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0
14,000원 | 176쪽 |
종합평점 : 4.4 ( 13 명)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에 맞서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자들의 역습을 다룬 책으로 9.11 사건 이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전쟁,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난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첫 십 년 전 지구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행된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불복종, 비폭력 운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행동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입니다.
목차 보기/닫기
출판사리뷰 보기/닫기
  • 나는 왜 저항하는가 그래픽노블, 인문사회, 다른, 국제사회
    치카 | 2011년 02월 19일
    더 보기
    예전에 광고장이 박웅현의 인터뷰책을 읽을 때 가장 쉽게 공감이 갔던 말이 있다. 한국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의 일환으로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었던 '내 탓이오'라는 문구는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예전에 광고장이 박웅현의 인터뷰책을 읽을 때 가장 쉽게 공감이 갔던 말이 있다. 한국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의 일환으로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었던 '내 탓이오'라는 문구는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있으며 신앙의 깊은 의미도 담고 있다는 그런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광고가 그처럼 짧은 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많은 뜻을 내포하는 것이라 한다면 만화 역시 그러한 부분에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한 장의 판화, 포스터가 그러한 효과를 가지며, 문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그림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여 쉽게 설명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려본다.
    이건 모두 이 책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읽으며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세스 토보크먼의 그림은 독특하다. 굵은 선의 흑백이 대비되는 그림체는 판화를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춰라'같은 글과 그림의 결합은 그 메시지를 아주 강렬하고 인상깊게 전해주고 있다. 내용만을 훑어본다해도 이 책은 세상에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저항을 이야기하는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인데, 그것을 표현하는 그림체만으로도 가히 예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예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우리 시대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우리에게 얘기한다. 예술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토보크먼의 만화는 우리가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볼 수 없는 일들을 엑스선처럼 속속들이 명료하게 보여준다(무미아 아부자말, 미국의 흑인운동가)

    이 책은 9.11 사건 이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분쟁,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난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첫 십 년 전 지구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행된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불복종, 비폭력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유쾌 발칙하게 저항하는 이들의 연대를 보여주고, 독점자본에 저항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국가 폭력과 소수의 자본권력자들에 의해 주거지역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저항하는 모습을 포스터, 삽화, 만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건 분명 세스 토보크먼이 미국의 맨해튼 이스트사이드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 책에 실려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며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국가폭력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건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도 우리의 현실과 비슷해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가진자들의 억압과 폭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되돌아가서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세스 토보크먼의 이야기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삼성의 권력에 도전하는 '삼성을 말한다', 국가 최고의 권력을 지닌 사법부의 실체를 드러내는 '헌법의 풍경', 우리 현대사의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대한민국사' 등의 책은 또한 이 책과 더불어 우리가 왜 국가권력과 억압과 폭력에 저항해야 하는지, 우리의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줄 것이다.


  •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agnes | 2010년 07월 17일
    더 보기
      중학교 1학년때인가 학원을 갔다가 11시쯤 귀가를 했습니다. 엄마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는데 TV에서는 커다란 빌딩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저는 신발을 벗으면서 엄마한테 아주 순...
      중학교 1학년때인가 학원을 갔다가 11시쯤 귀가를 했습니다. 엄마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는데 TV에서는 커다란 빌딩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저는 신발을 벗으면서 엄마한테 아주 순진하게도 저 건물 왜 불타고 있는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TV에 시선을 집중하신 채 와서 직접 보라고 하시길래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소파에 앉아 함께 TV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지나니 replay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더군요. 비행기가 슝- 하고 날아오더니 쿠왕- 하고 빌딩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폭발이있었고 그 동영상을 찍은 사람도 도망가느라 바빴는지 이리저리 초점이 흔들리며 비명소리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불타는 빌딩과 흥분한 기자, 앵커의 목소리에 이어 이번엔 위태롭게 서 있던 그 건물이 폭삭, 정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읽고 쓰러지는 사람마냥 무너졌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있는 게 뉴스인지 블록버스터 영화인지 잘 구분이 안되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곧 TV를 끄셨고 저보고는 이제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서 자라시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날은 2001년 9월 1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 고등학생일 때에는 영어회화라는 과목이 있었고 우리 과를 맡았던 외국인 교사는 Mr. Rogers로 시사와 세계 정세에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두 번 들어있는 수업이었지만 매 시간 영자신문을 읽고 제 1면의 논점들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 내야 했으며 강의를 듣고 시험도 봐야했기 때문에 당장 내신과 수능이 급한 학생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죠. 물론 열심히 한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 지금보다 훨씬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꼬맹이였기 때문에 조지 부시 따위, WMD 따위, 북한 따위 알게 뭐람 하고는 신문도 읽지 않고 토론시간에 졸고 시험은 벼락치기로 공부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는 데에 언어 장벽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후회합니다. 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나는 가만히 있었을까. 왜 나는 금방 잊고 마치 전 세계가 지금 여기처럼 태평하다고 눈가림하려 했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에라도 후회하는 걸 다행으로 새악ㄱ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만화라고 하더라도 읽지 않았겠지요. 신문을 봐도, 책을 읽어도 이해가 안되고 너무 어려운 것 천지라서 그저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런걸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 어느새 20대 중반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와버렸네요.

      더 이상 제 무지를 묵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다짐은 이 책을 읽기 전에 한 것이지만 앞으로도 항상 새로 각오하겠다는 느낌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아직 이 책의 메시지를 실행에 옮겨 직접 저항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저항을 해야 하는지는 익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심이 1단계, 그리고 상황 파악이 2단계. 2단계까지 제가 성장하고 나면 3단계 의견 및 의지 표방, 그리고 4단계 실행으로 이어질 겁니다. 몇 년이 걸릴 지 몇 십년이 걸릴 지 모릅니다. 말이 4단계지 사실은 무수히 많은 중간 보스를 해치우고 자신을 추스려나가는 과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어릴 적 풀던 수학 문제집에 한 번호 아래에 수많은 새끼문제가 있는 -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 문제가 있죠. 마치 그것 처럼 지금 말하고 있는 제 무지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저를 괴롭힐겁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 지금 이렇게 남긴 글이 부끄러워서라도 그만 두지 못하게 되기를. 좀 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P.S. 이 글을 읽고 나면 지금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으시겠죠? 구체적인 길을 잡지 못해 아지곧 갈팡질팡하는 저에게 작은 충고 부탁드립니다. 쉬운 책 한권 추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큰 일,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배웠을테지만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 방법들. 모두 환영합니다. 도와주세요.
  • 이 이야기가 미국만의 이야기였으면... 인권
    호의은행 | 2010년 07월 19일
    더 보기
    정치·경제를 보면 항상 소수 기득권층에 대항하는 비주류들이 존재한다. 주류언론에서는 항상 같은 주류의 입장에서 일련의 행동들을 보도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비주류들의 행동에 합리적인 비판을 ...

