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이주엽 지음
2020-04-29
18,000원 | 348쪽 | 145*210mm
종합평점 : 3.7 ( 5 명)
칭기즈칸이 구축한 ‘팍스 몽골리카’(주치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 일 칸국, 대원 울루스를 아우른 대제국, ‘울루스’는 나라·백성을 뜻하는 몽골어)가 14세기 중반 이후 해체되면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에 걸쳐 명멸한 국가들을 짚어보면서 근대 중앙유라시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기술하는 책이다.
몽골제국은 1260년에 칭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대칸의 자리에 오른 시점부터 중앙집권적 제국이 아닌 4대 울루스 병립 체제를 이루었다. 몽골제국의 울루스들은 14세기 중반 전후 공통적으로 혼란기를 거치며 약화되거나 분열되었다. 하지만 15세기 초에 소멸한 일 칸국의 계승 세력을 제외하고는 17세기 말까지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서 강력한 군사·정치적 세력을 유지했으며, 특히 16세기에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몽골제국의 후예는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과 인도의 델리 술탄국에서 용병으로 활동했으며 초기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현 터키), 사파비 제국(현 이란), 청 제국의 출현과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들어가며

서장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던 몽골제국은 14세기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1. 18세기 초 유라시아 대륙의 몽골제국 후예들
2. 몽골제국 울루스 체제의 지속성
3. 몽골제국과 초기 근대 유라시아 제국들

1부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차가다이 몽골 계승국가들
1장 티무르제국: 티무르가 건설한 제2의 몽골제국
1. 티무르는 몽골인인가 투르크인인가?
2. 차가다이 몽골인 국가인 티무르제국
3. 정복자 티무르
4. 샤루흐 지배하의 티무르제국
5. 후기 티무르제국

2장 무굴제국: 인도의 ‘몽골’제국
1. 무굴제국은 왜 인도의 ‘몽골’제국인가?
2. 바부르와 무굴제국의 건설
3. 무굴제국의 전성기
4. 무굴제국의 쇠퇴와 멸망

3장 모굴 칸국: 동차가다이 울루스 국가
1. 모굴인은 몽골인인가?
2. 투글룩 테무르와 모굴 칸국의 수립
3. 15세기의 모굴 칸국: 티무르제국과의 세력 균형
4. 16세기 이후의 모굴 칸국: 동투르키스탄의 지배
5. 모굴 칸국의 멸망

2부 중동과 서아시아의 일 칸국 후예들
4장 오스만제국: 몽골 세계에서 탄생한 투르크제국
1. 일 칸국의 제후국이었던 초기 오스만 왕조
2. 오스만제국 내 칭기스 왕조의 위상

5장 잘라이르 왕조: 중동의 잊힌 몽골제국 계승국가
1. 몽골제국의 중동 지배는 언제까지 지속되었는가?
2. 잘라이르 왕조의 시조 샤이흐 하산
3. 샤이흐 우와이스와 잘라이르 왕조의 전성기
4. 술탄 아흐마드와 티무르의 대결

3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주치 울루스 계승국가들
6장 모스크바 대공국: 주치 울루스를 계승한 초기 러시아제국
1. 몽골 지배가 남긴 긍정적 유산
2. 팍스 몽골리카와 러시아의 경제 발전
3. 모스크바 공국의 기원: 주치 울루스의 조세 징수 국가
4. 몽골제국 군사·정치 제도의 도입
5. 주치 울루스 출신의 용병들
6. 몽골 혈통의 러시아 군주들: 이반 4세, 시메온, 보리스 고두노프, 표트르 대제

7장 크림 칸국: 16세기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으로 군림한 주치 울루스 계승국가
1. 몽골제국의 잊힌 계승국가
2. 크림 칸국의 건국
3. 16세기의 크림 칸국: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
4. 17세기의 크림 칸국
5. 크림 칸국의 쇠퇴와 멸망

8장 카자흐 칸국: 유라시아 초원의 마지막 칭기스 왕조 국가
1. 몽골제국의 산물인 카자흐인
2. 카자흐 칸국의 기원: 주치 울루스의 좌익
3. 주치 울루스의 분열과 우루스 왕조의 출현
4. 카자흐 칸국의 수립
5. 카자흐 칸국의 발전과 전성기
6. 카자흐 칸국의 쇠퇴와 멸망

9장 우즈벡 칸국: 중앙아시아에서 칭기스 왕조를 부흥시킨 몽골제국 계승국가
1. 주치 울루스의 후예인 우즈벡인
2. 마와라안나흐르(트란스옥시아나)의 우즈벡 칸국
3. 페르가나 지방의 우즈벡 칸국: 코칸드 칸국
4. 히바의 우즈벡 칸국

