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현 지음
2017-10-10
14,000원 | 348쪽 | 205*140mm
중국인 첸은 광동 요리로 유명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뛰어난 요리사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숨겨진 또 하나의 역할은 비밀자경단원. 만주로 간 첸은 관동군 사령관 모리 주변에 어슬렁거리다가 죽음에 위기에 처한다. 요리사라는 주장에 모리는 칼과 불만으로 1분 안에 요리해보라고 한다. 양념은 물론 물이나 기름도 안된다. 송이구이로 장교식당에 취직한 첸은 일본군 위안부로 있다가 도망친 길순이 숨겨준다.
한중일의 삼각구도이지만 소설의 중심은 요리와 음식이다. 전쟁을 상징하는 칼은 위로와 쾌감을 주는 혀라는 구도를 통해 하나의 소통의 순간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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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9

2부 … 183

에필로그 … 328

심사평 … 329
작가의 말 …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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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세 나라가 ‘세상에 없는 요리’로 맞서다!

7년 만의 심사위원 만장일치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흩어진 독자들을 분명 다시 모을 수 있는 작품!”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칼과 혀』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혼불문학상은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에 제정되었고, 1회 『난설헌』, 2회『프린세스 바리』, 3회 『홍도』, 4회 『비밀 정원』, 5회 『나라 없는 나라』, 6회 『고요한 밤의 눈』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혼불문학상 수상작들은 “한국문학이 아직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영역”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한편 그것을 밀도 있게 포섭해내는 역량과 기량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2017년 제7회 혼불문학상의 열기는 뜨거웠다. 총 282편으로 전해보다 응모작이 다소 늘었고, “전통이라는 거대한 뿌리 속에서 오늘날을 읽어내고 동시에 과거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면면히 계승되어온 통치성의 구조 속에서 맥락화”하는 수준 높은 작품이 다수였다. 이 가운데 “최근의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서서히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만주국”을 배경으로 “한중일의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세 나라 간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한, 그리고 그것을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유례없는 극찬을 받은 『칼과 혀』가 심사위원 전원의 흔쾌한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수상자 권정현 작가는 2002년 충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16년 단편소설 「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로 제8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중국인 요리사 첸과 관동군 사령관 모리, 조선 여인 길순, 세 사람의 시점으로 쓴 『칼과 혀』는 일제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내적으론 미의 본질, 나아가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수작이다.”(심사평 중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한중일 세 나라 인물의 탁월한 형상화!

이 소설은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붉은 땅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 세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첸은 “체구가 작고 깡마른 중국인”으로 “등은 꼽추처럼 목과 붙어 있으며 어깨는 공처럼 둥글고 배에도 살이 늘어져 있”는 볼썽사나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지만, 손에 “무수히 불과 싸운 흔적”이 남아 있는 천재 요리사이자 비밀 자경단원이다. 그가 독살하려는 자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로,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전쟁의 공포를 잊기 위해 궁극의 맛과 미륵불의 미(美)에 집착하는 유약한 겁쟁이 성격은 실제 야마다 오토조가 백만 관동군을 지휘하지 못하고 소련군에게 모두 항복시켜 칠십만 관동군을 포로로 잡히게 한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모리(야마다 오토조)는 실존인물이다. 마지막 관동군 사령관으로 역사에 기록된 그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겁쟁이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실화가 내게는 소설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때때로 오토조가 되어 생각했다. 나에게 백만의 관동군이 있다. 본토엔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황제가 항복했다. 150만 이상의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오고 그 모든 장면은 꿈처럼 아침마다 의식을 뒤흔든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주 천천히, 부관이 가져온 아침식사를 들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해보지 않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권정현 작가는 “한국문학사의 어떤 결여 혹은 빈틈”이라 할 수 있었던 이 역사적 사실을 “시대적으로 전혀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요리’라는 현대적 소재로 이야기에 녹여내 “단연 이채롭고 낯선 소설”을 써낸 것이다.

“도마 위에서 벌이는 목숨을 건 쇼를 즐기고 있다.
나는 내 칼이 재료가 아니라 그들의 심장을 구원하길 바란다.”

사령관 암살 계획을 세우고 황궁 주변을 서성거리던 첸은 헌병대 간부에게 잡힌다. 궁정 주방에서 일하기 위해 온 요리사라고 항변하는 첸 앞에 사령관 모리가 나타난다. 총살형으로 죽게 될 거라는 헌병대 간부의 위협과 달리 뜻밖에 사령관 모리는 첸이 광둥 제일의 요리사라는 걸 증명하도록 목숨을 건 불가능한 요리 시험을 내린다.

