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드루커 지음 | 김한청 옮김
2010-09-07
14,000원 | 200쪽 | 190 × 250mm
종합평점 : 4.1 ( 12 명)
세계의 바벨탑 뉴욕의 종말을 예언한 에릭 드루커의 ‘뉴욕 묵시록’
예술가는 ‘잠수함의 토끼’라고 한다. 다가올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먼저 아파하기에 그럴 것이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 에릭 드루커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세계의 메트로폴리스 뉴욕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화려한 도시, 즉 자본주의의 행복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가난한 이웃들을 내쫓고 있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1992년에 발간된 이후 현재까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레이건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겠다면서 거리로 무수한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을 때인 1980년에 작가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레이건의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되면서 지구촌 어디라도 빈부의 격차의 심화와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빈부 문제의 극단적 표현이 용산참사일 것이다. 이처럼 드루커가 그리는 뉴욕 묵시록은 비단 뉴욕, 미국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에 대한 암울한 메시지다. 하지만 드루커는 절망을 노래하기보다는 시민의 연대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미국도서상을 수상한 그래픽노블의 걸작
“잉크 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빛과 생명을 끄집어내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림 하나가 수천 마디 말의 가치를 담고 있기에 엄청난 대하소설이다”라고 작품 『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를 이렇게 평가한다. 이 작품은 슈피겔만의 평가에 걸맞게 미국 도서상을 비롯하여 『뉴욕타임스』와 『타임』 등에서 최고의 만화책으로 선정되었다.
드루커의 작품은 짙은 사회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뉴욕시 한복판에 사는 거지, 노숙자, 굶주린 아이, 흑인과 실업자들의 소외와 상처를 끝없이 내리는 비와 엑스레이에 비춰진 뼈들로 표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형태를 변형하는 방식에 있어서 케테 콜비츠를 비롯한 독일 표현주의로부터 그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드루커가 인물의 내적 동요를 드러내기 위해 왜곡과 과장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드루커의 독창적인 예술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책은 오늘날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 등 그래픽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서가 되었으며, 이 작품의 원본들은 후대를 위한 소장 가치를 인정받아서 미국 도서관협회가 구입하여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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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
    핑크마마 | 2010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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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때아무 글자가 없는 그림책을 읽어준적이 있습니다.어린시절.. 아이에게 글자 없는 그림책을 읽어줄때면..매번 읽을때 마다 어떤 이야기든,, 엄마맘대로 이야기가바뀌곤 했었는데요.. 그러면 또...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때
    아무 글자가 없는 그림책을 읽어준적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아이에게 글자 없는 그림책을 읽어줄때면..
    매번 읽을때 마다 어떤 이야기든,, 엄마맘대로 이야기가
    바뀌곤 했었는데요.. 그러면 또 아이는 그런 이야기에
    풍덩 빠져서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비가 정말 하늘에서 구멍 뚫린듯 오는날처럼..
    그런 날에 정말 홍수가 범람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을 할때도 있었던것 처럼..
    처음에 대홍수라고 해서..
    그런 이야기는 아닐까? 나름 상상도 해보고 펼쳐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노라니..
    글자없는 만화책이더라고요..
    이런 만화책은 한번도 읽은적이 없어서..ㅎㅎ
    그렇지만,, 또  많은 상을 받은 책이라서 (미국도서상부터,, 뉴욕 타임즈 책 선정 등등)
    어떤 이야기로 풀어나가서 상을 받았을까도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표지의 우산을 쓰고 비오는날,,, 우산을 쓰고 가는 남자의 가슴에
    하트가 보입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뉴욕이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작가는 표현했지만,, 바로 그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이 이야길 통해서 우리들이 무심코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의 지나치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소외된 도시의 대홍수 소외, 뉴욕, 대홍수
    jjolpcc | 2010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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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   책『대홍수』가 표현한 것은 소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대 도시 뉴욕은 인간 소외의 거대한 표본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나 힘과 권력이 없는 자들은 도시의 맨 아랫부분에 소외되...
    소외. 

     책『대홍수』가 표현한 것은 소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대 도시 뉴욕은 인간 소외의 거대한 표본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나 힘과 권력이 없는 자들은 도시의 맨 아랫부분에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소외됐고, 집 밖 도시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작가 에릭 드루커의 그림은 현대 문명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표현한다. 거친 스크래치로 표현된 인간들, 뼈가 훤히 보이는 인간들, 눅눅하고 축축하고 어둡기 만한 얼굴들과 도시 풍경들.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타락한 군상. 드루커의 그림에서 인간과 도시는 소외라는 공통된 쓸쓸함 젖어 있었고 그는 이런 현실을 스크래치 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다.


     기술이 진보하여 다양한 미디어가 속출하고, 개인 휴대 단말기들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 하지만 그렇듯 발달된 현실에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과거 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술적 진보는 인간의 이성적 진보를 가로막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자체가 기술의 목적이 되어 인간의 순수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드루커의 그림에서 보이는 엑스레이 양식(뼈가 드러나 보이도록 사람들을 투명하게 그리는 양식)때문인지 몰라도 책을 보는 내내 그가 표현한 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고민해 보았다. 결국 인간의 본질이 파괴되면 문명도 파괴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대홍수로 인해 뉴욕이 잠기는 드루커의 그림은 의미심장하다.


     소외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영혼이 없는 인간들의 공간이 될 것이다. 드루커는 자신의 그림에서 문자를 배제시켰다. 소통과 대화가 사라진 현대인의 비인간적 공간 즉 도시. 드루커는 그림에서 글자와 소통이 사라진 대도시 뉴욕을 표현하고 있었다. 소외된 인간이 가득한 도시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도시를 파멸시킨다. 대홍수로 말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을 깨끗이 하기 위해 인간들에게 분명 거대한 홍수를 내리리라는 확신을 갖고 말이다.


     몇 달 전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도끼 살인자 라스꼴리니꼬프는 문명의 진보가 만들어낸 희생양이었다. 「죄와 벌」이 문자를 통해 말해주는 교훈은 드루커의 『대홍수』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교훈과 다르지 않다. 이성과 합리성을 통한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 낸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이 만든 인간 소외는 결국 파국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합리성이 만든 변증법의 세상을 뒤로 하고 우리는 진지한 인간 본연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드루커의 그림 곳곳에서 발견되는 과거 오래된 문명의 흔적들, 이누이트들, 다양한 고대 형상들은 문명이 만들어 내는 참혹한 소외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그림이라는 소통 장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하지만 짧디 짧은 나의 얇은 지식으로 드루커의 작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진보의 비인간성과 소외 그리고 파국이었다.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많은 문제들도 해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이야기 하고 싶다. 뼈로 상징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야 말로 소외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뉴욕
    호의은행 | 2010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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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뉴욕을 배경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실직 당한 사람의 이야기, 지하철에서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의 이야기, 대홍수 속에서도 자신만의 그림을...

    이 책은 뉴욕을 배경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실직 당한 사람의 이야기, 지하철에서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의 이야기, 대홍수 속에서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를 대사나 지문 없이 만화적 그림만으로 저자는 펼쳐낸다. 우선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서 느낄수 있는 것은 암울함이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언제나 그렇듯 늘 타고 다니던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도착해 보니 직장은 폐쇄되어 있고, 집은 퇴고 통고를 받은 상태이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뿐, 현실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이럴 때 생각할수 있는 것은 대홍수가 나서 모두가 어떻게 되으면 하는 마음뿐이지 않을까!

