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지음
2010-07-09
13,800원 | 380쪽 | 223*152mm (A5신)
종합평점 : 4.5 ( 4 명)
인권,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책은 새로운 느낌으로 전달한다.

수 십편의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통해 일상속에서 흔하게 접하는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접할 수 있다. 김두식 특유의 편안한 문체와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 그리고 열린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인권은 의식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책을 읽다보면 태어나고 배운대로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편견들을 일상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자신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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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새로운 불편을 느끼기 위하여

제1장 네 멋대로 해라: 청소년 인권

미쳐가는 아이들과 조기유학
지랄 총량의 법칙
네 멋대로 해라
미친 교육과 펭귄의 시대
엄친아 이야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엄친아
‘천천히’ 대학 가기
옷이라도 자유롭게 입도록 하자

제2장 왜 이렇게 불편할까?: 성소수자 인권

왜 이렇게 불편할까?
‘다름’을 대하는 태도
하비 밀크와 그의 시대
호모포비아가 낳은 위스키 고백
동성애자 차별의 논리들
여러분 주변의 동성애자들
동성애자의 결혼

제3장 뺨따귀로 사랑 표현하기: 여성과 폭력

여성을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현빈의 폭력, 소지섭의 난폭질주
「똥파리」가 보여주는 ‘진짜’ 폭력
「연애의 목적」, 혹은 성희롱의 목적?
못생기면 사람도 아니다
포스트페미니즘의 빛과 그림자
새로운 가족의 탄생

제4장 공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장애인 인권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영화?
동일시와 비인간화
사람 잡는 우생학
「오아시스」의 빗나간 과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주
장애를 보는 두 시선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넘어

제5장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언제 나올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영국병을 치유한 새처 총리?
「빌리 엘리어트」, 아버지의 눈으로 다시 보는 탄광파업
노조가 죽은 이후… 「브래스트 오프」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정치파업과 비정규직 문제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언제 나오나?
한명의 인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

제6장 1년에 600명의 청년들이 교도소에 가는 나라: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밀양」, 놀라운 ‘기독교’영화
비합리적이지만 사라질 수 없는 종교
「방문자」의 강지환은 스타가 되었지만, 계상은…
대체복무를 인정해야 할 이유
병역필 남성들의 심리적 장벽을 넘어

제7장 영화 화면을 자르는 사람들: 검열과 표현의 자유

영화 화면을 자르고 뭉갠 사람들
사전검열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위헌
반면교사: 미국의 등급제도
누가 등급을 매기는가?
같은 누드라도 동성애는 안되는 이유
아, 정말 불편하다

제8장 누가 앵무새를 죽였는가?: 인종차별의 문제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던 커포티
영화 번역이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상하관계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
『앵무새 죽이기』의 시대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영화
왜 이렇게 강간 이야기가 많을까?
우리는 너희들이 더 무섭거든요
「박치기」의 역지사지

제9장 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폭격과 제노싸이드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가?
르완다의 진실을 그린 「해마다 4월이면」
국가가 괴물이 되면
과연 한두 악인의 문제인가?
겨우 0.05%의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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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자들, 그들은 내 곁에 있다 동성애. 사회적소수자, 인권
    littlechri | 2010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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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교회 모임에 나오지 않는 한 분을 찾아뵈었죠. 뜻밖에 놀랄 만한 사연을 들었어요. 자신은 동성애성이 있다는 고백. 자초지종을 들어봤지요.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아버지가 떼놓은 뒤부터 이성을 ...

    최근 교회 모임에 나오지 않는 한 분을 찾아뵈었죠. 뜻밖에 놀랄 만한 사연을 들었어요. 자신은 동성애성이 있다는 고백. 자초지종을 들어봤지요.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아버지가 떼놓은 뒤부터 이성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죠. 그 은밀한 속사정은 예배당 안에서조차 가시지 않았고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거죠.