    정치·경제를 보면 항상 소수 기득권층에 대항하는 비주류들이 존재한다. 주류언론에서는 항상 같은 주류의 입장에서 일련의 행동들을 보도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비주류들의 행동에 합리적인 비판을 하기보단 비이성적인 비난을 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주류에 저항하는 비주류들의 행동을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은 굳이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는, 소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찌보면 아이러니하게 생각되는데, 이들은 왜 남이 시키지도 않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고 말한다. 왜 우리들은 주류에 저항해야 할까?

    이 책은 세계은행과 IMF에 의해 착취당하는 아프리카, 이라크 전쟁으로 유린당하는 인권, 쓰나미와 허리캐인 카트리나를 이용하는 정부의 악의적인 태도와 은폐된 진실들을 강렬한 흑백의 대비를 통한 거친 선으로 표현한다. 이중 흥미로웠던 것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캐인 카트리나의 숨겨진 진실편이였다. 우리는 뉴올리언스가 부유하지 않은 흑인들이 살고 있으며, 재난사태후 복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가난한 흑인들의 도시이기에 이 당시 정부에 이롭지 않는 이들을 분산시키면서 그들이 빠져나간 그곳을 재계발이란 거창한 명목으로 부동산 이권을 노린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천하라’는 것이다.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는 지금, 솔직하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목소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반면, 국수주의자들과 정치 선동가들은 그 어느때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원천을 신뢰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이 무언가 하기를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행동으로 옮겨 세상을 바꾸라고 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문제를 제기한 바로 나인 것이다.

    ‘정부는 도시 빈곤층을 위한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대신에 내쫓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벽과 검문소를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용만 보자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어느 나라에나 소수 기득권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항상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하고, 불법적으로 사찰을 당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특정 이념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비정상적으로 표출된다. 왜 부시정권때 소방서는 줄었던 반면, 경찰서는 늘어나고 규모는 커졌을까? 저자는 옳다고 느끼면 행동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나를 위해서이다라고 말하는듯 하다. 소수 기득권에 비판할 자유, 탄압받지 않을 인권이 우선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이득이 된다는 것은 엄연한 진리이다. 이 책은 만화이지만 만화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으로 많은 것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나는 왜 저항하는가
    보슬비 | 2010년 07월 22일
    더 보기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선택하게 된것은 순전히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라는 책 때문이었어요. 만화로 구성된 이 책은 실제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있어서인지 읽는동안 가슴에 많이 와 닿아 기억에 많이 ...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선택하게 된것은 순전히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라는 책 때문이었어요.

    만화로 구성된 이 책은 실제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있어서인지 읽는동안 가슴에 많이 와 닿아 기억에 많이 남았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나는 왜 저항하는가'도 이런류의 책일거란 생각에 망설임 없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실 처음에는 같은 작가가 아닐까?하는 기대도 했는데, 다른 작가였습니다.)



    목판화를 연상케하는 커친선들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저항 정신'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작가의 모습을 통해 책 속의 만화의 리얼리티를 느끼게 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인터넷이나 신문을 통해 강대국(미국)의 횡포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지만, 내부에서도 이렇게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알고 있던 부분은 빙산의 한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가지의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는 것 또한 작가의 성격이 느껴지는것 같았습니다.]



    책 표지를 디자인한 그림이기도 하지요.


    우리를 가두고 있던것에서 벗어나 그것을 향해 하이킥을 날릴수 있다면 정말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 어떤 이유에서 저항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무겁고 어려운 주제일지 모르지만, 만화를 통해 설명해서인지 쉬우면서도 더 정확하게 우리를 이해시켜줍니다.





    이 책의 만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만화였어요. 아이들이 총알의 타겟이 되어있는 상황을 보면서 미국의 권력층이 말하는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정말 진짜 악이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피눈물을 짜내는 그들의 행동들이 아닌지..



    미국에서 큰 주유소인 쉘이 나이지리아의 석유를 수입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사실 석유하면 중동만 알았었는데,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도 석유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생산되지 않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기는 처음이네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읽어야할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그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달라질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랄뿐이지요.

    저 역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는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진짜 현실을 알게 됨으로써, 그 동안 무지로 인해 생각없이 선택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있을 선택에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가질수 있도록 눈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봐야할것 같습니다.


  • 거칠고 사실적인 내용 속에 담긴 거대한 진실들과 저항들
    행인 | 2010년 07월 22일
    더 보기
    21세기 첫 십 년의 저항을 기록한 만화다. 아니 만화란 표현으로 부족하다. 팸플릿이나 전단지나 벽화나 플래카드 등에 그려진 것을 모두 모아놓았다. 이 다양한 장르는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은 사...
    21세기 첫 십 년의 저항을 기록한 만화다. 아니 만화란 표현으로 부족하다. 팸플릿이나 전단지나 벽화나 플래카드 등에 그려진 것을 모두 모아놓았다. 이 다양한 장르는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이다. 재난과 저항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그 나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가 1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본 현실을 담아내었다. 익숙하거나 잘 알고 있는 사실도 많지만 언론에 의해 혹은 나의 무관심에 의해 몰랐던 사실들도 많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서 분노보다 한탄과 어두운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 만화 첫 장면에서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문장에서 드러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행동을 방송이나 언론에서 차단하고, 왜곡하는 현실이 벌어진다. 이런 현실이 나도 모르게 점점 긍정적인 생각을 부정적으로 바꾸고 있다. 저 높은 곳에서 우릴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도한 대로 변하고 있다.

    모두 다섯 저항을 이야기한다. 유쾌 발칙하게, 독점 자본에, 전쟁에, 국가 폭력에, 공영주택 빼앗기에 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데 하나 하나가 놀라운 사실들의 나열로 경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놀랍고 무시무시한 현실 속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활약과 노력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그들을 존경하게 된다. 동시에 이 저항이나 재난들이 결코 다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한국의 현실과 미래로 눈이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왜 외국의 사실들에서 한국 현실을 보게 될까? 먼저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펼친 뉴타운 정책이다. 이 정책은 너무나도 미국의 공영주택 개발과 닮아 있다. 낙후되고 문제 있는 지역을 개발하여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고, 이 주택을 저소득층에게 공급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결국 이것은 건설업자들과 그들과 유착한 사람들만 좋은 일로 끝났다. 뉴욕이나 뉴올리언스의 공영주택 이야기는 바로 한국 뉴타운 이야기고, 용산 참사와 맞닿아 있다. 수많은 돈을 언론에 쏟아 부으면서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화려한 외양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저소득층의 비참한 삶과 현실은 가려지고 묵살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는 모순과 부조리가 판을 친다. 사람들은 그들처럼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쫓겨난 그들에겐 관심조차 없다.