    저자는 궁극적으로 뒤틀린 미국의 가치관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 서민을 살리겠다고 경제 정책들을 무수히 내놓지만 정작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며,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도시 재개발 사업의 진짜 주인공은 그 곳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이들의 말들은 전쟁과 폭력의 다른 말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 가치는 왜 왜곡되어 가고 있으며, 우리들은 왜 계속해서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가고 있을까? ‘최하층 계급의 극심한 빈곤, 중산층 도시 거주자들의 기대감의 몰락, 공공 재산의 지분을 부유한 사람들에게 넘기는 부당한 현실이라는 말이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했던 말도 이것이지 싶다.

    '다른'만화의 시리즈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만화들을 소개한다
    . 이 책은 특히 내용도 내용이지만 검정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로 내용을 표현하고 있어 읽고 있으면 저절로 다른 만화와는 다르다는 것일 느낄수 있다. 이 시리즈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과관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사회비평서보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 장의 그림이 주는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고위공직자의 비리보다 연예인의 잘못이 더욱 거세게 비판받는 지금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 한데, 우리의 가치도 뒤틀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좀더 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선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우선 왜곡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한 만화을 원하신다면 이 책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
    현지공주 | 2010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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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가 몇일전.. 오헨리의 단편을 읽고,,마지막 잎새, 20년후, 크리스마스 선물 등등의 오헨리의 작품의 배경이뉴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전 또 엄마입장에서~미국이 어디 있는지 지구본에서 찾아봐? 라고 이야...
    딸아이가 몇일전.. 오헨리의 단편을 읽고,,
    마지막 잎새, 20년후, 크리스마스 선물 등등의 오헨리의 작품의 배경이
    뉴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 또 엄마입장에서~
    미국이 어디 있는지 지구본에서 찾아봐? 라고 이야기 하고,
    뉴욕은 어디쯤 있지?
    미국의 수도는 어디지?
     하면서 물어보니..
    딸아이..~ 엄마, 나 미국 수도 어딘지쯤은 알아 하더라고요.^^

    이렇게 뉴욕에 대한 관심을 가질 무렵
    대홍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홍수의 배경이 뉴욕이란 말에 아이도 반기는 듯.!~
    아직은 저만 읽어보고.. 조금 더 크면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할 생각입니다.^^

    제가 워낙 어린시절부터 만화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렇다 보니..
    대홍수에 대한 기대반 설렘반으로 읽어봤는데..
    어.. 만화책이 글자가 없어요..
    색감도...없고요..
    이런 만화는 처음인데.. 싶었는데..ㅎㅎ

    이 작품은 여러 상을 받았더라고요. 미국 도서상부터 다양한 상을 받았어요.
    솔직히 어떤 책일까? 참 궁금해서 읽어보았는데 이 책은 제가 생각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낸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화속 색감 없는 마치 검은 잉크 같은 느낌의 그림톤으로 담겨진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은.. 뭐랄까? 지금 우리 현대 사회를 그려낸거 같다는 기분도 들었구요.

    대사와 지문이 전혀 없는 세편의 만화의 형식으로 그려진 이 책에서
    그동안 뉴욕의 화려함만을 보았다면,,
    뉴욕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삶을 그림으로 읽어보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뉴욕은 세계의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만큼,,
    작가에 따라서.. 또는 사람들에 따라서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각각 다를꺼 같아요.
  • 강렬한 스크래치 보드가 인상적인 만화
    보슬비 | 2010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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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출판한 출판사에서 그 다음편으로 출간한 시사 만화라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물론, 다른 작가이지만,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것 같아서 읽고 싶었거든요.차가워보이는 ...











    이 책은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출판한 출판사에서 그 다음편으로 출간한 시사 만화라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물론, 다른 작가이지만,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것 같아서 읽고 싶었거든요.



    차가워보이는 거센비바람 사이에 희망을 잃지 않는 빨간 하트의 심장이 제 눈을 사로 잡았습니다.


    이 책은 '집', 'L', '대홍수' 이렇게 3편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일반 시사만화처럼 몇컷으로 처리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사만화치고는 장편이라 말할수 있겠네요.

    그리고 이 책의 특성상 글이 없기 때문에, 독자에게 친절하게 작품소개와 작가 소개 그리고 작가의 인터뷰가 있는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외서 표지 디자인은 번역서와 함께, 이 표지 디자인을 사용한 것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표지 디자인이 좀 더 마음에 들었어요.

    대도시의 외로움이 잘 느껴진다고 할까요.



    사실 이 장면이 표지 디자인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책을 다 읽고나서야,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위에도 말했듯이 이 장면이 제게는 가장 인상이 깊었던것 같습니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오르면 '포근한곳, 안식처'등이 따뜻한 말들이 떠오르는데, 이 장면을 보면 그런 느낌과는 왠지 거리가 멀어지는것 같네요.



    하루 일상이 매일 매일 똑같고,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단절한채, TV만이 세상과의 소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지금은 TV가 아닌 컴퓨터이겠지요.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보고자 노력하지만,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는것이 없습니다.



    직장을 잃고, 집세를 못내 집에서 쫓겨나 더 이상 머무를곳 없이 방황하는 이를 보면서 주변은 더 삭막해보입니다.



    모든이의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포스터는 상영등급불가를 받고, 폭력이 난무한 전쟁영화는 모든연령 관람등급을 받는 세계가 무척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이 점점 나락의 길로 걸어가면서 만화도 점점 분할되어 표현합니다. 마치 주인공의 앞날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거리에서 보았던 부랑자들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던 이웃, 친구, 가족중의 누군가가 어떻게 사회의 최하층으로 추락하게 되는지 보여주네요.

    강렬한 스크래치 보드로 인해 대사가 없더라도 공포, 절박함, 분노등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것 같았습니다.




    3편의 만화중에 'L'이 그래도 울적하지 않게 본것 같아요.



    물론 전철속의 획일적인 사람들과 온종일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로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주인공은 그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합니다.



    우연히 찾게된 통로를 통해 사회로부터 억눌렸던 욕망들이 한순간에 풀어놓으면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눈을 떴을때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생활.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탈출하길 꿈을 꿉니다. 어떤이는 그 꿈을 현실로 바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꿈인채 간직하지요. 그리고 그 꿈조차 간직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걸 알면 괴롭기 때문에 그냥 무관심으로 대처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메인 소재인 '대홍수'예요.

    간결한듯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만화 같아요. 글이 없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각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것 같습니다.



    정말 이 만화로 인해 스크래치 보드의 매력에 빠져버렸답니다. 날카로운듯 섬세함에 매료되었다고 할까요.

    보는것만으로도 바람과 비로 온몸이 흠뻑 젖어버리는것 같습니다.



    저자와 비슷해보이는 만화가예요. '대홍수'의 특징이라면 파란색 색감이 들어간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더 집중해서 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파란색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게 되는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우산을 쓴 사내는 날아갈듯해보입니다.



    그리고 정말 사내는 우산을 들고 하늘로 날아갑니다.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공장의 굴뚝에서는 매연을 쏟아내고, 하수구에서는 오폐물들을 쏟아냅니다.