    나는 오늘날의 교회가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교회여야 한다고 이야기해왔어요. 더욱이 사회적 소수자들도 언제나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교회여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그런데 뜻밖에 그런 분이 우리교회 교우였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곰곰이 생각해 봤죠. 만일 그 분이 교회 내에서 동성애자가 되기로 공개적으로 선포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교우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도 그 분과 이야기할 때 공감은 갔지만 마음까지 정리가 된 건 아니었지요. 예전에도 겪은 바가 있듯이 술중독자도 다들 괜찮다고는 했지만 불편해하던 일이 역력했었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서 관계 자체가 지니는 보편성과 개별관계의 특수성을 관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친구가 되고 나면, 친구 사이에서, 혹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두가 똑같이 죄인인 입장에서, 누가 누구를 받아들이고 관용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공포는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 공포 때문에 더 커진 적대감이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친구가 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지요.(81쪽)


    이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를 부제로 달고 있는 법학자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한 대목이에요.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을 두고서 한 것인데 아주 정확한 부분을 꼬집는 것 같았지요. 교회나 일반조직에서 동성애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라는 거죠. 개인적으로 그들의 속사정까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괜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죠.


    법학자지만 깊은 신앙심까지 소유한 그는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성경의 황금률까지 꺼내고 있지요.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가 프라이버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관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란 것이죠. 이성애자들이 보장받기를 원하는 그대로 동성애자들도 주장하고 누리도록 해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떤가요, 수긍이 가나요? 중요한 건 그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죠.


    이 책은 그 밖에도 청소년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종차별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러 부분들을 꽤 볼만한 영화들과 함께 풀어나가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는 제가 한국에서 본 영화의 관람료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잘려나간 부분들은 기지 않았지만, 그걸 빼고 나면 이미 완전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양복을 팔면서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양복이 분명하니 그냥 입으라는 것과 같습니다.(241쪽)


    이는 〈바디 히트〉〈나인 하프 위크〉〈투문 정션〉〈와일드 오키드〉들을 보고 난 뒤에 한 이야기이죠. 한국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캔자스주 로런스 대학도시에 머물면서 본 것들인데 한국의 것들과는 달리 완전 무삭제였다는 것이죠. 그랬으니 화딱지가 날법도 한 것 같네요.


    놀라운 건 그것이죠. 영화의 등급과 검열에 관한 것. 그는 2006년의 커비 딕(Kirby Dick) 감독의〈이 영화는 아직 등급이 없다〉를 예로 들면서 대부분의 심사위원은 대형영화관의 사장, 영화 배급업자, 대형영화사의 판매담당 부사장, 영화관 소유자협회 지부장, 그리고 몇몇의 성직자들이 맡는다고 해요. 나름대로 자본과 종교가 합작하여 이익을 챙기고 있고, 당연히 소수자의 시선은 묵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요. 우리도 여태 그런 건 아닐까요?


    아무튼 법학자가 영화를 소재로 인권을 이야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발한 것 같아요. 그의 지식습득이라는 것도 영화를 통해 더 빨리 가져올 수 있었고, 독해력이라는 것도 외국영화에서 많은 덕을 봤다고 하니, 일거양득이란 바로 그건 것이겠지요. 그가 보고 추천한 영화들을 통해 우리사회에 일그러진 인권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고, 여러 의미들을 건져 올리면 좋겠어요. 그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아니라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다 인권 영화
    jedu | 2010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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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다 영화는 그 자체로도 즐거움을 주지만, 영화를 매개로 하여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 대화, 토론을 나누기에도 좋은 소재가 된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평소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 속...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다


    영화는 그 자체로도 즐거움을 주지만, 영화를 매개로 하여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 대화, 토론을 나누기에도 좋은 소재가 된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평소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이끌곤 한다. 나는 영화 마니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띄엄띄엄 보는 편이지만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과학수업의 소재로도 가끔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면서도 다양한 시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관점과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고 해석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에도 장애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 성소수자 등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왔던 김두식 교수가 이번에는 영화를 통해 인권을 이야기하는 『불편해도 괜찮아』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인권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차별과 제노사이드 같은 국제적인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인권의 문제가 민감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머리 아프고 어려운 것으로 오해하거나, 혹은 상대와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삐딱한 사람들, 뭔가 상처가 있는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사회의 약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누구나 쉽게 인권에 대해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인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주보다 더 귀한 것이 한 사람의 생명입니다. 죽음은 당사자에게 우주의 소멸과 같습니다.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인류라는 거대한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똑같이 고귀한 것입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하는 것은 인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몬스터를 만나다


    고등학교에서만 12년을 근무하다가 처음 만나게 된 중학생들은 완전 새로운 종족이자 몬스터들이었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거칠고 힘이 드는 아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다보면 이야기가 통하곤 했다.