    9.11 사태 후 미국은 변했다. 애국주의가 모든 것의 중심에 섰다. 이 엄청난 참사는 독점 자본에게 너무나도 매혹적인 일이다. 칼라일로 대변되는 사모펀드의 활약은 눈부시다. 정권은 복수를 부르짖고 거짓된 주장으로 이라크를 침공한다.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그 덕분에 국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진다. 예산이 그곳으로 돌려지면서 복지와 사회기반시설을 보수나 개선을 위한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애국이란 감정에 휘둘려 젊은 군인들이 타국에서 죽어나가고, 그 전쟁으로 소수의 독점 자본가들은 거대한 부를 이룬다. 이 사건 왠지 최근에 벌어진 천안함 사태와 비슷한 모양이다. 전함이 침몰한 것을 두고 보수단체와 언론은 북침까지 말한다.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려고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만약 전쟁을 주장하려면 40대 이상이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전쟁을 결정하는 나이대가 바로 40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나가야 한다면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알고 있던 것 이상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은 팔레스타인과 베두인의 재난과 억압과 폭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이 펼칠 정책과 행동들은 너무나도 놀라 경악마저도 부족할 정도다. 그리고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지역의 문제들은 독점 자본과 독재자들의 유착으로 이어지고, 세계화의 이면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투박하고 거친 그림과 구성 속에 담겨 있는 내용도 역시 거칠다. 이 거칠고 사실적인 내용이 세련되고 화려한 독점 자본과 비교된다. 미국과 세계화의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이 거부감 생기는 책을 읽어보라.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진면목을 알게 되고, 우리의 비겁한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알고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물론 지금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 나는 왜 저항하는가
    치카 | 2010년 07월 24일
    더 보기
    예전에 광고장이 박웅현의 인터뷰책을 읽을 때 가장 쉽게 공감이 갔던 말이 있다. 한국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의 일환으로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었던 '내 탓이오'라는 문구는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예전에 광고장이 박웅현의 인터뷰책을 읽을 때 가장 쉽게 공감이 갔던 말이 있다. 한국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의 일환으로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었던 '내 탓이오'라는 문구는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있으며 신앙의 깊은 의미도 담고 있다는 그런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광고가 그처럼 짧은 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많은 뜻을 내포하는 것이라 한다면 만화 역시 그러한 부분에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한 장의 판화, 포스터가 그러한 효과를 가지며, 문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그림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여 쉽게 설명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려본다.
    이건 모두 이 책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읽으며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세스 토보크먼의 그림은 독특하다. 굵은 선의 흑백이 대비되는 그림체는 판화를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춰라'같은 글과 그림의 결합은 그 메시지를 아주 강렬하고 인상깊게 전해주고 있다. 내용만을 훑어본다해도 이 책은 세상에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저항을 이야기하는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인데, 그것을 표현하는 그림체만으로도 가히 예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예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우리 시대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우리에게 얘기한다. 예술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토보크먼의 만화는 우리가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볼 수 없는 일들을 엑스선처럼 속속들이 명료하게 보여준다(무미아 아부자말, 미국의 흑인운동가)

    이 책은 9.11 사건 이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분쟁,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난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첫 십 년 전 지구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행된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불복종, 비폭력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유쾌 발칙하게 저항하는 이들의 연대를 보여주고, 독점자본에 저항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국가 폭력과 소수의 자본권력자들에 의해 주거지역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저항하는 모습을 포스터, 삽화, 만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건 분명 세스 토보크먼이 미국의 맨해튼 이스트사이드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 책에 실려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며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국가폭력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건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도 우리의 현실과 비슷해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가진자들의 억압과 폭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되돌아가서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세스 토보크먼의 이야기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삼성의 권력에 도전하는 '삼성을 말한다', 국가 최고의 권력을 지닌 사법부의 실체를 드러내는 '헌법의 풍경', 우리 현대사의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대한민국사' 등의 책은 또한 이 책과 더불어 우리가 왜 국가권력과 억압과 폭력에 저항해야 하는지, 우리의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줄 것이다.


  • 댐의 둑이 무너진다고 외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stella09 | 2010년 07월 24일
    더 보기
    우선, 그림이 투박하면서도 강렬하다.  몇몇은 컬러로 그린 그림도 있는데 그건 꼭 이중섭의 그림을  보는 것도 같고, 토속적인 아프리카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도 같다. 그처럼 이미지는 ...

    우선, 그림이 투박하면서도 강렬하다.  몇몇은 컬러로 그린 그림도 있는데 그건 꼭 이중섭의 그림을  보는 것도 같고, 토속적인 아프리카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도 같다. 그처럼 이미지는 강하며 선동적인 느낌도 준다. 또한 판화로 찍은 듯 흑백대비의 그림은 여러색을 사용하기 보다 흑과 백이란 대비적 색깔이 이토록이나 강렬한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도 된다.  


    저자 세스 토보크먼은 급진적인 정치 예술가라고 한다. 그는 만화로 세상의 은폐된 진실, 정치적 야합을 고발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책을 보면, 가진 자의 횡포와 힘없는 자의 억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예전에 읽었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생각 나게도 했다.  이 책 역시 있는 자들의 횡포에 대해 꽤나 논리적이면서도 고발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두 책 모두 보고 있으면 나는 정말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날 일어나고 있는 수 많은 전쟁과 인종폭동, 노동력 착취, 심지어 자연재해의 문제 이면에는 있는 자들의 횡포와 교묘한 술수가 작용을 한다.  이것은 확실히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폐혜다. 이 문제는 나라의 지도자와 기업인들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며 해결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설혹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설수도 있고,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들이 마음을 고쳐 먹어주길 기대하겠는가? 우리에게 힘이 없을까? 우린 지레 똑똑한 자, 있는 자를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줄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전쟁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를, 노동의 문제를 저들의 손에 맡겨둘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의 피해 지역은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제3 세계 지역이다. 그 나라의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나 힘없는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지는 보지 않는 이상 상상을 불허한다.   


    내가 이 책에서 다소 충격적으로 본 것은 '나체의 힘'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가장 무시무시한 저주는, 여자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남자에게 성기를 내보는 것이라고 한다. 여자의 나체를 본 남자는 성불구가 되거나 미치거나 죽게 된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에 석유붐이 일어났을 때 농촌에 송유관이 들어오고 기름 유출 사고로 물고기가 죽고, 식수가 말랐으며,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의 수가 세 배 이상 급증하자, 니제르 삼각주의 여인들은 저주의 상징인 나체 시위를 했다고 한다. 저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물론 이후 그쪽 지역의 삶이 나아졌는지에 대해선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것을 개기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라크 전쟁이 임박했을 때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옷을 벗고 평화 심벌을 만들어 저항했다고 한다. (76~79p) 물론 그렇다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이 무의미했다고도 볼 수 있을까? 훗날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의 저항 운동이 필요없었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라크 전쟁의 폐해를 세계가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을 돌이켜 볼 때 댐에 둑이 무너진다고 외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제2의 이라크 전쟁을 막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작고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내 이웃의 아픔과 외침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장은 내게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레 속단하지 마라. 그것은 결국 우리의 후세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며,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의미를 확대 재생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글쎄, 만화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약간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를 보여주기 보단, 저자의 캐릭터에 맞게 은폐된 진실이나 정재계 인물들의 정치적 야합을 알라는데만 촛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그런 아쉬움만 걷어낸다면 이 책은 편하고 안락한 것에만 길들여지길 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기에 나름 좋은 책이라고 보아진다.