    예전에 폭우를 틈타 이렇게 강에 오폐물을 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서인지 더 씁쓸하네요.



    우산을 쓰고 도착한 곳은 어떤 곳일까요. 모든 사람들은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있지만, 사내는 그 속에서 더 외로움을 느끼는것 같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보는 느낌이랄까.

    한쪽에서는 향락을 즐기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들을 사고 팔며 보내고 있다면,



    또 다른곳에서는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중을 위해 연설하는 여자를 그냥 지나쳐봤었는데, 만화를 다 보고 나서 그의 작품을 찾다보니 발견하게 된 책이예요. 이 책의 여주인공과 위의 여성이 비슷해보이네요.

    기회가 되면 그의 다른작품들도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진실을 맞고 자하는 사람들.



    탱크앞에서 새총으로 대항하려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무기력해보입니다.





    대홍수로 모든것이 휩쓸릴때 만화가와 함께 있던 고양이만이 방주에 오르게 됩니다.



    그저 만화로만 보기에 무척 섬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쎄, 예전에 다른 세기의 종말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재앙이었지만, 만약 인간의 종말이 온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사실 때문인것 같습니다.

    만화이기 때문에, 대사가 없기 때문에 한시간에 읽으려면 여러번 읽을수 있을만큼 빨리 읽을수 있는 만화책이지만 내용만큼은 쉽게 넘길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읽는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것 같습니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약간의 다른 해석들을 내놓을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그림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오래도록 생각나는 만화일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네요.


  • 색다르고 강렬한 그림과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행인 | 2010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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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수상 경력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만화 시리즈 중 한 권이라 관심이 갔다. 사실 다른만화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아직 읽지 않은 를 언젠가 읽게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서평...
    화려한 수상 경력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만화 시리즈 중 한 권이라 관심이 갔다. 사실 다른만화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아직 읽지 않은 <바시르와 왈츠를>를 언젠가 읽게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면 더 확신이 생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은 그래픽노블이기에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책을 받아 넘겨보면서 당황했다. 단 하나의 지문도 대사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읽어온 만화는 대부분이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았거나 일본만화다. 그 덕분에 내용에 상관없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는 작품들이 많다. 나중에 그 작품들의 가치를 깨닫고 몇 편 읽기는 했지만 알게 모르게 놓친 작품이 적지 않다. 아마 어릴 때 이 작품을 손에 들었다면 대충 넘겨보고 한 곳에 팽개쳐두었을 것이다. 그림체는 판화 같고, 대사는 없고,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뭔 이야기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 색다르고 강렬한 그림과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판화 같다고 했는데 사실은 스크래치보드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판에 잉크를 바른 뒤에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판화 느낌을 준다. 의도된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한 컷 한 컷을 따로 두고 보아도 멋진 작품인데 이야기로 이어진 것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강렬함을 조금은 잊게 된다. 그것은 그림 탓이 아니라 대사와 지문이 없다보니 상상력으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유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상력이 어느 순간은 확신 부족으로 뭔 뜻인가 고민하게 만들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도와준다.

    모두 세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집>, <엘>, <대홍수>다. 별도의 작품들이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한다. 아마 비슷한 그림체와 남자 주인공의 행동과 모습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모양이다. 첫 작품 <집>은 한 소년이 아침 무렵 잠에서 깨어나 부모가 성교하는 모습을 보고, 창밖으로 한 노동자가 텔레비전 앞에서 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힘없고 지처보이는 노동자가 방송 시작과 함께 잠에서 깨어 직장으로 향하는데 빠른 발걸음과 더불어 점점 활기차게 변한다. 이 과정을 속도감과 힘찬 동선으로 이어간다. 그런데 도착한 직장은 폐쇄되었다. 이후 그는 처진 어깨를 가지고 집에 온다. 집은 퇴거명령이 떨어진 상태다. 작품 해설에는 직장을 잃은 사람이 집까지 잃게 된다는 것으로 풀어내는데 동의한다. 노숙과 부랑자가 단순히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문제란 점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곳곳에 상징과 의미를 심어 놓아 아는 만큼 보이게 만들었다.

    <엘>은 사실 <집>과 이어진 이야기로 착각하고 읽었다. 지하철로 들어간 한 남자의 기이한 환상과 경험이 다루어지는데 원시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음악과 춤이 이어지고, 자유를 만끽하고, 강한 열정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이것이 꿈이다. 현실에서 그를 깨우는 것은 무섭게 생긴 개와 경찰이다. 쓸쓸하게 지하철을 벗어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처량하다. <대홍수>는 지하철 밖으로 한 남자가 나오면서 시작한다. 제목에서 끊어지지 않았다면 <엘>의 그 남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것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남자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이 만화 속 유일한 단어들이 나온다. 한 에스키모 사냥꾼 이야기다. 위에서 세는 빗물을 우산으로 막고 다른 그림을 그리는데 비오는 날 강한 바람에 우산과 함께 날려간 후에 발생한 모험이다. 마천루와 공장을 지난 후 도착한 곳은 놀이동산이다. 그곳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한 곳에서 두 면에 걸쳐 아주 의미심장하고 함축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아트 슈피겔만의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를 말한 그 대목이다. 이후 이어지는 시위장면과 대홍수는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의 뒤틀린 가치관과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의 소외라는 주제로 했다지만 나에겐 도시 빈민과 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간다. 뉴욕의 마천루와 부랑자나 좀도둑으로 변하는 그를 보면서 현실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느낀다. 스크래치보드 작업으로 만들어진 그림과 다양한 장면 구성은 보면서 호흡을 조절하게 만들고, 한 면에 실린 그림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유추한다. 그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이 낯설음을 생각하면 그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하소설이니 마음의 눈이니 아름답다고 하는데 지금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컷과 컷 사이에, 컷 그 자체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혹시 일본만화에 질렸다면 혹은 그림만으로 충분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 한 컷에 담긴 강렬한 의미
    poison | 2010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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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명화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단 한장의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읽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나타내는 글씨도 없고, 부연설명도 없지만 단순한 그림앞에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이 명화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단 한장의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읽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나타내는 글씨도 없고, 부연설명도 없지만 단순한 그림앞에 오래도록 서있는건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를 읽고, 듣고,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에릭 드루커의 그림을 보면서도 같은 전율을 느꼈는데, 다른 만화와 달리 작가가 그림을 설명하는 긴 문구 하나 없었으나 그림 하나하나에 많은 설명이 담겼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홍수를 설명하는 그림에만 파란색이 섞였을 뿐, 모든 그림에는 오로지 검은색 뿐이다. 검은색과 바탕을 이루는 흰 색만이 처연히 섞여들며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뉴욕-하지만 그 곳은 개개인이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직장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람, 혹은 깊은 굴 속에 갇혀 밝은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등등 우리 사회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에릭 드루커의 만화 속에 등장한다. 굳이 검은 색으로 어둡게 칠하지 않아도 충분히 어두워 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렇게 어둡고 외로워보이는 그림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것은, 대홍수 후에 노인에게 구조되는 고양이 때문일 것이다. 모든 슬픔과 쓰레기가 홍수에 휩쓸려가고 남은 것은 없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우리 역시, 그리고 어두운 도시 역시 새롭게 출발할 여지가 남아 있는것은 아닐런지.


