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나 지음
2010-06-11
11,000원 | 228쪽 | 205*135mm
\"일찍이 한국 문학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이상하고도 낯선 세계의 존재를 예감케 하는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을 이끌어 낸 2010년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제리>는 치명적인 성애 묘사를 통해 이 땅의 모든 불우한 청춘들의 벌거벗은 삶을 시리도록 아프게 그려 낸 성장소설이다.

애써 학교 이름을 대 봤자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는, 수도권의 별 볼일 없는 2년제 야간대학 학생인 \'나\', 그리고 노래바나 호스트바에서 선수로 뛰는 \'제리\'. 출발부터 뒤처진 그들 \"신(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청춘들에게 일상은 무의미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섹스뿐\"이다.

당연히 주인공 \'나\'는 꿈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가장 당혹스럽고, 결코 죽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죽어서까지도 늘 이따위 신세일까 봐 구질구질한 삶을 끝낼 수조차 없다. 그녀는 의미 없는 섹스를 마치 출근하듯 나누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오로지 고통의 징후로 환원한다. 고통과 상처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지만 그녀는 고통을 호소하거나 사유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갈 뿐, 왜 혹은 어떻게 이토록 파괴적인 삶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그녀의 초연한 태도는 부끄러움과 당혹의 몫을 모두 독자에게 건넨다.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썩은 동아줄이다. 하지만 그 줄을 잡으면 땅에 떨어질 줄 알면서도 잡을 수밖에 없는 역설적 초연함을 <제리>는 담담하면서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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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골적인 성교 묘사 너머에 있는 그들의 삶
    행인 | 2010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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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가능하면 찾아서 읽은 문학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이다. 책을 받아들고 표지 등을 보면서 처음 느낀 점은 얇...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가능하면 찾아서 읽은 문학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이다. 책을 받아들고 표지 등을 보면서 처음 느낀 점은 얇다는 것과 소녀 취향의 그림이란 것이다. 바로 읽을 수도 있었는데 뒤쪽 심사평을 읽으면서‘치명적인 성애묘사’란 표현에 문학상 수상작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했겠는가 하고 내려 보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몇 쪽을 읽지 않아서 바뀌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한 편의 포르노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문학을 통해 이런 경험을 했다.

    사실 이런 표현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마광수 교수나 장정일의 작품 속에서 이미 표현된 적이 있다. 이 작품들이 세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시절에 이런 묘사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정도는 아니었다. 몰래 보고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뒤섞어 표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아예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다. 대단한 변화다. 이런 변화가 인정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청춘들의 삶과 방황이 현실의 한 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리는 노래방 도우미로 온 남자의 이름이다. 그가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우연히 지명한 화자 나의 행동과 심리로 그려진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가 열심히 놀려고 할 때 오히려 즐겁기보다 어색하고 그 속에 몰입하지 못한다. 술로 시간을 때우고, 시간이 끝난 후 다른 파트너를 부르자는 동료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를 불러낸 것은 바로 이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들어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와의 시간 속에서 즐겁게 놀지 못하지만 그녀가 느낀 감정은 솔직한 성욕이었고, 이 감정은 꿈도 희망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현실의 그녀에게 하나의 도피처가 된다.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20대는 도덕적 시각에서 보면 음탕하고 반도덕적이다. 술과 섹스와 일탈을 즐기려는 마음만 가득하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다. 미주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많은 20대의 현실이다. 추상적인 꿈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이들을 보면서 대학 도서관과 영어회화학원을 오가면 스펙을 쌓고 있는 대학생을 생각하면 완전히 딴 세상 아이들 같다. 이런 양극화는 현실 속에서 이미 벌어질 만큼 벌어졌고,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화자가 자신과 선후배의 미래를 생각할 때 현실의 높은 벽과 넓은 틈새는 결코 낮아지거나 좁아지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한다.

    현실 속 청년들은 이미 불공평한 경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외모 차이, 부모의 재력 차이, 학력 차이 등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의 이런 차이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그 때문에 제리가 “그런데 내가 진짜로 무서운 건, 죽어서도 이대로일까 봐, 죽어서까지도 늘 이따위 신세일까 봐, 또다시 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214쪽)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그들에게 술과 섹스에 대한 갈증과 탐욕은 일시적이면서도 충동적일 수밖에 없다.

    화자의 삶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사회에서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학창시절엔 날라리란 이유 때문에 선생에게 성희롱 당하고, 이 사실을 믿어주기보단 그녀를 탓하는 현실을 만난다. 졸업 후 갈 대학이 없어 2년제 야간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이것은 단지 다른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외로움 때문에 술과 섹스를 제외하면 아무런 감정 교류도 없는 강을 만나고, 가족과의 단절은 타인과의 관계보다 못하다. 이런 그녀의 일탈과 방황 속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조그마한 깨달음과 감정은 이 시대 20대의 조그마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골적인 성교 묘사 너머에 있는 그들의 삶은 조용히 가슴 한 곳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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