             

  • 굵은 선과 굵직한 내용의 만화 좋은만화,세스토보크먼,
    소일 | 2010년 07월 24일
    더 보기
      하나. IMF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기관이다. 그들의 돈이 없었다면 한국은 국가부도의 상황에서 전혀 나아질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실업자는 늘어났고 입사는 더 힘들어졌고 소득...
     





    하나. IMF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기관이다. 그들의 돈이 없었다면 한국은 국가부도의 상황에서 전혀 나아질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실업자는 늘어났고 입사는 더 힘들어졌고 소득격차는 심하게 벌어졌다.




    세계은행과 IMF는 빈곤국에게 대출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돈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들의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다. 70년대 빈곤국에게 대출해주면 댐·도로 건설로 환경을 파괴하고 거기에서 생기는 돈은 결국 시민이 아닌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국가는 세계은행에 대한 채무로 희망이 없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고, 이 빛은 ‘구조조정’에 동의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자국경제 변화에 동의 하는 것이다. 이자율을 높여 집을 사는 것이 어려워지고 복지비용을 줄이고 공립교육은 제한되고 노조탄압은 극심해진다. 국가소유 산업과 천연자원은 다국적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둘.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충격에 빠졌다. 누구의 책임인가.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미국이 아직도 흔적조차 찾고 있지 못한 오사마 빈라덴의 소행이라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그 뒤에 누가 있을까. 사우디가 빈라덴에 돈을 준다. 미국의 엑슨 모빌사가 제공하는 것이다. 그럼 이들의 책임만 있는 것인가.




    칼라일 그룹은 부실기업을 사서 큰 이윤을 챙기고 파는 사모펀드 회사이다.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냉전이 끝날 무렵 국방예산은 감축되고 미국의 군수업체는 시련을 맞는다. 칼라일은 군수업체, 항공사, 사우디의 민간 군수용역 공급하는 베델사, 무겁고 커서 현대전에 어울리지 않는 크루세이더 대포를 생산하는 유나이티드 디펜스사를 매입한다.




    이윤을 위해서 로비가 필요하다. 은퇴한 정치인들을 고용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전직 CIA부국장을 지내고 국방장관을 역임한 프랭크 칼루치를 영입하고 미국대통령을 지낸 부시를 영입한다. 2001년9월 11일, 칼라일 그룹 아침 회의 때 아버지 부시와 오사마 빈라덴의 형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9.11은 칼라일에게 흥행요소였다. 그들이 사들인 사찰업체 USIS는 항공사 승무원들의 뒷조사로 바빠졌고 보트사는 스텔스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의회는 쓸모없는 크루세이더를 승인했다. 유나이티드 디펜스 사는 상장으로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들은 회사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곧 의회는 크루세이더의 승인을 취소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통해 브래들리 장갑차들이 수익을 낳았다. 부시와 빈라덴은 회사를 떠났고 그룹 내 군수업체들을 매각하는 중이다.




    1970년 석유 붐은 나이지리아에서 농사와 사냥으로 먹고사는 민중의 삶을 바꾸었다. 정부는 석유기업들의 송유관이 밭이나 마을을 통과하도록 강요했다. 송유관에서 기름이 새어나오면서 연기와 불길 속에 동물은 사라지고 땅·공기·물이 오염되었다. 식량이던 물고기와 농작물이 죽었고 그들은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가난해졌다.




    무지하고 힘없어 보이는 그들은 뜻밖에 저항했다. 600명의 여성들이 석유회사 셰브린의 수출기지를 점거했다. 셰브린이 마을을 떠날 것을 종용했다. 그들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12개 석유공장에서 나체시위로 이들을 위협했다.(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여성의 나체를 보는 것은 저주다. 이를 본 남자는 성불구나 미치거나 죽게 된다고 여기고 있다)




    석유생산량 40%감축되었다. 정부는 천백만 달러의 손해를 봤고 기업은 이백오십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당연히(?) 보복이 있었다. 석유회사의 경비원들이 시위하던 수십 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것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밝힌 용감한 여성들의 소식은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를 접하게 된 미국과 유럽의 여성들은 셰브린 텍사코의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라크 전쟁 때엔 여성들이 옷을 벗고 평화심벌을 만들어 저항했다.




    셋. 대부분이 종교 갈등 정도로 생각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도 그렸다. 직접 보고 듣고 공부한 내용으로 채워졌을 ‘사실’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고 이를 널리 알리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원조격인 베두인들은 네게브에서 수세대에 걸쳐 유목하며 살아왔다. 1948년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면서 이들은 이스라엘 국민이 되었다. 많은 베두인들은 국가에 충성을 선언하며 군대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땅 20%를 구획하여 그곳에 거주하도록 제한했다. 18년이 지나 그곳을 벗어나 새로 만든 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신도시’는 좋은 곳이 아니었다. 일자리 없는 거주지는 곧 슬럼화 되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베두인들의 마을은 비참한 생활에 놓인다. 물·전기·교육을 제공받지 못하고 발전소 쓰레기 매립지등의 혐오시설을 마을 인근에 건설한다. 제초제로 경작물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녹색경찰‘이 중기로 집들을 부순다. 베두인들을 쫓아낸 후 유대인들의 주택을 짓고 있다. 유대인들은 아랍인과 평등할 수 없는가.




    이스라엘 정착촌 미국근교의 풍경과 유사하다. 팔레스타인 거주지 ‘A구역’은 도로로 둘러져있다. 그리고 그 안쪽에 거대한 시멘트 담장이 에워싼다. 그들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벽은 농민들의 경작지와 거주지를 갈라놓는다. 벽은 농민들이 아랍상권에서 농작물을 팔 수 없게 만든다. 벽은 마음대로 원하는 곳에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 결국 이곳을 포기하고 떠나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벽의 건설을 중단하라고 가두생진을 했다. 군인들은 최루탄, 고무탄 총을 쏘아댔다. 벽으로 둘러진 팔레스타인 국가는 감옥에 다름 아니다.




    세스 토보크만은 만화가다. 굵직한 선들로 이루어진 그림은 마치 학교다닐때 접했던 강열하고 선동적인 민중 화가들의 것이 생각난다. 이 책은 그가 직접 다니면서 그린 ‘21세기 첫 십년의 저항 기록‘이다. 지역의 일이나 일상보다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굵직한 문제들의 ‘사실’을 보다 극적으로 묘사한다.

  •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저항, 인문
    littlechri | 2010년 07월 25일
    더 보기
    왜 사람들은 저항할까? 개인의 자유와 생존 문제를 위해. 자신이 속한 단체의 그릇됨 때문에. 정부가 잘못 잡아가는 방향을 위해. 세계 모든 이들이 사람다운 세상을 살도록 하기 위해 저항하는 걸 꺼다. 그걸 생...