    아무 글씨도 없이 그림만 가득한 책이였지만 읽는 속도는 빽빽한 소설책을 읽어가는 것보다 더 느렸다. 그만큼 그림 하나하나가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화 앞에서 소리죽여 이야기를 듣듯이, 나 역시 에릭 드루커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느라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가 이야기 하는것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림에 눈을 고정하고서는 말이다.

  • 대홍수 에릭 드루커, 다른, 그래픽노블, 대홍수
    치카 | 2010년 0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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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입니다. 말은 항상 한 단계가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적 상징으로기호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판독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림은 가장 먼저 ...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입니다. 말은 항상 한 단계가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적 상징으로기호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판독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림은 가장 먼저 등장한 표기의 형태이고, 읽고 쓰기를 배우기 한참 전의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184)

    에릭 드루커의 말처럼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권의 이야기책보다 더 강렬한 것은 어린시절에 읽은 한권의 그림 동화책일지도 모르겠다. 어릴적에는 만화책에도 글자가 많이 씌여있으면 내가 볼 만화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림이 아무리 이쁘고 좋아도 제대로 들춰보지 않고 구석에 던져넣고 말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렇게 보지 않고 던져버린 책이 나중에 커서 무척 좋아하게 된 '베르사유의 장미'다. 혁명기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지만 내게는 처음으로 왕조사 중심이 아닌 역사를 보게 해 준 만화책으로 기억한다.

    어릴적부터 그림책보다는 글자만 가득한 이야기책만 읽어서 그런지 나는 그림으로만 표현된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스스로 이미지에 약하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어 더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화책을 볼때도 그림컷으로만 표현된 이야기를 놓쳐버리고는 이야기의 결과에 의아해할때도 많았다. 물론 그러한 것은 조금 더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게 되면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을 이해하는것은 느리다.
    그래서 대홍수를 펼쳤을 때 처음 느낀것은 당혹감이었다. 이 날카로운 그림들과 너무나 강렬해서 오히려 무겁고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그림들의 상징은 무엇인가...

    에릭 드루커의 작품들은 모두 판에 잉크를 바른 뒤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의 스크래치보드에 작업되었다. 그래서 다 날카롭고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외로움은 더 처절하게 다가왔고, 절망은 그 심연을 알 수 없게 깊은 어둠을 표현하고 있고, 간혹 보여주는 축제의 장면은 생동감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내용이 그가 직접 겪은 사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L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저자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뉴욕의 지하철 노선이며 뉴욕 14번가 아래로 지나가는 것임을 알았다. 다른 열차 아래로 다니는 지하 깊숙한 곳에 놓여있는 노선.
    각각의 이야기 '집'과 'L'과 '대홍수'는 여러가지의 상징과 신화, 성서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착취와 침략과 수탈과 억압과 좌절이 담겨있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있는 그대로 찍는 카메라가 있지만, 이 기계는 오로지 겉모습을 찍을 뿐입니다. 따라서 미술가의 작업 또는 시인의 작업은 겉의 층을 꿰뚫어 내면의 진실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진실은 매우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진실과 아름다움은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요...... 난 잘 모르겠지만요. 내가 진실 또는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나는 단지 여기에서 긁어낼 뿐입니다..... 긁어내서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189)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느릿느릿하지만 좀 더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그림판 하나하나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이해가 느린 나에게는 더욱더 깊은 통찰이 필요하겠지.


  • 대홍수 - 에릭 드루커 지음
    여유로움 | 2010년 0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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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 슈피겔만, 닐 게이먼, 프랭크 밀러, 조 사코, 닉 혼비 같은 쟁쟁한 이들의 추천사가 아니더라도 에릭 드루커의 작품인 (2010, 에릭 드루커 지음, 다른 펴냄)는 아주 강렬한 작품이다. '태초에 신께서 말씀과...

    아트 슈피겔만, 닐 게이먼, 프랭크 밀러, 조 사코, 닉 혼비 같은 쟁쟁한 이들의 추천사가 아니더라도 에릭 드루커의 작품인 <대홍수> (2010, 에릭 드루커 지음, 다른 펴냄)는 아주 강렬한 작품이다. '태초에 신께서 말씀과 뉴욕을 창조하셨다… 보시니 모든 것이 쓸모없더라'라는 표지의 시니컬한 문구만큼이나 미국의 심장인 뉴욕을 통해 미국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드러내보이고 있다. 흑백 대비의 강렬함을 통해서 말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집'은 술에 취해 TV를 켠 채 잠들었던 남자가 아침이 되어 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자와 가방을 챙겨서 출근하는 남자는 지하철에서 내려 걸음도 씩씩하게 달려 올라가지만, 공장 문은 '폐쇄' 쪽지가 붙은 채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다. 삽시간에 고개를 떨군 남자는 술집과 창가와 구걸과 도둑질을 거쳐 집에 돌아오지만, 집 문에도 '폐쇄' 표지가 떡 하니 붙어 있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또다시 방랑과 매매춘과 절도와 감옥 생활과 방랑을 거치면서 점점 작아져 마침내 소멸되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인 'L'은 지하철 안에서 신비한 세계를 만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클라이브 바커의 책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는 지하철 종점에서 식인을 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에릭 드루커의 'L'은 아프리카 혹은 인디언을 연상케 하는 생명과 화합의 존재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그 환상은 사나운 개를 앞세운 경찰이 등장하면서 끝나고, 웅크린 채 맨바닥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지나 계단 위로 길게 드리운 남자의 그림자에서 한쪽 팔이 사라져 버린 듯한 허전함이 느껴진다.

    마지막 이야기이자 책 제목과 같은 '대홍수'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등장해서 현실과 작품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우산 없이 길을 나섰다가 비를 맞게 된 화가는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걷다가 우산 하나를 사서 쓰고 집으로 돌아온다. 고양이 한 마리와 이젤 하나로 꽉 찰 듯한 좁디 좁은 집에는 비가 샌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집 안에서도 우산을 써야 하는 현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화가의 그림 안에서는 점점 작아져가는 빙산 위에서 표류하다가 동료들에게 구조된 에스키모 사냥꾼의 이야기 다음으로 현실과 마찬가지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저 멀리 해가 빛나고 있지만 뉴욕을 뒤덮은 것은 무겁디 무거운 비구름뿐. 거센 비바람을 타고 우산째 날아간 그림 속 주인공은 롤러코스터를 타고서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무기를 들고 행진하는 표정 없는 군인들과, 엉클 샘, 자유의 여신상, 배트맨, 피에로, 닌자 거북이, 뽀빠이 등 미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들이 가장행렬을 하고 있다. 호객꾼을 따라 들어간 마술의 집 안에서는 머리 둘 달린 남자, 칼을 삼키는 여자, 엘리펀트 맨 등 기이한 인물들이 눈을 끄는데, 여러 사람의 각광을 받고 있는 한 근육질 남자에게 새겨진 그림에 주목하게 된다. 미국 연방의 상징인 독수리와 더불어 미국을 '개척'한 사람들이 타고 온 메이플라워호는 인디언과 흑인 노예에 대한 착취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삼각형 눈 아래 약육강식의 표식이 새겨진다. 놀이공원을 떠나는 그의 눈 앞에는 공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그려지고, 무자비한 탄압 후 비를 부르는 주동자의 손길 아래 뉴욕을 침수시키는 대홍수가 펼쳐진다.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는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홍수가 벌어져 있고, 살아남은 것은 노아의 방주에 기적적으로 올라탄 화가의 고양이 뿐이다.