    그런데 중학생들은 어찌나 조잘대고 철이 없는지, 무슨 말을 해도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속과 겉의 이질감과 복잡성은 종잡을 수 없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나기도 했다.


    저자는 중학생 딸의 예를 들며 청소년들의 사춘기에 대해서 들려준다. 그러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춘기 때에 정해진 양을 다 쓰고, 또 어떤 사람은 나중에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할 때,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얼마만큼의 ‘지랄’이 남아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 ‘지랄’을 표현하게 될까.


    저자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예를 들면서, 자녀를 사랑하고 위한다는 명목 아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기대나 강요가 아니라 변함없는 사랑임을, 너무나 명백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있다.


     


    disabled, handicapped, special needs


    고등학교에서 수업 중에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낙태 자체에는 반대를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대표적인 상황이 바로 장애 아이를 임신할 경우였다. 이는 어린 학생들마저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아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지가 얼마나 깊게 뿌리박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 역시 장애인들에 대해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특히, 중앙기독학교에 와서 통합교육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 무능력하고(disabled) 결함이 있는(handicapped) 존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special needs) 존재이며 모든 인간은 가치롭고 아름답게 창조되었음을 배워나가고 있다.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맞서는 스파르타의 용사들이 등장하는 영화 <300>을 보자. 스파르타 용사들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불가능한 이 전투에 뛰어들어 페르시아의 괴물들을 마구 무찌르고 죽인다. 저자는 관객들이 '팬티만 입은 근육맨'들에 열광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위험한 조류에 동조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쁜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가 강해져야 하고,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하고, 강한 군대를 갖기 위해서는 강한 아이들만 낳아서 키워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약자들은 버리면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한 군인이 될 자질이 없는 자는 살 가치도 없으니까.


    실제로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이 정도뿐인 것은 아닐까.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배타성을 잘 보여준 탁월한 영화 <오아시스> 역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공주, 그리고 전과자인 종두 두 사람의 사랑은 강간으로 오해받게 되고, 종두는 경찰서로 잡혀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주와 종두는 자신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공주는 몸이 불편한 뿐인데도 지적장애까지 있다고 사람들은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또한 일반인처럼 움직이고 행동하는 공주의 환상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장애인들이라면 이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남성적 시선,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장애인영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으면서, 그동안 장애인들에 대해서 막연히 불쌍한 존재, 도와줘야하는 존재로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인권 감수성


    저자는 책머리에서 인권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같이 공감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인권 감수성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면,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이 늘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내 문제가 아니면 살아가는 데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과 편견이 횡횡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별로 불편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까지 신경 쓰면서 살기 귀찮아하거나, 나 빼고 다른 사람이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또한, 학생들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는 생각이 굳어져서 아이들의 불편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거나 해결하고자 노력하지 않았음을 반성하고 있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작은 일 하나하나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인권감수성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그 불편함에 대해서 기꺼이 눈을 뜨기를 원한다.

  • 불편해도 괜찮아 - 김두식 : 당신의 인권감수성은 안녕하십니까?
    agnes | 2011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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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식의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 이 말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책등에 쓰여있는 소개글입니다. 제 나이는 벌써 스물넷인데 아직 사회나 정치, 역사, 문화 쪽으로는 십대 수준이네요. (아니, 십대보...
    김두식의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 이 말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책등에 쓰여있는 소개글입니다. 제 나이는 벌써 스물넷인데 아직 사회나 정치, 역사, 문화 쪽으로는 십대 수준이네요. (아니, 십대보다 더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본인의 수준을 모르는 것보다는 이런 제 상태를 알고 있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이, 애초에 어려운 책은 제쳐두고 일단 청소년을 독자로 설정한 책들을 찾아서 읽게 되니 재미도 있고 얻는 것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만약 제 사회적 지적 수준이 (사실과 다르게) 높다고 알고 있었더라면 허세를 부려서라도 어려워보이는 책을 골랐을테고 몇장 읽지도 못한 채 애꿎은 책 탓만 할겁니다.

