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지음
2010-02-25
15,000원 | 304쪽 | 225*148mm
종합평점 : 4.7 ( 3 명)
이어령이 전하는 \\\'영성\\\'에 대한 참회론적 메시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2007년 7월 24일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본주의적인 작업을 뒤로 하고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오늘부터 저는 신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많은 직함을 갖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이 길이 외로울 수도 있지만 신자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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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제1부 / 교토에서 찾다

<01> 쌀 한 자루 영혼 한 자루의 무게
<02> 창조의 힘 흉내내기
<03> 메멘토 모리
<04> 아버지의 이름으로
<05> 설거지를 할 때가 왔구나
<06> 끈을 잘라라
<07> 휴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
<08> 신앙에 이르는 병
<09> 살찐 새는 날지 못한다
<10> 회개 없이 돌아온 탕자
<11> 낙타의 눈물
<12> 예술의 힘과 사막의 사자
<13> 양치기의 리더십
<14> 먹는다는 것. 최후만찬

제2부 / 하와이에서 만나다

<15> 전화 한 통으로 바뀐 세상
<16> 그날 새벽빛이 그렇게 빛나지만 않았더라면
<17>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아침 뉴스
<18> 버려진 돌로 만드는 신전
<19> 세례는 씻기는 것이 아니라 캐내는 것
<20> 이마를 짚는 손
<21> 어머니의 귤
<22> 인력거를 탄 어머니의 부활

제3부 / 한국에서 행하다

<23> 일곱 빛깔 무지개와 칠일간의 천지창조
<24> 문화를 뛰어넘는 균형의 힘
<25> 예수님의 두 손, 바위와 보자기
<26> 제비가 물어다 준 신앙의 박씨
<27>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28> 내 눈물이 나의 양식이 되었도다
<29> 아버지 없는 사회
<30> 참된 포도, 시지 않는 포도의 수확
<31> 인간은 시간으로 재고 하나님은 마음으로 재신다

제4부 / 아버지와 딸의 만남

민아의 편지-빨간 우체통의 작은 기적
아버지의 편지-너는 나의 동행자
<32> 믿음의 시작
<33> 더 이상은 내 힘으로 살 수 없구나
<34> 주님 저를 써 주세요
<35>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자식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제 5부 / 문지방 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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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빈자리는 영원히 비어있을 수 없는 법
    노란가방 | 2012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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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약 。。。。。。。     저명한 학자인 저자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자전적으로 풀어 낸 에세이집이다. 대체적으로 시간적, 또는 논리적 순서에 ...

    1. 요약 。。。。。。。

         저명한 학자인 저자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자전적으로 풀어 낸 에세이집이다. 대체적으로 시간적, 또는 논리적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각각의 글들은 또 나름대로 독립된 것들이기에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려고 하지는 않아도 된다.



    2. 감상평 。。。。。。。

         저자는 사랑하는 딸의 질병과 회복의 과정을 보면서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고백하지만, 사실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그것은 근인(近因)일 뿐이었다. 보다 멀리는 ‘무신론자의 기도’에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그가 신앙을 갖기 이전부터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영적 공허감을 느꼈을 때부터 이미 그의 신앙으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영혼의 빈자리는 영원히 비어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저자의 따님이 쓴 간증문은 사족을 붙인 느낌이다. 물론 어떻게 저자가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보조적 자료로 기능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저자 자신의 글에 살짝살짝 드러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분의 신앙이나 신앙방식에 대해 이의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 간증이란 건 한 개인의 신앙 여정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줄지는 모르나, 그것을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적용을 하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 부분은 출판사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의 이력답게 저자의 글은 때로는 문학적으로, 또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가적 문체로, 호소력 짙은 강연자나 연설가로,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느낌의 글을 읽어가는 맛이 있다. 그래,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보면 어느새 정곡을 찌르고 있다. 맛이 살아 있는 글이다. 