    만화는 주로 어린이들의 동심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다른출판사에서 펴낸 다른만화 시리즈에는 사회 고발적인 내용의 만화들이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이전에 만난 <바시르와 왈츠를> (2009, 아리 폴먼, 데이비드 폴론스키 지음)에서는 지금껏 익숙했던 이스라엘 관점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내용이 나왔고, <나는 왜 저항하는가> (2010, 세스 토보크먼 지음)는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는 슬로건 아래 현실과 행동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 <대홍수>에서는 <나는 왜 저항하는가>처럼 선동적이지는 않지만, 미국의 현실의 어두움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겉으로 드러난 문화와 평화와 민주주의 국가의 형님으로서의 미국이 아니라 알콜과 마약중독자, 노숙자의 나라인 동시에 무소불위의 권력으로서의 미국이 나타난다. 이런 미국에도 노아의 방주가 허락되고, 마침내 무지개가 뜰 것인가.


    책 말미에 수록된 시인 앨런 긴스버그의 에릭 드루커 소개와 더불어, 크리스 레이니어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있겠다.

    묵직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환상과 실제의 세계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 긁어내는 작업을 통한 진실과 생명력을 담고자
    술패랭이 | 2010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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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긁어내는 작업을 통한 진실과 생명력을 담고자] 만화책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좀처럼 만화책을 읽기 않는 내가 다른의 를 통해서 사회문제의식을 담은 만화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릭 드루커라...
    [긁어내는 작업을 통한 진실과 생명력을 담고자]





    만화책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좀처럼 만화책을 읽기 않는 내가 다른의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통해서 사회문제의식을 담은 만화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릭 드루커라는 인물은 생소하지만 그의 그림은 첫대만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되도록 강렬하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단번에 휘리릭 넘길 정도의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사회 현상에 무딘 나로써는 오래도록 한 그림을 봐야 하거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 검은색과 흰색만이 존재하는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는 판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기법은 스크래치보드로 판에 검은 잉크를 발라 면도날로 긁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이 모두 칼에 베일듯이 날카로웠나 보다.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때문에 대홍수를 읽으면서 그림에 더 집중하게 되는가 보다. 수많은 말로 설명하거나 섬세한 그림으로 여백을 채워넣기 보다는 필요한 최소한을 사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작가가 독자들을 향해 던지는 가장 걸러낸 언어가 된다.



    <집>이라는 작품에서 집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어느날 해고 통지를 받고 집에서조차 쫓겨나게 될 위기에 처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리로 나서고 싶어서 나서는 이들은 없다. 작품 속의 그도 집에서 거리로 내몰리는 과정, 하나의 인격에서 외면당하는 거리의 사람이 되는 과정이 큰 컷의 그림에서 점차 소멸되어가는 작은 컷의 무수한 그림 속에 파묻힌다. 대중 속에 소외되어가는 약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긴 작품이었다.



    두번째 작품인 은 처음에는 그 경계를 모호하게 지나친 작품이다. 알아채지 못하고 이야기가 계속 흐르는 줄 알았다. 거리의 부랑자가 된 인물이 자하철을 타고 가면서 꿈꾸는 환상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었다. 구지 나누지 않아도 하나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세번째 작품인 <대홍수>역시 전작의 마지막 지하철의 장면과 연결되듯이 시작된다. 지하보도에서 쏟아지는 빗속의 지상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딪는 남자의 모습은 도시 사회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겼다. 빗속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우산 속에서 비를 피하게할 우산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무심히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군중의 고독이 더 짙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그림 속에 푸른 빛이 등장한다. 검은 잉크와 푸른 잉크로 그가 그려가는 만화 속의 세상이 어느세 현실과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그려져간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세상은 탄압하는 사람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문명의 이기와 부질없는 욕심을 잠재우는 모든 세상이 물 속에 잠기고서야 고요가 찾아온다. 그것이 문명과 사회에 대한 외면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작인지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마침 작품 해설과 작가에 대한 소개, 작가와의 인터뷰 글이 있어서 낯설고 생소한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분명한 것은 가진 자가 아닌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같은 것으로 보고 단지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생명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더 이상이하로도 꾸며지지 않은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과정인 듯하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강렬한 그림과 메시지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현상이 어떤 것인가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 같다. 물론 미국의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 통하는 바가 있으니 말이다.
  • 무언의 거대한 함성.
    살리에르 | 2010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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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읽기 쉽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멍하게 무슨뜻일까를 고민했었다. 흔하디 흔한 그림책이 아니다. 대사 한마디 없는 그냥 그림의 '연속'일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만 마디의 말이 숨겨져있다. 그림을 또렷히...
    솔직히 읽기 쉽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멍하게 무슨뜻일까를 고민했었다.
    흔하디 흔한 그림책이 아니다. 대사 한마디 없는 그냥 그림의 '연속'일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만 마디의 말이 숨겨져있다. 그림을 또렷히 보면서 음미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말들이 보일것이다. 이 책은 분명, 즐거우라고 만든 책이 아니다.
    괴로우라고, 좀 생각하라고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현실..진실..그것이 그림에 오롯이 그려져있다. 우리가 아주 맛있는 것을 먹거나 아주 멋진 풍경을 볼때 말이 필요없다 말을 할수가 없다란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정도로 뜻이 통한다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히려 대사가 있는것이 사족일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그림을 수백 수천장 그려서 그것을 그대로 연결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명화 수백장을 보는것이다.

    이 책의 그림은 판에 잉크를 바른뒤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알듯 모를듯한게 어릴때 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비슷한걸 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림을 그리고 파내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는데 그 볼품없던 작업도 그리 힘들었는데 이 책의 그림을 보니 상상이 안간다. 아주 세밀하게 그린것은 아니지만 선들이 정확하고 참으로 사실주의적인 스타일로 그린것이 더욱 인상이 깊다.

    그래서 그림 한컷 한컷이 하나의 예술작품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원본은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사들여서 전시를 한다고 한다. 후대를 위한 살아있는 교육이 될것이다.

    내용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첫번째인 '집'은 한 평범한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노숙자의 처지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뭐 내용이 깜짝 놀랄일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사회안정망이 불안한 우리나라로서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신분이 불안정하고 결국 집도 잃은채 노숙자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두번째 작품인 'L'은 한 남자가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서면 원시의 춤판으로 변하는 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예술적인 감정이 원시인들과 크게 다른건 아니란걸 표현한다고 하는데 사실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현 수단이 더 풍부해졌을뿐.
    하지만 그 환상여행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온 순간의 그 씁쓸함이란. 어쩌면 그런 환상을 꿈꾸기에 이 힘든 현실을 헤쳐나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번째 작품인 '대홍수'는 말그대로 대홍수가 나게 되는 장면을 그렸다. 지하철에서 나온 어떤 남자는 비를 피할 도리가 없는데 한 현자가 우산을 씌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우,에스키모,물에 잠긴 뉴욕등의 모습에서 모든것이 끝났나 싶다가 마지막에 현장에게 고양이가 구출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소외되고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주된 주인공으로 삼은 이 그림들은 꼭 미국만이 아니라 현대의 어느나라 도시민에게도 다 해당되지싶다.

