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상 지음
2010-01-20
18,000원 | 392쪽 | 225*170mm
잊혀 가는 삶의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기쁨과 눈물들을 만나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노익상이 10여 년에 걸친 취재 기간과 5년의 집필 과정을 거쳐 엮어낸 사진에세이집에 시선이 머무를 것이다.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 1970, 8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짓고 살았던 민간 가옥을 직접 찍은 120여 장의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우리에게 잊혀 가는 살림집과 마찬가지로, 잊혀 가는 말과 풍경들을 글과 사진으로 담으려고 부단한 노력과 아끼지 않은 저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을 통해 ‘함께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우리가 현재 이 사회에서 겪는 갈등과 아픔이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찾아보면서 “응어리 있는 아픔들을 풀어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11가지 형태의 살림집에는 길가에 들어선 가난한 집의 초기 정착 형태 <외주물집>, 제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던 이들의 <외딴집>, 화전민을 집단 이주시킨 <독가촌>, 대민 감시 기능을 하면서도 배워서 가난을 이기기 위한 <분교>, 도시로 들어와 쫓기며 고단한 살림을 꾸려야 했던 <막살이집>, 떠남(이주)으로서 이겨보려는 <간이역>, 도회나 광산촌으로 떠나기 위해 서성대던 <차부집>, 그리고 그들이 도시 일용자로 몸을 뉘던 <여인숙>, 군사정권의 강력한 실천 의지였던 새마을 운동과 공업화 정책을 설명하는 무렵 등장한 <미관주택>,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이동 경로이자 모순되고 파편화된 공동체성이 아파트를 통해 확산되어 가는 모습인 <시민아파트>와 <문화 주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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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집을 보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잊곤 한다.
    행인 | 2010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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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흔히 시간 내어 찾아가서 보는 집은 문화유산이거나 화려한 집들이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집에 산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극히 소...
    우리가 흔히 시간 내어 찾아가서 보는 집은 문화유산이거나 화려한 집들이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집에 산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럼 대부분의 서민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작가는 이런 자료가 없거나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긴 시간을 들여 이렇게 가난한 우리 서민들의 살림집을 글과 사진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속에서 만나는 집 중 몇몇은 이름조차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집들이다.

    모두 열한 집이 나온다. 그 중에서 분교와 간이역을 제외하면 모두 아홉 곳이다. 외주물집, 외딴집, 독가촌, 차부집, 여인숙, 막살이집, 미관주택, 시민아파트, 문화주택 등이다. 처음에 외주물집을 보고 읽으면서부터 낯설다. 분명히 어린 시절 주변에서 많이 본 집들인데 이렇게 불린다는 것을 안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작가가 긴 세월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고 살아가는 집과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작가를 통해 보는 삶은 깊은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위치에서 본 내용들이다. 그렇다고 그 세부적인 상황이나 현실이 그냥 묻혀버린 것은 아니다.

    한국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과 집들은 한 장의 사진으로 몇 장의 글로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 집들과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요청에 의해 점점 없어지거나 사라졌다. 근대 이후 이런 집들이 왜,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지를 시대 속에서 보게 되면 가슴이 아린다.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농경문화의 특징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놀이와 문화가 생전 처음 듣고 본 것이란 독가촌의 경험을 듣는 순간 어리둥절함과 굳건하게 뿌리내린 상식의 벽이 무너진다.

    정겹고 그리운 풍경으로 이제 변한 분교와 간이역의 다른 역할을 알게 될 때는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 느껴지고, 분단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군사독재 속에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미관주택 이야기 속에선 평양의 거짓 건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도시의 흉물로 변한 시민아파트의 역사는 졸속 행정이 만들어낸 산물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 문화주택이 어떻게 개량 한옥과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는 나의 개량한옥에 대한 이유 없는 선호가 살짝 부끄러워진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집만 보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실제 그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대로 저런 곳에 살면 걱정이 없겠다고 하지만 그들도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현대화 물결 속에서 개인의 생활 보장이 점점 중요해지는 요즘 외주물집의 노출된 환경은 옛날 이웃 사촌간의 관계와는 분명히 다르다. 외딴집의 외로움은 사진 속의 개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작가가 차부집에서 먹은 라면의 추억은 입가에 침이 고이고, 옛날 큰아버지 집을 생각나게 한다. 막살이집은 어릴 때 길 하나를 두고 살던 아이들이 눈가에 아른거리고, 철없던 그 시절이 그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사진이 많은 책이라 단숨에 읽으려고 했다. 실제로 하루 만에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과 되살아나는 추억과 기억들이 나를 즐겁게 만들기보다 괴롭혔다. 한 장의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감탄하다가도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으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집들은 그리움을 불러오고, 무표정하거나 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집의 변화를 풀어내고, 그 역기능뿐만 아니라 장점도 같이 다루는 작가의 시각에선 한 수 이상 배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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