    왜 사람들은 저항할까? 개인의 자유와 생존 문제를 위해. 자신이 속한 단체의 그릇됨 때문에. 정부가 잘못 잡아가는 방향을 위해. 세계 모든 이들이 사람다운 세상을 살도록 하기 위해 저항하는 걸 꺼다. 그걸 생각과 글로 옮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큰 효과를 거두는 법이다.



    전국 환경운동연합 간부들이 한강 이포보와 낙동강 함안보 공사현장서 며칠 째 점거 농성을 벌이는 것도 그렇다. 그들 나름대로 국가의 그릇된 방향을 바로 잡고자 저항하는 일일 테다. 용산 철거민들도 그랬을 것이다. 최소한도 자신들이 살아갈 터전을 보장받고자 저항했던 것일 테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휴양지로 유명한 오키나와 현의 남쪽에 위치한 미야코지마시(宮古島市)의 주민들도 그랬다. 그곳 사람들은 일본정부가 중국을 겨냥하여 추진하던 자위대 신기지 건설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인도는 현재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물 침탈에 대해 지방 곳곳에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다.



    세스 토보크먼의 〈나는 왜 저항하는가〉도 미국으로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펼치고 있는 저항 정신을 보여준다. 독점 자본과 국가 폭력에 대한 곳곳의 저항 운동을 드러내 준다. 그는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을 펼치는 이로서, 자신의 포스터와 플래카드를 세계 시민운동가들이 이용토록 하고 있다.



    “21세기의 첫 십 년은 동시에 믿을수 없을 정도로 저항 운동이 파고를 이루었다. 시애틀과 멕시코 칸쿤에서는 WTO를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열렸고, 워싱턴에서는 세계은행에 반대하는 시위가, 필라델피아와 뉴옥에서는 공화당 전당 대회를 반대하는 시위가, 그리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역사상 가장 큰 반전 운동이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이라크와 플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반인권적인 처사에 대해 수백 명의 비폭력 운동가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했고,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걸프만을 강타했을 때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복구를 위해 기꺼이 노동을 제공했던 것이다.”(작가의 글)



    이 책 한 꼭지에서 꼭지가 돌만큼 놀라게 하는 게 있다. 정말로 황당한 내용이다. 2001년 ‘9·11 사태’가 있던 날 아침 조지 부시의 아버지와 오사마 빈 라덴의 형이 칼라일 그룹 회의에 함께 참석했다는 게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을까?”하고 반문한다. 확실한 건 그 비극으로 칼라일이 떼돈을 벌었다는 거란다.



    또 놀라운 게 있다. 미국의 뉴올리언스에 관한 것이다. 그곳의 저지대 9번가는 흑인들이 몰려 사는 곳인데, 홍수가 덮친 이후 정부는 나몰라 하고 개발업자들은 군침을 흘리고 있단다. 정부와 시 당국은 제2의 대참사가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을 판이요, 그 때문에 시민들은 시장과 법원을 향해 저항하고 있단다.



    이 책을 읽자니 우리 안에 있는 저항정신을 알려주는 몇 권의 책이 떠오른다. 삼성의 권력에 맞선 김용철의〈삼성을 말한다〉, 사법부에 도전장을 내민듯한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그리고 이 책처럼 용산의 현실을 만화로 담아내는〈내가 살던 용산〉이 그것이다. 그 책들은 국가 폭력과 소수의 자본권력이 어떻게 힘을 행사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그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지 여실히 그려준다.



    나를 바꿀 수 있는 길.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 국가를 바꿀 수 있는 길.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길. 그것은 저항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문학으로, 어떤 이는 철학으로, 어떤 이는 강연으로 저항할 것이다. 여러 풀뿌리 저항의식들이 있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길은 행동하는 이들이다. 세스 토보크먼 그래서 머리글을 그리 쓴 것이다.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13쪽)

  • 침묵이 아닌 표현의 필요성에 절감
    술패랭이 | 2010년 07월 26일
    더 보기
    [침묵이 아닌 표현의 필요성에 절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 이라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어떤 식의 내용이 실렸을지 미루어 짐작할만 했지만 단지 짐작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
    [침묵이 아닌 표현의 필요성에 절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 이라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어떤 식의 내용이 실렸을지 미루어 짐작할만 했지만 단지 짐작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미루어 짐작하는 직감이 발달해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직감을 떠나 좀더 구체적으로 지구상에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해 알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예술가인 세스 토보크먼은 내겐 낯선 인물이다. 그의 약력을 통해 반세계화와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전세계 시민운동가들이 그의 만화를 포스터와 프래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아닌 시민의 편에서 어찌보면 무시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운동하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이 그의 편을 든다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보내게 된다.

    굵직한 선에 검은 색과 흰색을 사용하고 때로는 강렬한 붉은 색으로 핏빛을 연상하게도 하는 그림들. 사람들의 표정은 섬세하지만 강렬한 분노와 욕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단 한번만 봐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토보크먼 만화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시민운동가들의 시위에서 쉽사리 그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단지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으로부터 받는 강렬한 인상을 뒤로 하고, 그의 만화가 담고 있는 저항정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처럼 정치와 사회상황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쉽사리 알 수 있도록 자세하고 복잡한 것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그의 글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국가와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이 누려야 할(이것은 인권과도 연관된다) 권리에 대해 교묘하고 철저하게 유린하는 현장을 포착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권력층이나 부유층과는 대비되는 사회적 약자가 해당된다. 마치 내 일은 아닌듯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이익을 얻는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사회적 약자이면 부당함을 당하는 자신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토보크먼은 강렬하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국가와 다국적기업 등에 항변하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듣던 구조조정의 실체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은행이나 IMF는 1970년대 빈곤국가에 많은 대출을 했다. 그러나 이런 대출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환경파괴를 자행하게 되고 지금은 새로운 빚을 안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그로인해 대출국은 다국적기업에 구조조정을 허락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자율이 옾아지고 노조는 탄압되고 천연자원은 팔려나갈 수 없는 악순환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살피고 우리의 미래를 그린다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쓰러져가는 다른 기업을 사들이는 기업으로 유명한 사모펀드 회사인 칼라일 그룹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기업의 이윤밖에는 없다. 전쟁을 하든 사람이 얼마나 죽어가든 그것은 관심 밖이다. 그런 기업과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 바로 부시와 오사마빈라덴이다. 그들의 석유를 둘러싼 이윤다툼이 결국 이라크전쟁을 발발하게 했다는 비난에 칼라인 그룹과 부시정권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가와 권력의 이득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재정적자를 이유로 8곳의 소방관을 폐쇄한다는 정책에 브루클린 시민의 항쟁이나 이스라엘 국가가 네게브의 원주민인 배두인에게 구획을 정해 살게 하거나 마을에 거대한 발전소 유해성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하면서 슬럼가로 만드는 일련의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 이스라엘에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군인이 된다는 배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합리적인 이스라엘의 처사에 분노감이 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항쟁은 나체의 힘이었다. 아이들 책을 통해서 케냐에서 나무를 심는 여인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왕가리로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나무심기는 이유가 있었다. 케냐의 독재자가 농작물 대신 다국적기업이 원하는 커피재배를 강요하고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다국적기업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왕가리는 이에 항거해서 여인들과 농작물을 심고 저지하는 세력을 향해 나체시위를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나체를 보여주는 것을 최고의 저주를 퍼붓는 행위라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아프리카 여성의 나체시위는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시위였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솔직하고 진심이 담긴 그녀들의 시위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세브런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나체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성폭행까지 감행되었다고 하니 문명과 개발을 가장한 거대 기업과 국가의 탐욕에 분노를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라는 단어에 잠시 당황했다. 토보크먼이 지칭하는 우리는 미국인들이어서 미국상황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다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토보크먼이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의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일자리 창출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4대강 개발이 그러하고, 항거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저지하는 과정에서 목숨까지 앗아가버린 용산개발상황이 그러하고, 지금도 구조조정을 통해 잘려나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기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한탄이 아니다. 이런한 구조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니다라고 말하고 항변하는 행동하는 태도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작은 힘이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비한 변화가 결국 나비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토보크먼의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지만 가장 큰 배움은 역시 침묵이 아닌 표현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것이 촛불을 밝히는 시위이든, 혹은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것이든, 책을 쓰는 것이든 이 모든 것은 표현하지 않는 침묵보다 우위에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기 위한 표현보다 더 중요한 표현이 있음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
  • 진실이 저항하게 하는 힘이다!
    등나무꽃 | 2010년 07월 27일
    더 보기
    뉴스에서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많은 폭탄을 떨어뜨리면서도 잡지 못한다는 기사를 볼 때 마다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조직이 얼마나 잘 짜여져 있기에 잡히지 않는지를. 이 책을 보면서 이 그 궁금...