    나같이 그림 한번보고 멍해진 사람들을 위해서 끝에 길다란 '글'로 해설과 추천글, 지은이와의 인터뷰를 실은것이 좋다. 작품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었다.

    말랑말랑하고 쉽고 재미난 그림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딱딱하고 멍해지지만 뭔가 탁 머리를 깨게 해주는 그림책을 보는것도 좋을꺼 같다. 맛난것만 먹고 편식하면 제대로 크지 못하듯이 이런 책도 읽어줘야 좀 덜 바보가 될듯하다.



  • 예술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책
    stella09 | 2010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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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항상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진실을 말하기도 하고, 시대를 깨우려 하기도 하며, 나아가 예언이나 묵시까지 담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예술로 넘어오면 좀 더 ...
    예술은 항상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진실을 말하기도 하고, 시대를 깨우려 하기도 하며, 나아가 예언이나 묵시까지 담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예술로 넘어오면 좀 더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되어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바로 나에겐 이 책이 그랬다.

    너무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해서 처음엔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확실히 본 작품은 내가 익숙히 봐온 것들이 아니다. 거칠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또한 흑백톤을 주로 사용해 어찌보면 판화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목판화도 공부를 했으며, 더 정확히는 스크래치보드 작업이란다. 그것은, 판에 잉크를 바른 뒤에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 소개된 3개의 독립된 만화(딱히 만화라고 하기에도 좀 뭐하다)를 통해 인간 소외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직시하려 하는 것 같다.제일 첫번째 소개된 <집>은, 서서히 고통스럽게 부랑자가 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남자를 통해, 세상에소 쫓겨난 사람들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두번째로 소개된 <L>은, 지하철 승강장이 원시의 춤판으로 변하고, 한동안 키스 헤링과 그라피티 기법을 보는 것 같은 표현이 이어지다, 현실로 돌아오면 경찰견과 경찰이 나오고 뭉둥이를 휘두르며 과잉진압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것은 아무런 방어 수단도 없는 군중들을 덮친 경찰관의 지배와 무능함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심심찮게 경찰의 무능함과 태만함이 도마에 오르곤 하는데, 그것은 어찌보면 미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코스모폴리탄의 나라로 대표되는 미국이 이 정도라면 여타의 다른 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또 어찌보면 이 작품은 어찌보면 인간을 획일적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전체주의와 그 모순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홍수>는 얼핏 성경의 노아시대를 작품속에 투영하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성경의 대홍수의 작가 나름의 재해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전쟁과 폭력, 정서적 고립과 소통의 부재 등을 다루려 했던 것 같다. 사실 원래 성경에 나온 대홍수는 하나님 대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으며, 인간의 좋을대로 사는 것에 대한 심판이다. 그 시대라고 왜 착하게 사는 사람이 없었을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물로서 심판하셨다고 하면 그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방주를 지어 대홍수로부터 보호받은 건 그가 착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홍수로 부터 보호를 받은 것이다. 여기서 노아가 하나님을 알았다는 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언에 늘 귀를 기울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즉 미래를 내다보는 눈과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는 말이다. 그런 그를 오늘 날에 대입을 시켜보면, 오늘 날의 세대는 예언이 없는 그저 물질적이고 찰라적인 것에 만족하는 것을 개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업주의가 결국 인간 소외와 문제를 낳았다고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려진 노아와 성경의 노아는 조금 다르게 보여지기도 한다. 그냥 그 대상이 무엇됐든 이제 물질적이고 탐욕적인 것에서 마음을 돌이켜 영적인 것에 눈을 뜨라는 것만이 암시되어 있는 것 같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의미에서 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난 이런 작가의 관점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건 그저 작가가 보여주고 생각하는 전부를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해석도 그의 몫이고, 창작도 그의 몫일뿐이다.그러므로 이 작품은 정말 예언적이냐라는 것에 난 좀 의문스럽다. 그냥 인간의 탐욕과 그에 대한 사회의 문제점을 깨우치게 하기 위한 작품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을 충분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면 이 작품은 나름 성공한 작품일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아도 이 작품은 이미 미국내 권위있는 여러 상을 석권한 바있다. 그림이 좀 난해한 느낌도 들지만 뒤에 나오는 해설을 꼼꼼히 읽는다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작가 인터뷰도 읽어 볼만하고.   


                           

  • 에릭 드루커라, 기억해야겠다
    봄햇살 | 2010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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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 없는 책을 좋아한다. 글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재치와 유머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에 한해서였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이 책은...

    글자 없는 책을 좋아한다. 글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재치와 유머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에 한해서였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이 책은 그야말로 글이 없는 만화책이다. 그러나 내용은 무척 무겁고 진지하며 때로는 난해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장르였건만 이건 그렇게 간단하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아주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하기 때문에(그런 장르를 더욱 좋아하건만) 세세한 이미지들을 따라가느라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솔직히 여러 곳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뒤에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가 소개, 그리고 인터뷰를 '읽고' 나머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해하는데 해설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문화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시사만화를 보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그래도 나름 의미있고 그림의 숨어 있는 뜻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던 책이다.

    세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모두 상당히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노동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평상시처럼 출근을 하지만 직장이 폐쇄되었다는 글을 본다. 힘차게 계단을 올라가던 남자는 내려올 때 어깨가 축 쳐져있다. 그리고 거리릴 배회하는 그림에서는 살짝살짝 현대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모 햄버거를 의미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직장을 잃고 술을 먹다 원망의 눈으로 독자를 쏘아본다. 그러다 결국 과일을 훔치고 지나가는 사람의 가방에서 지갑을 훔치다 감옥까지 간다. 평범했던 한 남자가 부랑자가 되는 과정을 처음에는 큼직한 그림으로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점점 작아지며 급박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사라질 때까지.

    두 번째 이야기는 환상적이다. 한순간의 꿈이라고나 할까. 지하철을 타고 조는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꿈속으로 들어간 장면에서는 다양한 동물과 사람이 나오다가 완전한 환상세계로 빠져들었을 때는 테두리가 앞의 그림과는 다르다. 해설에서는 '도시인들이 음악, 동료, 예술에 대해 원시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갈망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는데, 솔직히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그저 한 남자가 환상세계에서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경찰견 때문에 깨어났을 때의 허탈함만 확연히 느껴진다. 힘없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까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나 또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대홍수 이야기가 마지막에 펼쳐진다. 비가 오는데도 그림을 그리는 남자. 작가가 그린 그림인지 이야기속에서 화가가 그린 그림인지의 구별은 파란색 잉크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반가운 것은 여기엔 약간의 글이 있다는 것. 처음엔 둘을 구분하지 못해 약간 헷갈렸다. 그러나 의미를 파악하고 나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비가 점점 와서 화가는 급기야 우산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헌데 그림 속에서도 비가 온다. 아주 세차게. 여기서도 환상적인 모험이 펼쳐지지만 그다지 희망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고양이만 방주에 태워주고 화가는 남겨 놓았다. 물에 빠진 화가를 타고 있다 구출되는 고양이 그림이란. 그렇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거대한 홍수에 묻혔다. 방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에릭 드루커는 미국에서 굉장히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인가 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글이 없는 만화책을 보여준 것이 이런 만화를 그리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거리에서 직접 행상을 하며 경찰에게 체포되기도 했다니 그가 그리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관념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그려야겠다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다.