         책 제목인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문구는 저자의 이력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이 부분이 책 자체엔 충분히 설명되고 있지는 못하다. 내가 보기엔 저자는 이 책을 지성인으로서 썼다기보다는 신앙인으로서 쓰고 있다. 물론 그런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글에도 언뜻 드러나는 저자의 통찰은 감탄을 자아내긴 하지만, 지성인들을 회심시키는 데 이 책이 직접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하는 기대는 접는 게 낫다(사실 뭐 신앙이란 게 설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긴 하다).

  • 무신론자 이어령, 영성의 문턱에 들어서다
    littlechri | 2010년 04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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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있는 창세기를 자주 읽었던 무신론자가 있다. 하나님이 낯선 것에 제각기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것에 감탄하여 하나님을 시인으로 이해한 시인이다. 자신도 그...

    젊은 시절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있는 창세기를 자주 읽었던 무신론자가 있다. 하나님이 낯선 것에 제각기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것에 감탄하여 하나님을 시인으로 이해한 시인이다. 자신도 그 하나님을 닮아 창조적인 문학작품을 써 보고픈 마음에 가끔 기도를 올린 우리시대 최고 지성인이자 연금술사다. 


    바로 이어령 교수가 그다. 어떻게 그가 상대자로 여기던 하나님을 절대 타자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딸이 아파하는 갑상선 암과 시력장애, 손자가 괴로워하는 정신질환이 하나님에게 다가서도록 한 것이다. 자식과 손자를 대신해 아파하거나 치료해 줄 수 없는 육신의 아버지 너머로 천상의 아버지가 치료해 준 게 그 계기였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 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123쪽)


    이것이 하와이 원주민들이 모여든 작은 예배당에서 드린 기도였다. 이전에 교토에서 홀로 생활할 때 읊조린 무신론자의 기도와는 전혀 차원과 밀도가 달랐다. 그야말로 병이라는 고통 속에서 신이라는 광맥을 찾는 기도였다. 그것이야말로 미적단계에 머물러 있던 그가 종교적 문턱을 밟은 최초의 호소였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무신론자였던 그가 유신론자가 된 배경과 그 간격들을 단백하게 그려주고 있다. 작년에 나온 〈젊음의 탄생〉이나 몇 해 전에 읽은〈디지로그〉와는 사뭇 다른 시성과 감성들을 발견케 된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기호학적 연상을 뛰어넘어 신을 향한 구도자의 소박함이 묻어 있다.


    물론 그는 딸로 인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지만, 기적 자체가 하나님을 찾는 목적일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그것은 기복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그가 믿는 기적이란 이 세상에 단 하나, 오직 부활과 영원한 생명뿐이다.


    그렇다면 영성의 문지방을 넘어선 이후, 여태 갈구해 온 지성과 이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성과 이성을 부정하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단정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성과 이성은 영성을 보완해 주는 마중물 같은 것임을 밝힌다.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합니다.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성이 없어져야 영성이 맑아진다는 태도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152쪽)


    지성과 이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 영성은 신비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몸이 영을 담는 그릇이듯이, 영성은 지성과 이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영성은 지성과 이성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떠난 것은 광신이 될 뿐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그가 영성의 문지방으로 올라서지 못한 것은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라 한다.


    이른바 한국교회 내에 자리 잡고 있는 맹목적인 광신, 종교 우월주의적인 이기적 사랑, 채우고 쌓아 올리는 세속 욕망의 유형들이 그를 여태껏 무신론자로 주춤케 한 이유였으리라. 물론 교회를 통해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과 개별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현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를 영성의 문턱으로 이번에 끌어올린 것도 후자였던 것이다.


    아무쪼록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며 세례까지 받은 그다. 그것이 주는 무거움을 몸소 느끼는 바일 것이다. 세례란 그 몸이 물에 잠기는 의식을 뛰어넘어 영성의 수맥이 그를 통해 흘러나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를 비울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 때에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관용이 충만하게 드러날 수 있으며, 그 때에만 참된 영성의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까닭이다.

  • 그는 과연 한국의 C.S 루이스다
    stella09 | 2010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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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간증집을 읽게되는 경우가 있다. 뭐 그런 책이 어떤 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밝혀 놓은 책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책을 읽으면 나름 은혜가 되고...