    뉴스에서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많은 폭탄을 떨어뜨리면서도 잡지 못한다는 기사를 볼 때 마다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조직이 얼마나 잘 짜여져 있기에 잡히지 않는지를.


    이 책을 보면서 이 그 궁금증은 해소가 되었다. 일부러 미국에서 잡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한 거대회사와 정치가 결탁되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세계화가 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세계화가 되지 않는 것이 각자가 가진 문화를 더 잘 지키고 문화 안에서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왜 정치가와 거대 기업들은 구지 세계화를 표방하는 것인지도 궁금했었다. 이 궁금증 역시 이 책을 통해 풀렸다. 그것은 경제 리더들과 정치인들이, 그리고 힘있는 국가의 거대 회사가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세계화를 주장하고 있고 이끌고 있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사회주의 체계 안에서 잘 살고 있는 나라들을 구지 민주화를 시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외국의 군대까지 작은 나라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들어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민주화를 시키려고 하는 이유도 궁금했었다. 이 궁금증 역시 풀렸다. 그것은 힘을 가진 나라가 그들의 무기와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한 구실을 삼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한국 사람인 내가 정말 많이 궁금했던 것은 과연 6.25를 통해 한국과 북한이 나뉘어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던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무기에 들어가는 돈을 사회복지와 인재양성에 투자했으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 구지 나뉘어야만 했을까? 어쩌면 강대국의 이익 때문에 힘이 없는 우리가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럴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어쩌면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팔레스타인을 돕지 않고 아무 조건없이 이스라엘을 돕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미국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유대인들로 인해, 그리고 자국의 이익으로 인해 힘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감옥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것은 어쩌면이 아니라 이것이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저항이 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이 모두가 다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강대국에 의해, 강한 나라와 힘이 있는 회사에 의해 얼마든지 진실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속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진실을 알기 위해 저항해야하고, 그 진실로 인해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한다.

  • 건강한 저항은 마땅하다!
    재윤맘 | 2010년 07월 27일
    더 보기
    '만화를 통해 세상에서 은폐된 진실, 정치적 야합을 고발하고자 한다'는 저자 세스 토보크먼의 그림을 보는 내내 그의 용기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더불어 지금 이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불의에 맞서 기꺼이...

    '만화를 통해 세상에서 은폐된 진실, 정치적 야합을 고발하고자 한다'는 저자 세스 토보크먼의 그림을 보는 내내 그의 용기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더불어 지금 이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불의에 맞서 기꺼이 '저항'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을 펼치며 가장 급진적이고 정치직인 예술가로서 인권이 파괴되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간다'는 앞날개의 소개글처럼 저자는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다.

    예술가인 그로서는 그림으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알림으로써 또 저항의 현장에 있다는 행위 자체로 저항에 동참하는 것일터...그래서인지 굵고 거칠어 판화에 가까운 그의 그림이 마치 저항에 기꺼이 동참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듯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일까?
    이념의 차이로 국가간에 혹은 국가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던 때에도 국가는 우리에게 든든한 울타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부강이 국민의 최우선 의무이며 책임인듯 똘똘 뭉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어느덧 어떤 이념이든 나름의 가치가 인정되고 세계의 평화가 온인류의 최고 목적인듯 전쟁없는 평화를 바라는 요즘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소리없이 전쟁이 진행중임을 우리는 문득문득 잊고 살지 않는가. 오랜 휴전으로 인해 전시중임을 잊고 사는 우리의 현실처럼 말이다. 

    과거의 국가간 대립이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충돌이었던 탓에(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이제는 가급적 모두에게 이로울 것없는 전쟁은, 세계평화라는 한차원 높은 공동의 이념이 있어 지양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전쟁못지 않게 국가의 울타리속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약자들에게 두려움을 던져주는 것은 막강한 권력을 내세우며 약자를 함부로 짓밟는 국가의 횡포가 아닐까. 어떻게 보면 국민모두를 똘똘 뭉치게 하는 전쟁보다 못한, 국민을 분열시키는 치사한 행태가 아닐까.... 

    세스 토보크먼의 고발과도 같은 이 책을 보면서 새삼 놀라운 것은 무자비한 국가의 횡포가 제3세계와 같은 정치적, 경제적 빈곤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선진 민주주의 정치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커먼그라운드의 저지대 9번가 사수를 위한 저항(저항 다섯, 우리 집을 돌려달라!편)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뉴올리언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유일한 병원이지만 환자를 실은 앰뷸런스가 멈출 수 없는 DC종합병원 등은 미국의 실상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더이상의 민주주의는 없다는듯 세계를 지배하려드니 말이다. 