    그래서, 쉬워보이는 책을 고른 제가 여기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인권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뤄져야 할 요소라는 사실입니다. 이 책에서는 인권을 아주 간단하게 '내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 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다른 이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봐 보라는 말이네요. 그러고보면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셈입니다. 애기들은 보통 참 이기적이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빽 소리지르면서 울고, 나를 괴롭게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때리고 싫어하고 막 대합니다. 그럴 때 많은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전부 그렇지는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상대방의 입장에 아이를 대입해서 설명을 해줍니다. 철수가 영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막무가내로 때리고 밀쳐서 빼앗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거에요. 철수야, 철수 벌받을 때 엄마한테 맞으면 어때? 아프지. 아픈거 좋아? 싫지. 철수가 좋아하는 곰인형 엄마가 빼앗으면 좋아? 너무너무 싫지? 그래. 영희도 철수랑 똑같아. 맞으면 아프고 좋아하는 것을 빼앗기면 슬퍼. 이렇게 우리는 인권이라는 것과 처음 만났어요.

    만나긴 만났는데, 만나기만 한게 문제죠. 그 뒤로도 계속 아이들이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여지를 줘야하는데 지식만 퍼다가 아이들 머리에 주입하는 일방적인 교육 때문에, 또는 아이들이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 영화, 인권을 가르치다.
    대지의 속삭임 | 2012년 1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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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을 이해하는 방법     인권, 즉 인간의 권리는 인종, 성별, 종교 등에 관계없이 인간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하면, 이유 없이 차별 받지 않을 권리이다. 동시에 이 것은 각 개인에게 전...
    인권’을 이해하는 방법



        인권, 즉 인간의 권리는 인종, 성별, 종교 등에 관계없이 인간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하면, 이유 없이 차별 받지 않을 권리이다. 동시에 이 것은 각 개인에게 전속(專屬)되어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매매할 수 없는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인권의 개념은 너무 막연하다 보니 실생활에 있어서는 사실상 무시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의무보다는 권리, 남의 권리보다는 내 권리에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주장하다 보니 가진 자[有産階級] 혹은 목소리 큰 자의 인권만 부각되고 가진 것이 없는 자[無産階級] 혹은 침묵하는 자의 인권은 묻혀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인 김두식은 인권을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거야    다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 “영화관에 앉으면 10분도 되지 않아 나와 전혀 다른 인생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주인공과 똑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차별 받는’ 입장을 이해하면, 그 입장 때문에 생긴 내 마음을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대신에 ‘차별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와 드라마는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데 그만큼 효과적인 수단입니다.시혜(施惠)나 동정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정상인”의 시선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세상의 이면(裏面)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관념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시혜(施惠)를 베풀 듯 관심을 가지거나 동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또한 또 하나의 왜곡, 아니 차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진 자 혹은 목소리 큰 자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시각을 공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예컨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청소년-학생의 인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교사의 인권이 침해 받을 수도 있다. 이미 학부모나 청소년-학생들에게 있어 교사는 더 이상 스승이 아니라 지식장사꾼 내지 지식노동자에 불과하다. 학생지도를 하려다가 도리어 멱살을 잡히는 교사가 나올 정도
        또한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그런대로 잘 갖춰있는 반면 피해자나 그 가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 결과 “피해자는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뿐 아니라 사건 이후 생계곤란, 주변의 오해, 언론의 오보 등으로 2차, 3차 피해    그러므로 인권에 있어서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런 자세가 결과적으로 모두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하면 서로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제노사이드를 향해 달음박질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테리 조지 감독의 <호텔 르완다>(2004)나 라울 펙 감독의 <해마다 4월이면>(2005)에서 그려진 르완다의 비극은 어쩌면 사소한 “‘우리 투치들이 후투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똑똑하다’고 생각한 투치들의 오랜 후투 차
        저자의 말대로 “제노싸이드 영화들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다름’에 대한 것입니다. 죽이는 사람과 죽는 사람을 가르는 차이는 사실 너무나 사소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자꾸 ‘다름’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우리’끼리 모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노싸이드를 통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시도는 끔찍한 후유증만 남겼을 뿐입니다.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내가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이 아니기에 그들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수는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왼손 두 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다름”과 “차이”를 부정하고 이를 “틀림”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할 때 진정한 인권을 지키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의 시작인 DNA가 서로 다른 염기서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