“조건이 있지. 요리 재료는 단 한 가지! 기름은 물론 어떤 양념도 사용해선 안 된다. 조리기구도 제한한다. 오로지 재료를 익힐 불과 음식을 다듬을 칼의 감각에 의지하도록. 요리 시간은 단 1분, 재료는 신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 (39쪽)

첸은 단 1분의 제한시간 동안 칼과 한몸이 되어 구운 송이버섯 요리 ‘향식(餉食)’을 만들어 대령해 죽음을 면하고 장교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첸은 점점 비밀 자경단원이 아닌 요리사로서 모리에게 궁극의 맛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런 첸의 요리에 자신도 모르게 점점 길들여져가는 모리는 군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 첸의 아내가 된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조선인 여인 길순을 궁으로 들인다. 비로소 “날카롭고도 위태”한 삼자 대결의 새 국면이 펼쳐진다.

“혀가 잘린 요리사 하나를 알고 있다. (…) 그 사내는 거의 매일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한 가지 요리를 만들어 올리지.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가장 맛있게, 자신의 존재를 요리하고 있어.” (226쪽)

동아시아적 상상력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과감하고 도발적인 소설!

한중일 각 나라를 대변하는 첸, 모리, 길순은 모두 ‘칼과 혀’와 밀착된 삶을 산다. 민족 간 싸움의 무기로서 ‘칼과 혀’로 서로를 해치려고 하지만, 각자 소중한 음식에 관한 추억―첸과 아버지의 칭탕거우러우(개고기찜), 모리와 어머니의 분고규(豊後牛, 규슈 지방의 전통 쇠고기 요리), 길순과 고향 요리 청국장―의 상징으로서 또 다른 ‘칼과 혀’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기도 한다.
“가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하나가 저 부엌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어느 부엌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린 배를 채울 무언가가 숨어 있게 마련이지.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그곳.” (230쪽)
소련군이 진군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모리는 의식을 치르듯 삼시세끼를 부지런히 먹고 마시고, 심지어 “먹는 즐거움”을 느낀다. 화덕이 있는 장교식당과 극락사의 공양간처럼 중요하게 등장하는 ‘부엌’이라는 공간은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곳이다. “천상의 향기가 풍기는 듯” 생생한 묘사로 “연이어 식탁 위에 오르는” 구운 송이버섯, 포탸오창(佛跳墻), 쉐창(血腸), 새우딤섬 요리, 홍샤오러우, 지부니(冶部煮), 문어죽, 흰 쌀죽 등 십여 가지의 다채로운 한중일 요리들이 그 부엌에서 만들어진다. ‘부엌’이라는 공간은 죽은 재료가 새로운 하나의 생명으로 거듭나 서로의 입속으로 들어가 소화되듯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한중일 “증오의 역사”에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무대이다.

“나의 하루는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난다. 먹는다는 것은 내게 잠시나마 이 전쟁과 직위를 잊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 요리가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21쪽)

허기 속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하루,
칠십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여주다

권정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교양 삼아 읽었던 『동아시아의 민족이산과 도시』 『기억 속의 만주국』 『미식 예찬』 『악마의 정원에서』 <만선일보>” 등 책과 신문 들에서 영감을 받고 참조하여 이 소설을 썼음을 밝힌다. “수고로움 속에 한 끼의 식탁이 차려지고 누군가는 허기 속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1945년 전쟁 통의 어느 하루가 2017년 오늘날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느 월요일 저녁의 봄 호수공원에서 누군가 맥주를 마시고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고 또 벤치에 혼자 앉아 숨죽여 우는 어느 여인을 보면서 문득 깨닫는다.
“작품에 대한 취재도 능력의 하나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적절히 버무리고, 그 작업과정에서 진정성을 놓치지 않는 것은 거의 천부적 자질이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만주라는 붉은 땅”에서 역사의 현재를 짚어내는 권정현 작가의 예리하고 섬세한 눈은 “한중일 민중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은밀하게, 그러나 위대하게 제시한다. 한국소설사에서 한중일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세 나라 간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한, 그리고 그것을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경우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거니와, 그런 점에서 보자면 『칼과 혀』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소설임에 틀림없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하면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 이 지구시대에 걸맞은 소설적 모험이며 동시에 한국소설 전반이 드디어 지구시대라는 새로운 영토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다.”(심사평 중에서)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내기는 끝이 났다고. 나는 무엇도 요리하지 않았고 당신은 무엇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외로웠을 뿐이라고. 나는 요리를 했고 당신은 접시를 비웠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318-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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