    세스 토보크먼의 힘찬 그림은 불의와 모순, 폭력과 권력에 맞서는 '저항'이 약자의 또는 소수의 몸부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독재자 다니엘 아랍 모이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이던 루스 왕가리가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써 청년의 목숨을 구해낸 것처럼... 비록 총과 칼, 탱크와 장갑차가 없어도 자신의 몸으로 맞서 싸우는 '저항'이 있다면 완전한 정복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원시적인 집단생활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해(利害)를 위해 국가를 이루며 오늘까지 살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구성원들이 국가를 이룬탓에 또 자신의 의지(선택)와 상관없이 태어나면서 이미 국가의 구성원이 된탓에 살다보면 국가의 이해와 자신의 그것이 부딪칠 때가 있다. 물론 국가라는 엄청난 거인앞에 개인은 너무나 미미한 존재이다. 그러나, 국가는 개인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이해집단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무조건 국가앞에 무릎을 꿇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늘의 나의 나약함이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큰 복종을 강요할 터이므로.... 하여, 지금 우리를 미미한 존재로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려는(불필요한 존재라고 여기는) 국가의 일방적인 횡포 앞에서 우리는 결코 함구해서는 안될 일이다.
    건강한 저항은 개인은 물론 국가의 발전과 미래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분명 필요하지 않을까...

  • 더 늦기 전에 역사의 추를 흔들 저항을 시작하자. 저항
    jjolpcc | 2010년 07월 28일
    더 보기
    저항이란 무엇인가? 저항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가치 있는 신념이리라. 행동을 하던 연대를 하던 마음속으로 지지를 보내든, 인간의 존재가 무시당하고, 부당하게 삶을 위협 받을 때 당연히 ...
    저항이란 무엇인가? 저항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가치 있는 신념이리라. 행동을 하던 연대를 하던 마음속으로 지지를 보내든, 인간의 존재가 무시당하고, 부당하게 삶을 위협 받을 때 당연히 인간이라면 누구든 저항의 기치를 내걸고 맞서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이 어찌 의미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숨쉬고, 먹고, 싸는 짐승이라면 저항의 의미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당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면 부당함에 대항하여 함께 저항해야 한다. 함께라는 이 말이 중요하다. 내가 당하지 않는다고, 머나먼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부당함이라고 눈을 감아선 안된다. 죄 없는 방관자는 없다.  




     케테 콜피츠 작품(위)   세스 토보크먼 작품(아래)


     
    세스 토보크먼의 그림은 강렬하다. 마치 케테 콜피츠의 판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저항의 이미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케테와 세스의 작품들은 뇌리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한 여인이 발차기로 탐욕스런 거대 기업의 마천루를 무너뜨리는 세스의 그림에서 강렬한 저항이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는 뜨거운 메시지 말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쟁, 기아, 신자유주의, 인종차별, 양극화 같은 이야기들은 이제 지겹다. 중단 없이 진행되는 몇몇 인간들의 만행은 국가와 정의라는 정당성으로 가공된다. 또 정치란 이름으로 은밀하게 포장되어 있다. 미디어에 종속된 사람들은 국가의 가면을 쓴 탐욕을 알고도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 불이 강을 건너 와 스스로를 불태울 꺼란걸 모르고 말이다.




     세스 토보크먼의 『나는 왜 저항하는 가』에 실린 이야기들은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일이며 우리 자식들이 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저항이 필요하다. 저항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더 절실하다. 침묵하고 입을 닫아 버리는 인간은 폭력과 억압의 노예로 밖에 살 수 없다. 내가 왜 저항하는 가를 고민한 후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저항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스 토보크먼처럼 그림으로, 미국 노동운동의 어머니 마더 존스처럼 행동으로, 이름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처럼 지지와 연대로 말이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자, 이제 새 장으로 넘어 갔어요… 새로운 문명이 다가오고 있어요. 역사의 추는 전례 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어요.” -『마더 존스』본문 386쪽.




     더 늦기 전에 역사의 추를 흔들 저항을 시작하자.


     

  •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저항하라!
    감은빛 | 2010년 08월 03일
    더 보기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저항하라! 오랜만에 멋진 만화책을 읽었다. 세스 토보크먼이라는 미국의 급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에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저항하라!


    오랜만에 멋진 만화책을 읽었다. 세스 토보크먼이라는 미국의 급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에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표지는 강렬한 로우킥(자세를 보면 태권도의 옆차기와 비슷하기도 한데....)으로 건물을 부수는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있다. 느낌이 강한 표지다. 이런 표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덕분에 어떤 만화인지 표지만 보면 딱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표지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이라고 눈에 띄는 표시가 되어 있다. 아마도 책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텐데, 보통 이런 건 ‘무슨 슨 상 수상’ 이라거나, ‘누구누구가 선택한 책’이라거나 그런 말이 붙어 있는데, 여긴 ‘전격 연재 중단’이라니. 그만큼 ‘쎈’ 만화라는 뜻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뒤표지를 보면 제렐 크라우스 <뉴욕타임스> 전 아트 디렉터의 말이 실려 있다. ‘더 많이 실으려 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라는 설명이다. 그의 직함에 ‘전’ 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맘이 쓰인다. 혹시 세스 토보크먼의 만화를 더 싣기 위해 애쓰다가 ‘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쯤 되면 어떤 내용의 만화인지는 얘기 안 해도 뻔하다. 국가(정치인들)가 싫어하고, 자본(기업인들)이 싫어하는 만화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이 싫어하는 만화이므로, 분명히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국가와 자본이 실은 얼마나 나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만화일 것이다!


     


    그림은 아주 멋지다! 판화 느낌이 난다. 선이 굵으면서도 특징들을 잘 잡아낸 그림들이 아주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우근 선생님 그림이 떠오르고, 이윤엽 선생님 판화도 떠오른다. 물론 그림체가 닯았다거나, 비슷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닮았다는 뜻이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사만화나 풍자만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대놓고 사실을 들춰내는 만화는 그닥 보지 못한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읽지 못했지만,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 라는 만화가 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내 바람은 이렇게 진실을 파헤치는 만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와 자본의 어이없는 미친 짓들이 참 많았다. 광우병 수입으로 인해 대대적인 국민 저항을 보여준 촛불집회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가 있었고, 기륭전자, 동희오토, 콜트 콜텍 등등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진압되었다. 용산참사가 있었고(5분의 철거민이 돌아가셨다!), 최근에는 천안함 사태가 있었다.(46명의 장병이 돌아오지 못했다!) 삼성 X파일 사태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황유미, 박지연씨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지금 전국을 삽질 으로 파헤쳐놓은 4대강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시계를 더 돌려보면 한미FTA저지 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허세욱 열사의 분신이 있었다!), 이라크 파병반대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김선일씨가 볼모로 희생되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치열한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농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는 것을 폭력으로 저지했고(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농민이 방패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포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을 또다시 짓밟았다.(하중근 열사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되돌아보니 참 우울해진다. 김규항에 의하면 참여정부라고 부르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희생된 노동자와 농민 열사만도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한분 한분의 고귀한 희생이 이제는 다 잊혀진 듯하다. 우울하다고 해서 잊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필요하다.