4부 동내륙아시아의 몽골제국 후예들
10장 청제국: 몽골인의 협력으로 건설된 만주인의 제국
1. 만주인의 비非중국인 정체성
2. 청제국의 건설과 경영에 이바지한 몽골인
3. 몽골의 보르지긴 가문과 만주의 아이신 지오로 가문

11장 북원: 대원제국의 후예
1. 북원北元은 몽골제국의 유일한 계승국가인가?
2. 1368년 대도의 함락과 북원 시대의 개막
3. 에센 타이시와 오이라트제국의 건설
4. 다얀 칸과 칭기스 왕조의 부흥
5. 알탄 칸과 16세기 몽골 울루스의 전성기
6. 릭단 칸: 북원의 마지막 대칸
7. 몽골의 할하 투멘: 현대 몽골의 전신

나오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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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

대원 울루스, 북원과 청제국으로 이어지다
14세기 중엽 내분과 전염병 등으로 인해 쇠약해진 대원 울루스는 1368년 수도 대도(현 북경)가 명나라에 함락된 이후 그 영역이 몽골 초원으로 축소되었다. 원의 후예들은 오이라트 집단에 밀려 세력이 더욱 위축되었으나 쿠빌라이 칸의 후손인 다얀 칸과 그의 손자 알탄 칸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쿠빌라이 칸의 후예들은 만주인의 청제국에 병합당하는 17세기 말까지 몽골 초원에서 정권을 유지했다.
북원 몽골은 청제국의 부상에도 이바지했다. 청제국에 병합된 몽골인들은 청의 주력 군사 조직인 팔기병의 한 축을 이루며 만주인의 중국 정복과 경영에 기여했다. 청의 시조 누르하치가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창제한 만주 문자는 몽골 문자를 차용·발전시킨 것이었다. 또한 청 황실은 몽골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몽골 귀족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실제로 순치제 이후의 청 황제들은 강희제를 포함하여 몽골인의 피를 이어받은 몽골제국의 후예들이었다.

