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10
12,000원 | 246쪽 | 215*153mm
종합평점 : 4 ( 1 명)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의 자서전적인 체험 수기. 그 체험을 바탕으로 프랭클 박사는 자신의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이룩한다.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의미와 책임의 확고한 유형으로 짜 만드는 것이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현대 실존 분석과 로고테라피의 목적이자 추구하는 바다. 그는 이 책에서 로고테라피의 발견으로 이끌어간 체험을 설명하고 있다. 잔인한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 생활로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아리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으며,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로고테라피의 실존 분석을 충분한 사례를 들어 다루고 있다. 프랭클 박사는 3단계로 나누어 의식적이며 책임을 지는 인간의 두 현상을 양심적인 현상으로 묶어 실존 분석의 기본적 현상으로 삼고 있다. 이로써 무의식적 심령 현상으로 파고들었고, 정신요법의 실존 분석을 확대 및 인간에게 의식적인 면과 동시에 무의식적인 책임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심령적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적 종교관을 들추어내어 초월적인 무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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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판에 부친 서문
옮긴이 서문
추천의 글

제1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 카포, 우리 안의 또 다른 지배자 |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 집행유예 망상 | 삶과 죽음의 갈림길 |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 냉담한 궁금증 |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 할 수 있다 |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 지 말라 | 혐오감 | 무감각 | 주검과 수프 |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 한 카포에게서 받았던 작은 혜택들 |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 메마른 정서 | 수용소 안에서의 정치와 종교 |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주오 |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 강제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 강제수용소에서의 유머 |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 상
대적 행복을 느꼈던 환자 생활 |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 나 혼자만의 공간 | 번호로만 취급되는 사람들 | 운명의 장난 | 테헤란에서의 죽음 | 운명을 가르는 결정 |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 엇갈린 운명 | 무감각의 원인 | 인간의 정신적 자유 | 시련의 의미 |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 미래에 대한 기대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 살아야 할 이유 |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 집단 정신 치료의 경험 | 수용소의 여러 가지 인간군상 | 해방의 체험 |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 비통과 환멸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 실존적 좌절 | 정신인성 신경질환 | 정신의 역동성 | 실존적 공허 | 삶의 의미 | 존재의 본질 | 사랑의 의미 | 시련의 의미 | 임상에 따른 문제들 | 로고드라마 | 초의미 | 삶의 일회성 | 기법으로서의 로고테라피 | 집단적 신경증 |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 정신의학도의 신조 |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
비극 속에서의 낙관
저자에 대하여
로고테라피에 관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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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에서 희망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jedu | 2010년 04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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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에서 희망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수용소에 대한 이미지들유태인 수용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 가지 있다. 주로 영화 속 장면들인데, 단편적인 장면들이 얽혀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수용소에 대한 이미지들
    유태인 수용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 가지 있다. 주로 영화 속 장면들인데, 단편적인 장면들이 얽혀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인류사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면서, 비인간적인 상황을 더욱 강조하고 동시에 살아남은 어린 아이를 통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아빠의 사랑과 천진한 소년의 미소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나치에 온갖 뇌물을 바치며 유태인을 이용하던 기회주의자 쉰들러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유태인들을 강제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아마도 많이 알려진 영화일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영화로는 <더 리더>가 있다. 한 남자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치 수용소에서 일했던 전력 때문에 감옥에 수용되었던 그 여인의 운명적 삶과 고통을 아프게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가슴을 졸이면서 보았던 <피아니스트>이다. 잔잔한 선율로 시작된 영화 속의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참혹한 폐허 속에 홀로 살아남아 은신처에서 전전한다. 그러다가 독일장교에게 발각되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유태인 수용소는 아니지만, 북한의 수용소가 등장하는 우리 영화 ‘크로싱’도 있다. 평양을 방문하고 난 직후에 보게 되어서 그런지, 관객도 거의 없는 극장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영화를 봤었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면서 고통과 슬픔과 잔혹함을 함께 느낀다고 해도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공포와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조건과 삶의 의미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갈림길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끝내 살아남아, 그 체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라는 정신분석방법을 창안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수기이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그의 주장은,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부모, 형제, 아내가 모두 강제수용소에서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어떻게 그 곳 강제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강제수용소에 들어가던 날, 그는 자신의 소지품 중에서 한 묶음의 원고를 보여주며 간절히 부탁했다.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원고이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고를 간직해야 한다고.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욕과 함께 목욕탕으로 가라는 지시뿐이었고, 물론 그의 원고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었다. 원고는커녕, 그날 수용소에 도착한 유태인중 90%는 독가스가 나오는 가짜 목욕탕에서 목숨을 잃고 시커먼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살아남은 10%가 되어 수용소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그는 결심하게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글로 남기겠다고.
    그러나 수용소에서의 매 순간은 지옥과 같았다. 그러나 아내를 생각하면서 견디어냈다고 그는 회상한다. 다른 수용소로 끌려간 아내의 생사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꼭 살아남아서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러한 경험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요즘 너무나 만연해진 자살 현상을 보면 가족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어도, 또 자살하려는 순간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만 생각해도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프랭클은 이렇게 생각한다. ‘육체적 자유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 나의 의지는 분명히 내 것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의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삶의 의지를 불어 일으킬 수 있지만, 반대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극적인 실례로 들어 말한다. 어느 작곡가가 희망과 확신에 가득차서 속삭였다.
    “의사 선생, 얼마 전 꿈을 꾸었는데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인지 말해 주더군요. 바로 다음달 3월 30일이랍니다.” 그러나 3월 30일이 되었는데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3월 31일에 죽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살아야 할 이유
    니체는 말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도 없고,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은 곧 파멸한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생각하라고 프랭클은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의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으라고 권면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시련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에 대한 희망
    이 시대에 희망은 있는가.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져서 청년실업률이 치솟고 있고, 정치경제적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교육계는 어떤가. 아이들은 날마다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교사들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교육계의 비리들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워낙 만연한 것이어서인지 새롭지도 않을 정도다. 세계 곳곳에서 재해와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폭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장 지글러는 그의 책에서 풍요와 비만이 넘치는 이 세계 반대쪽의 절반 이상이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는 현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승자독식의 현대사회에서 희망을 실현시킬 확률이 줄어드는데도 살아남기 위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 이 땅이 과연 희망적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갑자기 교육부의 정책이 뒤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내 속을 태우는 아이가 갑자기 순종적이 되어서 고분고분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는 힘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받을만한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랑받기 어려운 아이를, 정말 얄밉고 힘든 아이마저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이 조금 더 넓어지기를 나는 희망한다. 갈수록 아이를 경쟁으로 몰아넣고 교사들을 파편화시키는 시스템 속에서도 어떻게 교육의 본질을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며 또 그러한 선생님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희망은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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