  • 나는 왜 저항하는가 - 세스 토보크먼 글, 그림
    여유로움 | 2010년 08월 04일
    더 보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이런 민주주의 국가의 슬로건이 실제로는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로 변질되었다고 외치며, 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이런 민주주의 국가의 슬로건이 실제로는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로 변질되었다고 외치며, 이를 전면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을 표지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저항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나는 왜 저항하는가> (2010, 세스 토보크먼 지음, 다른 펴냄)의 저자 세스 토보크먼이 바로 그 사람이다.
    반세계 운동과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예술가인 저자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일어난 많은 저항 운동을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강렬한 그림과 글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를 맞아 내가 직접 목격한 사회 정치적 투쟁을 개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각각의 상황에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사건의 실질적인 원인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이 만화들을 포스터나 전단지로 활용하려고 그렸다.
    만약에 시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행동을 취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만화들을 그렸다' (18쪽)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이 책의 의도를 위와 같이 밝혔다.
    그리고 그 의도에 따라 크게 독점 자본, 전쟁,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그렸고, '유쾌 발칙하게 저항하기!'에서는 연방교도소, 학생 동맹휴업, 세계은행, 사형 집행에 대한 저항, '우리 집을 돌려 달라!'에서는 국가에 의한 주택 몰수에 대한 저항을 그렸다.


    인권 유린의 실태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보고 들었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실질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볼 눈이 없었다. 재벌과 국가가 우월한 재력으로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는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눈과 귀를 틀어막히다 보니, 기업과 국가와 세계 차원에서 인권 유린이 일어나고 있음을 몰랐다. 그렇게 모르는 채 살아도 불편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힘 없는 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없는 자들의 주머니가 비워지고,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 부추겨진다면 그것을 묵인하고 용납해야 할까? 그런 묵인과 용납이 힘 있는 자들의 잘못된 행동을 조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뉴욕에서, 케냐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이스라엘에서,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숱한 억압과 폭력에 저항해야 할 이유와 함께 그렇게 맞서고 있는 이들을 함께 그림으로써, 저자는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간결한 선으로 흑백 대비를 강렬하게 나타낸 선동적인 그림을 보면서, 이 책에 실리지 않은 우리나라의 억압과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언론법 개악, 4대강 정비사업 강행, 용산 철거민 참사,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 의료보험 민영화 시도 등 산적한 일들에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지 생각한다. 자기 일밖에 모르는 우민으로 살다가는 다른 사람의 권리 뿐 아니라 자신의 권리마저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폭력과 억압을 거부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 저항, 인간이 가진 특권이자 의무.
    살리에르 | 2010년 08월 10일
    더 보기
    글이란것은 평면적이어서 금방 이해되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물론 거기에 비례해서 상상력을 더 키울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러나 이해도를 높여야 할때, 좀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할때 쓰는 방법이 있으니...
    글이란것은 평면적이어서 금방 이해되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물론 거기에 비례해서 상상력을 더 키울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러나 이해도를 높여야 할때, 좀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할때 쓰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만화다. 글에서 주는 평면성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좋은데 그런 만화책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책이 나왔으니 바로 이 '나는 왜 저항하는가'이다.

    일단, 거칠고 강렬하다. 그리고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로 저항하라는 것. 같이 연대해서 일어서라는 것. 수많은 사람이 저항하고 있음을 알라는 것.

    지은이는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와 폭거에 대항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만화라는 방식을 통해서 좀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것이다.
    여기에서 그려지는 것은 대부분 '더 많이 가진자'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자들'간의 대결이라고 해도 될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새로운 현대화 논리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세상은 점점 더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늘어가고 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위정자들은 진정 가난한 자들의 처지를 몰랐을까? 사실 정부는 저 위에 있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저 아래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있는 그 위에만 보면서 정책을 추진하니까 있는 사람은 더욱더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은 더욱더 가난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데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행동'에 나서는 길뿐이다. 바로 '저항'을 해야하는것이다.
    저항은 인간이 가진 고귀한 특권이자 의무이다. 국가가 주는 폭력에 대항하는 정당한 수단인것이다.

    책에서는 과거보다 요즘이 더 많은 사람들의 연대에 의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나라를 볼꺼도 없이 불과 몇년전에 우리는 거대한 촛불의 밝음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물론 정부를 뒤엎거나 하는 반정부의 시위가 아니었다. 평화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국가에 대해서 국민이 가진 힘을 보여준 것이다. 비록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라는 수단 이외에 국민의 뜻이 어떤가를 밝혀준 소중한 행동이었다.

    지은이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햐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하나, '행동하라'다. 침묵이라는것은 결국 국가같은 지배세력의 뜻에 용인하는 결과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연대는 아무리 견고한 권력이라도 무너뜨릴수있는 큰 힘이 된다는것을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사실 책의 내용만 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지은이는 그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바로 행동과 저항을 통해서 잘못된것을 바로잡자는 희망말이다. 그것이 쉽게 되진 않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되어서 행동하게 된다면 그 희망이 조금씩 이루어지지 않을까.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내용을 읽으니 한결 이해하기가 쉬웠다. 전문 만화가가 아닌탓에 그림이 좀 거칠고 산만한 부분이 없지않지만 지은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쉽게 잘 이해할수 있었다. 움직이기 귀찮은 사람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최소한 의문점을 일으키게 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봄햇살 | 2010년 08월 18일
    더 보기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라는 게 모든 것에 우선할까라는 생각이...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라는 게 모든 것에 우선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당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국가는 필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가끔 다른 나라에게 못되게 구는 행태를 보면서 과연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을까 의아할 때가 있다. 일례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을 때 악랄하게 행동했던 것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과연 그들은 국가라는 이름 뒤에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지는 전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모든 사람들이 식민지배와 착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까 싶기도 했다. 어느 사회나 잘못된 정책을 눈치채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지금까지 일본은 워낙 전체주의적인 국가라서 모르는 것인가 답답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그들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지난 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명분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다른 나라를 뒤에서 조종하는데 그에 대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디나 의식이 제대로 정립된 사람이 있기 마련이므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이라며 비난을 퍼붓더라도 말이다(문득 얼마전에 있었던 우리의 어떤 사건이 오버랩된다). 다만 아무래도 내가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기에 기회가 오지 않으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세스 토보크먼처럼 비록 자기 나라의 치부가 드러나더라도 옳은 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내게는 소중한 기회다.

    솔직히 굵직한 사건 외에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다. 워낙 세계를 주무르는 나라다 보니 다른 나라보다 정보가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책을 보며 답답했다. 우리가 우러러 보고 따라가기 위해 기를 쓰는 나라가 이런 모습이라니. 비록 현재의 수정자본주의가 잘못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우리가 그 분야는 전부 따라잡은 셈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도 이럴진대 우리라고 별 수 있겠나 싶어서. 일종의 패배감이자 열등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민주주의의 역사는 우리가 훨씬 짧으니까.

    거대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경제정책이나 대홍수 이후 오히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업가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어쩜 우리와 똑같은지, 역시 잘 배웠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심성이 같아서 그런 건지 현대의 자본주의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들의 세세한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차마 더 이상 실을 수 없었단다. 이러한 것조차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책 속의 한줄

책속의 한줄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