  • 아, 그거였구나
    아폴론 | 2010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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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없는 만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글이 없다는 게 대수인가..... 그림책 중에서도 글이 없는 것이 종종 있는데 읽기에 별 무리 없이 읽지 않았는가 싶어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처음 본 순간...

    글이 없는 만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글이 없다는 게 대수인가..... 그림책 중에서도 글이 없는 것이 종종 있는데 읽기에 별 무리 없이 읽지 않았는가 싶어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처음 본 순간 ‘어, 이게 뭐지?’ 싶으면서도 어렵다는 느낌이 확 왔다. 명확하게 의미가 와 닿지 않는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일단은 책을 재빨리 덮어두었다. 그리고 짬짬이 책을 펼쳐보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대 홍수에는 ‘집’, 'L', '대홍수‘ 세편의 단편만화가 실려 있다.
    첫 작품인 ‘집’에서 주인공이 밖으로 나가는 첫 장면을 보면 주변을 살피고 있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딱히 갈 곳은 없다. 술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어렵게 얻은 직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멀다. 마치 그의 고단한 삶을 암시하듯 말이다. 겨우 도착한 곳에서 그를 맞이하는 것은 어이없게도 공장폐쇄라는 딱지다. 일을 찾아 갈 때는 잰 거름으로 뛰어가는 듯한 풍이더니 돌아오는 길은 고개가 푹 꺾여 휘청대는 모습이다. 거리의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세상은 나와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상과 유리된 나는 몸도 지쳐있고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몸을 던져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미소며 짙은 외로움이다. 지친 몸을 뉠 곳을 찾아 집에 돌아오니 집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와 집을 비우라는 쪽지가 붙어있다. 작은 프레임 속에 많은 사람들도 한 순간 거리의 걸인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인 ‘L’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인공이 지하철을 타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표정은 하나로 통일되어있다. 마치 한 판에 넣고 찍어 놓은 듯한 표정, 바로 무표정이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주변의 사람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환상의 공간으로 접어든다. 그곳은 원시성이 살아있는 공간이며 우리의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무서운 개가 으르렁대고 몽둥이를 든 경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 번째 작품은 표제작인 ‘대홍수’다. 지하계단을 올라가니 비가 가득하다. 가득한 비 사이로 보이는 거리의 간판들은 향락이 가득하다. 비를 맞고 가는 남자에게 누군가 우산을 건넨다. 그 많던 사람들, 불야성을 이루던 향락적인 것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목발을 짚은 걸인에게 동전을 건네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천정에서는 비가 새고 그릇으로 빗물을 받아내며 그는 푸른 색 잉크를 잔뜩 묻혀 에스키모 사냥꾼이 떠다니는 얼음덩어리 위에서 표류하다 구조되었을 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그린다. 그 그림은 이전의 흑백톤이 아니라 푸른색이다. 주인공의 방에는 여전히 비가 새고 그 비는 그의 정강이까지 찬다. 그는 사내가 우산을 쓰고 외출을 하는 그림을 그린다. 거센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사내는 하늘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도착하는 곳은 거대한 놀이동산에 도착한다. 가면을 페스티벌을 따라 갔던 쇼 장에서 온몸 가득 문신을 새긴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의 몸에 새겨진 문신의 그림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그 땅에 자행되었던 약탈의 역사, 범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쇼 장 밖 현실 공간에서는 여전히 공포는 조성 되고 있음을 작가의 펜은 그리고 있다. 세 작품을 통하여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은 인간의 욕망이 머무는 곳에 나타나는 우울한 현상이다. 만화라고 우습게보았다가 허를 찔린 작품이었다.

  • 볼때마다 새롭다.
    집요한걸 | 2010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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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는 그림으로 올렸으니 모처럼 까칠한 tip. 1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지는 표지-_-차라리 작가의 느낌을 살려 흑백 표지를 했으면 더 강렬할 뻔 했다.원서표지도 감상했는데...내 취향은 원서표지...
     















     


    리뷰는 그림으로 올렸으니 모처럼


    까칠한 tip. 1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지는 표지-_-
    차라리 작가의 느낌을 살려 흑백 표지를 했으면 더 강렬할 뻔 했다.
    원서표지도 감상했는데...내 취향은 원서표지구만.


    까칠한 tip. 2
    이 책엔 페이지표시가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있기는 하지만 작품해설 부분에만 있을 뿐 그림에는 페이지표시가 없다는 것. 꼭꼭 숨어있는 L을 찾는데 잠시 애먹음. 그만큼 이 책은 꼼꼼히 보고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에. 물론 나는 지금도 많이 놓치고 있다.


    까칠한 tip. 3
    이건 까칠까지는 아니고 앞부분에 악보가 있는데 악보에 한해서는 까막눈이라 그 노래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악보의 노래를 듣고 싶다. 궁금. 


    다른만화 시리즈 04번을 달고 나온 대홍수
    확실히 기존의 만화들과는 다르다.

  • 지금 우리의 자화상 복지,빈곤,재앙,실업
    소일 | 2010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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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다. 몹시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사람이 출근을 준비한다. 그는 노동자다. 매일 몸을 놀려서 먹고 산다. 그가 어둡고 커다란 건물들로 둘러싸인 좁고 높은 골목길을 걸어 기다란 계단을 오른다. 고행...
     

    어둡다. 몹시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사람이 출근을 준비한다. 그는 노동자다. 매일 몸을 놀려서 먹고 산다. 그가 어둡고 커다란 건물들로 둘러싸인 좁고 높은 골목길을 걸어 기다란 계단을 오른다. 고행처럼 걷는 길에 부랑자, 떠돌이 개, 경찰관과 경찰견이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공장의 문은 닫혀있다. 그는 이제 밥벌이를 잃었다. 더 이상 일할 곳이 없어진 그는 더욱 어두운 눈빛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비가 내린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거리의 광고판이 지나는 이들을 유혹한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다. 그리는 만화는 현실과 뒤섞인다. 비가 쏟아지고 도시는 잠긴다. 그의 집도 잠기고 그는 물로 잠긴 도시 위를 떠돈다. 고양이와 그만 남기고 도시는 홍수로 잠긴다.




    책은 대사가 없다. 말없이 표현되는 현실은 어두운 그림체와 함께 '과연 이것이 뉴욕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 미디어 등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는 그곳과는 완전히 다른 뉴욕의 또 다른 현실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은 거칠고 어두운 그림으로 극대화된다. 거리의 부랑자, xxx로 대표되는 성 산업의 현실, 지하철의 그래피티 등은 겉으로 화려한 미국에서 현실의 이면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썩어가는....곧 겉으로도 드러날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항변이다. 누가 들을 것인가.




    이억만리 떨어진 곳에서 우린 남의 처지를 걱정할때가 아니다. 국가는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경쟁에서 뒤떨어진 루저로 취급하고 오로지 밟고 일어서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극단 이기주의를 어린시절부터 심는 곳.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1992년에 발간된 이후 현재까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레이건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겠다면서 거리로 무수한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을 때인 1980년에 작가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레이건의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되면서 지구촌 어디라도 빈부의 격차의 심화와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빈부 문제의 극단적 표현이 용산참사일 것이다. 이처럼 드루커가 그리는 뉴욕 묵시록은 비단 뉴욕, 미국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에 대한 암울한 메시지다.라고 하는 출판사의 설명은 구지 필요하지 않은 듯 하다.