    가끔 간증집을 읽게되는 경우가 있다. 뭐 그런 책이 어떤 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밝혀 놓은 책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책을 읽으면 나름 은혜가 되고 감동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간증집이 워낙에 많이 나오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직간접으로 듣게 되는 것들이 또한 간증이라 굳이 그런 책을 일부러 사 보게 되지는 않는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때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저자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 문화부장관이면서 교수인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에 귀의하고 그 느낌, 체험, 사색, 간증을 쓴 책이니 어찌 관심을 안 가질 수 있을까?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이어령 교수가 쓴 책 한권쯤은 독파를 했으리라. 나 역시도 한때는 이분의 책이 좋아 몇권 사 모았다. 사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이분의 책이나 강연을 들으면 이분이 쏟아내는 지식의 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다. 그의 지식의 스펙은 국문과 교수라고는 하지만 국문학 한가지에만 국한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분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한 일련의 작업들로 더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론 기호학이나 문학평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분이 신앙 간증집을 냈으니 그 향취는 어떠할까? 자못 궁금해졌다. 


    이런 분을 두고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 전공분야 안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나는 같은 간증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간증을 좋아한다. 자기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간증. 이를테면 자기 삶 따로, 신앙 따로의 간증은 때로 역겨울 때가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자기만 사랑하는 양. 또는 간증을 못해 안달 난 암고양이 마냥 빤히 들어나 보이는 간증은 금방 그 바닥을 들어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어 본 간증집 중에 나름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오래 전에 읽은 카피라이터 이만재씨가 쓴 <막쪄낸 찐빵>이다. 이책은, 누가 글쟁이 아니랄까봐 신앙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읽으면 킥킥대고 웃음이 나올만큼 재미도 있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정말 자기 전공분야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좋은 간증집이다. 사실 그에 비하면 이책은 다소 묵직하고 어려운 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어령 교수는 한때 무신론자로서 기독교와 배치된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듯이, 인간의 허다한 많은 지식이 하나님께 눈을 뜨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그는 흡사 바울을 많이 닮은 듯도 하다. 하지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지 못 들어간다고 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식인 역시 천국에 못 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부자나 지식인이나 안 믿던 사람이 신앙에 귀의해서 180도 달라진 삶을 산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건 저자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 때로 하나님을 부정하는데 쓰일수도 있는데 그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그것을 이름하여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안 믿는 사람의 편에서 얘기한다면(어차피 간증이라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을 믿게끔 만드는 것이기도 한만큼) 모든 지성 중의 최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만큼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령 교수는 재대로된 수순을 밟고 결국 영성에로의 방점을 멋있게 찍은 분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리더십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고, 기호학으로도, 문화에서도 하나님의 원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읽다보면 하나님을 학문적으로 증거한 학문이라는 변증학의 대가 겸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의 한 사람이라던 C.S 루이스가 생각이 난다. 말하자면 이어령 교수는 한국의 C.S 루이스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학자로서만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면 나름 권위만 지녔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하나님을 다 증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글에선 부성애가 느껴진다. 그는 특히 따님인 민아 씨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데, 사실 이어령 교수 그 자체로는 그다지 신앙에 귀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당대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지성인이요, 문화부장관이란 명예까지 누린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 예수님을 믿었겠는가? 그러나 그의 따님인 민아씨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만다. 즉 민아씨의 많은 어려움 중 정점을 찍었던 건 그녀의 망막파열로 실명이 될거라고 했을 때 아버지로써 결국 하나님께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이땅의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 가장 강한 척하는 약한 자인지도 모른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딸의 병을 고쳐주시면 예수님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서원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것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을 터. 이책에 수록된 글들은 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산 그의 발자취를 기록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지성이 무엇이고 영성이 무엇인지를 그 특유의 화법으로 잘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자주 자주 딸 민아씨의 얘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한 평생 책만보고 연구만 하느라 아버지 노릇은 잘 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의 부성이 곳곳에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작고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딸에 대한 부성을 그의 수필집에 기록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책은 저자에겐 참회록이라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독자에겐 인문학적 향취가 가득한 저자의 영성에 대한 기록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고 뿌듯했다. 믿는 사람 뿐만아니라 안 믿는 사람에게도 읽으면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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