색 코트를 입고 나타난 미모의 나쓰코를 만난다. 나쓰코에게 첫눈에 반한 료헤이는 그녀가 입학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입학을 결정한다. 이렇게 시작된 료헤이의 대학 4년간의 생활은 사랑, 이별, 우정, 죽음으로 무료한 듯 촘촘하게 이어진다.




    주인공의 4년간의 대학생활을 우울한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낸 <파랑이 진다>는 2가지의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68년 일본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인 전공투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시대적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대학 테니스부 활동을 소설의 주요 스토리 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시절, 이처럼 주인공은 동시대에 살짝 비껴간 대학 생활을 보낸다. 료헤이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가네코는 테니스부 주장으로서 테니스부의 발전에만 매달리고, 부유한 집안의 딸인 나쓰코는 오직 대학생활을 즐기는 일에만 매달린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테니스에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은 안자이는 집안 내력으로 이어져 온 정신병을 이기지 못해 자살, 곧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왕도가 아닌 패도의 방법을 써서라도 테니스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구다니와의 우정. 싱어송라이터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야쿠자 여자와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걸리버의 겁 없는 사랑과 무모한 용기. 이렇듯 등장인물 모두 전공투 시절의 그 치열함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나쓰코를 향한 길고 긴 대학 4년간의 짝사랑과 테니스부 친구들과의 우정은 료헤이의 청춘을 우리의 청춘과 포개어지게 만든다. 나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류헤이와 그의 친구들은 꿈과 희망을 쫓기보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래를 애써 회피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류헤이의 말처럼 대학 4년간의 생활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 내던져지기 전에,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휴가 기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의 청춘은 소설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지 않는다.


    엇갈리는 시선 속에서 빚어지는 사랑의 아픔과 이별, 그리고 친구의 자살 등은 미래의 꿈과 희망마저 빛바래게 만들 뿐이다. 이념을 중요시하는 40년 전의 그때든, 경제 불황 속에서 취업만이 대학생활의 목표가 되는 지금이든 간에, 어떤 시대고 갓 20살을 넘은 이 유약한 청춘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 때문에 청춘은 언제나 ‘실패’를 담보로 하고 있다. 실상 그들의 청춘은 인생의 휴가기간이 아닌, 실패에 덤덤해지는 법을 배우는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것이다.


    무승부가 없는 테니스 경기처럼 이 사회는 오직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만을 가린다. 그 냉정하고 잔혹한 잣대를 극렬하게 부정하고 싶어도,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처럼 우리는 참고 견디는 길을 선택한다. 사실 우리는 안다. 그 인내의 끝에 성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써 그 잔혹한 삶의 진실을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류헤이를 통해 지나간 청춘을 뒤돌아보았다.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도 이리 가슴 저리게 떠오르는 것은 잔혹하리만치 거듭된 실패의 기억이 선명해서다. 언제나 열에 들떠있던 청춘을 오래전에 떠나보냈것만, 지금의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실패하거나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설사 아직 마음만은 청춘이라며 꿈을 좇아가고 있더라도 그것 역시 실패라는 한 챕터로 막을 내릴 것이다. 대신 우리가 꼭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실패와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에 다시 서는 것뿐이다.


    <파랑이 진다>는 청춘의 우울한 실패의 기억을 적어내린 사적 리얼리즘 소설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이 소설을 통해 청춘은 현실에 치여 청춘의 그 푸른색을 잃어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30년 전에 써진 작가의 생각에 이만치 공감하는 것은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의 영향도 크겠지만 한편으론, 잔혹한 청춘의 시기를 지금도 보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에서 기인한다. 아직 나는 지나간 것이 청춘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나보다.


    낡고 좁은 중국식당의 다락방에서 류헤이의 친구 걸리버는 꿈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를 부유하듯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인간낙타’로 상징해 노래한다. 걸리버의 노래가 진짜 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지금의 내 모습이 제발 인간낙타가 아니길, 그 짙고 푸른 색깔은 바래지었을지언정 청춘의 유예기간을 다 소진한 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청춘이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것임을. 자조 섞인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번져갔다. 


    희미해진 파랑색 위에 이제 나는 무슨 색깔을 덧칠해야 할까. 파랑처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삶의 빛깔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 있으면서도 발을 내딛기가 망설여진다.

책 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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