    책을 펴서 읽는 순간 다가오는 충격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대홍수! - 에릭 드루커
    agnes | 2010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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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봤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글은 하나도 없고 그림만 가득. 심지어 지금 얼마나 읽었는지 알 수 있는 페이지 표시조차 없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봤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글은 하나도 없고 그림만 가득. 심지어 지금 얼마나 읽었는지 알 수 있는 페이지 표시조차 없더군요.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발상이 재미있네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글로 쓰라면 아무 것도 쓰지 못할 것 같았어요. 마음에 와닿는 것도 없고 작가가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한번 더 읽으면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번 더 읽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노숙자가 되기 까지의 과정이 '집'에 그려져 있었고 'L'에는 가장 밑바닥을 다니는 지하철에서부터 상상해낸 원시시대가 있었고, '대홍수'에서는 현대식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노숙자가 되어서 어찌되었다는 것인지, 원시시대의 본능을 표현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뉴욕에 대홍수가 날 것을 상상해서 그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온통 알쏭달쏭한 것들 뿐이더군요. 결국 책 뒤쪽의 작품 해설, 작가 소개, 작가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작가가 뭘 전달하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배경이 뉴욕이라 그곳의 현안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힘들었을까요? 만약 이 책을 한국화한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해졌습니다. 뉴욕은 노숙자가 골칫거리인 모양이네요. 산뜻하고 행복한 뉴욕의 이미지에 맞지 않은 그들의 존재가 거슬렸던 거에요.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미관상 좋지 않다고 허름한 집들을 헐어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그곳 주민들이 싸우곤 하죠.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고 정부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그 주민들이 살길은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이 책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어떤 한 가장이 가족을 데리고 여기 저기 떠돌다가 겨우겨우 허름한 지역에 자리잡게 된 과정을 그리게 되겠지요. 정부와 싸우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과정은 그릴 필요가 없겠지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직접적인 횡포가 아니라 모두가 그들처럼 될 수도 있고 이런 사람들의 모습조차 포용할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 테니까요.

      'L'은 일단 제목부터가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뒤에 작가 인터뷰를 읽고서야 이게 뉴욕 가장 밑바닥을 지나는 지하철 노선 이름이라는걸 알 수 있었어요. 가장 땅 깊숙히 지나는 지하철과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원시성을 연결시키는 작가의 센스가 놀라웠답니다. 만약에 한국식으로 이걸 표현한다면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더군요. 이런게 바로 뉴요커의 감성이라는 것일까요.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릴적 보던 전래동화책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옛날 이야기.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에게 뉴요커의 감성이 있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는 한국만의 감성이 있겠죠. 깊숙한 우물, 거기서 물을 긷고 있는 예쁘장한 여인,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빨려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고인돌 시대를 마주하는 거죠. 언제나 요조숙녀이기를 강요하는 현실과 달리 그 곳은 자유분방하기만 합니다. 차츰 그 분위기에 젖어 자유를 만끽할 때 쯤 시어머니가 우물가에서 잠든 여인을 깨우며 여인은 현실로 돌아오는거에요. 전형적으로 다소곳한 부인의 밑바닥에 잠재된 그 본능. 현재의 뉴욕에 사는 남자와 과거의 한국에 살았던 여자의 원시적 본능은 결국 같을 겁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이란 결국 한 갈래에서 퍼져나온 것이니까요.

      태초에 신께서 말씀과 뉴욕을 창조하셨다... 보시니 모든 것이 쓸모없더라 책의 표지에 있는 말입니다. 보시니 모든 것이 쓸모없는 것 같아서 대홍수를 일으켜 뉴욕을 쓸어버리셨죠. 작품 해설에서는 이 이야기가 희망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말하는데 저는 영문을 모르겠더라구요. 왜 인간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까요? 겨우 작가(이 작품에서 그림을 그리던)가 기르던 고양이만이 작가의 시체를 타고 겨우 노아의 방주에 구출이 되지만 그 방주 안에는 동물만 가득할 뿐 인간은 없습니다. 뉴욕 시가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높은 고층 빌딩의 꼭대기만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네요. 사실 작가한테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뭐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림 속에서 한참 길을 헤매다 진땀을 뺐네요.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가끔 왜 이런 그림인지를 궁금해 할 때가 있는데 공감이 됩니다. 그림책도 결코 쉬운 독서가 아니었어요. 절대로.



  • 대홍수 그래픽노블,사회문제, 에릭 드루커
    치카 | 2011년 0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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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입니다. 말은 항상 한 단계가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적 상징으로기호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판독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림은 가장 먼저 ...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입니다. 말은 항상 한 단계가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적 상징으로기호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판독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림은 가장 먼저 등장한 표기의 형태이고, 읽고 쓰기를 배우기 한참 전의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184)

    에릭 드루커의 말처럼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권의 이야기책보다 더 강렬한 것은 어린시절에 읽은 한권의 그림 동화책일지도 모르겠다. 어릴적에는 만화책에도 글자가 많이 씌여있으면 내가 볼 만화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림이 아무리 이쁘고 좋아도 제대로 들춰보지 않고 구석에 던져넣고 말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렇게 보지 않고 던져버린 책이 나중에 커서 무척 좋아하게 된 '베르사유의 장미'다. 혁명기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지만 내게는 처음으로 왕조사 중심이 아닌 역사를 보게 해 준 만화책으로 기억한다.

    어릴적부터 그림책보다는 글자만 가득한 이야기책만 읽어서 그런지 나는 그림으로만 표현된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스스로 이미지에 약하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어 더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화책을 볼때도 그림컷으로만 표현된 이야기를 놓쳐버리고는 이야기의 결과에 의아해할때도 많았다. 물론 그러한 것은 조금 더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게 되면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을 이해하는것은 느리다.
    그래서 대홍수를 펼쳤을 때 처음 느낀것은 당혹감이었다. 이 날카로운 그림들과 너무나 강렬해서 오히려 무겁고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그림들의 상징은 무엇인가...

    에릭 드루커의 작품들은 모두 판에 잉크를 바른 뒤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의 스크래치보드에 작업되었다. 그래서 다 날카롭고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외로움은 더 처절하게 다가왔고, 절망은 그 심연을 알 수 없게 깊은 어둠을 표현하고 있고, 간혹 보여주는 축제의 장면은 생동감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내용이 그가 직접 겪은 사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L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저자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뉴욕의 지하철 노선이며 뉴욕 14번가 아래로 지나가는 것임을 알았다. 다른 열차 아래로 다니는 지하 깊숙한 곳에 놓여있는 노선.
    각각의 이야기 '집'과 'L'과 '대홍수'는 여러가지의 상징과 신화, 성서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착취와 침략과 수탈과 억압과 좌절이 담겨있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있는 그대로 찍는 카메라가 있지만, 이 기계는 오로지 겉모습을 찍을 뿐입니다. 따라서 미술가의 작업 또는 시인의 작업은 겉의 층을 꿰뚫어 내면의 진실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진실은 매우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진실과 아름다움은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요...... 난 잘 모르겠지만요. 내가 진실 또는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나는 단지 여기에서 긁어낼 뿐입니다..... 긁어내서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189)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느릿느릿하지만 좀 더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그림판 하나하나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이해가 느린 나에게는 더욱더 깊은 통찰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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