일 칸국, 잊힌 잘라이르 왕조와 몽골의 영향을 받은 오스만제국
번영기를 누리던 일 칸국에서는 토가 테무르 칸이 암살된 후 여러 정권으로 분열되었다. 그렇지만 일 칸국의 영역에서 몽골인의 지배는 잘라이르 왕조를 통해 15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일 칸국의 중심부였던 아제르바이잔(이란 서북부 지역과 현 아제르바이잔을 포괄하는 지역)과 이라크를 지배한 몽골계 잘라이르 왕조는 샤이흐 우와이스의 치세에 전성기를 누리며 일 칸국의 옛 제후국가들에 종주권을 행사했다. 잘라이르 왕조는 차가다이 울루스의 티무르의 침공을 받아 쇠망할 때까지 일 칸국의 옛 영역에서 맹주의 지위를 지켰다.
일부 몽골제국사 연구자들은 투르크멘인이 주축이 되어 세운 오스만제국을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로 보기도 한다. 초기 오스만제국의 사료들 중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인 《오스만 가문의 역사》는 오스만 왕조의 건국 집단이 투르크멘인과 몽골인의 혼합 집단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스만제국은 몽골제국을 모방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술레이만을 포함한 몇몇 오스만 황제들은 칭기스 칸의 법인 ‘자삭’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법전을 편찬했다. 일부 오스만제국의 문인들은 오스만 가문이 칭기스 가문과 혈연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오스만제국의 정치·군사 엘리트 사이에선 오스만 왕조가 단절될 경우 크림 칸국의 칭기스 왕조가 제위를 이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주치 울루스, 여러 칸국으로 나뉘고 초기 러시아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다
주치 울루스는 티무르의 침공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후에 여러 계승국가들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결국 주치 울루스의 우익은 울루 오르다, 크림 칸국,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카시모프 칸국 등으로 나뉘었다. 이들 중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흑해 초원에서 코카서스산맥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크림 칸국은 주치의 후손인 멩글리 기레이 칸과 그의 아들 메흐메트 기레이 칸의 통치기를 거치며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크림 칸국은 주변 칸국을 정복했고, 이반 4세하에 러시아(모스크바 대공국)가 강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등 러시아에도 공세를 취해나갔다. 1655년에 발발한 제2차 북방전쟁에도 폴란드의 동맹국으로 참전해 스웨덴군,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군, 헝가리군 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17세기 중반에도 동유럽에서 군사강국으로 군림했다.
주치 울루스의 좌익은 16세기 초 카자흐 칸국과 우즈벡 칸국으로 나뉘었다. 무함마드 시바니 칸이 서투르키스탄을 정복하고 세운 우즈벡 칸국은 압둘라 칸의 치세에 무굴제국과 사파비제국을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16세기 후반기에 동이슬람 세계의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카자흐 칸국은 카심 칸의 통치기를 거치며 중앙유라시아 초원에서 가장 거대한 유목 국가로 부상했다. 이후 카자흐 칸국은 19세기 초중반까지 존속하며 마지막으로 멸망한 칭기스 왕조 국가가 되었다.
16세기 이전의 러시아도 몽골제국 계승국가라는 평을 듣는다. 이는 분열되어 있던 러시아가 주치 울루스를 추종한 모스크바 대공국에 의해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주치 울루스로부터 모든 러시아 공국에 대한 조세 징수권을 위임받은 후 부를 축적하며 러시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와 더불어 모스크바 대공국은 기병 전술과 역참제 등의 몽골 군사·행정 제도를 받아들이며 국가시스템을 정비했다. 또한 주치 울루스가 분열된 이후에는 유민들을 받아들여 군사력을 강화했다. 이들을 이끈 주치 울루스 출신의 칭기스 일족과 군 지휘관들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지배층에 편입되어 영토 확장과 방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칭기스 일족은 러시아 사회에서 19세기까지도 귀족의 지위를 누렸는데 그중 한 명인 시메온 벡불라토비치는 1575년에 이반 4세에 의해 러시아의 수반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아울러 이반 4세와 표트르 대제는 모계 선조를 통해 몽골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차가다이 울루스, 티무르제국과 모굴 칸국으로 갈라지고, 무굴제국을 낳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14세기 초중반 케벡 칸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전성기 이후에 혼란기를 겪은 일 칸국과 주치 울루스처럼 차가다이 울루스도 14세기 중반 동서 울루스로 분열되었다. 동투르키스탄과 천산산맥 북방의 초원 지역을 지배한 동차가다이 진영의 모굴 칸국은 16세기 들어와서는 카자흐 칸국과 우즈벡 칸국의 공세에 밀려 그 영역이 신장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 차가다이 칸의 후예들은 17세기 말 오이라트인의 준가르제국에 정복될 때까지 동투르키스탄에서 정권을 유지했다.
서투르키스탄을 지배한 서차가다이 울루스에선 칭기스 일족의 권력이 약화되고 몽골계 부족장들이 실권을 장악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몽골계 바를라스 부의 티무르였다. 그는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쳐 차가다이 울루스, 주치 울루스, 잘라이르 왕조를 통합하며 몽골제국의 서반부를 재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더 나아가 델리 술탄국, 맘룩 술탄국, 오스만제국까지 차례로 제압하고 러시아 남부에서 북인도와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제2의 몽골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의 사후 티무르제국은 그 영역이 중앙아시아의 정주 지역으로 축소되었지만 티무르의 후예들은 서구 학자들이 ‘티무르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문예 전성기를 이끌었다.
티무르와 칭기스 칸의 후손인 바부르는 티무르제국이 16세기 초 우즈벡 칸국에 패망한 뒤 티무르제국의 유민들을 이끌고 북인도에 무굴제국을 세웠다. ‘무굴’제국이란 명칭은 16~17세기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그 기원은 이들이 접한 인도 토착민들이 무굴제국의 지배 집단을 무굴인, 즉 몽골인이라 부른 데 있다. 무굴제국의 티무르 일족 또한 스스로를 몽골인의 후예라고 여겼고, 무굴 왕조를 ‘티무르’ 혹은 ‘차가다이’ 왕조라고 불렀다. 무굴제국은 악바르의 치세에 북인도 전역을 정복하며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 인도대륙의 남부를 정복한 아우랑제브의 치세를 거치며 18세기 초까지 오랜 전성기를 누렸다.
  • 몽골 제국의 몰락 이후 몽골 제국의 후예, 모스크바 대공국, 오스만 제국,
    불꽃의노래 | 2020년 07월 26일
    몽골 제국의 몰락   “동으로는 태평양에서 서로는 지중해, 남으로는 인도양에서 북으로는 바렌츠해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는 세계 제국”[p. 19]을 이루었던 몽골 제국은 칭기스 칸의 손자인 4대 대칸, 몽케 칸[夢哥汗, 재위 1251~1259] 사후(死後) 분열되기 시작했다. 기존 초원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아라크부카[阿里不哥, 재위 1260~1264]와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통해 정주지대에 더욱 초점을 맞춘 쿠빌라이[忽必烈, 재위 1260~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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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제국의 몰락

     

    “동으로는 태평양에서 서로는 지중해, 남으로는 인도양에서 북으로는 바렌츠해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는 세계 제국”[p. 19]을 이루었던 몽골 제국은 칭기스 칸의 손자인 4대 대칸, 몽케 칸[夢哥汗, 재위 1251~1259] 사후(死後) 분열되기 시작했다. 기존 초원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아라크부카[阿里不哥, 재위 1260~1264]와 한화정책(漢化政策)을 통해 정주지대에 더욱 초점을 맞춘 쿠빌라이[忽必烈, 재위 1260~1294]의 내전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쿠빌라이가 내전에서 승리하여 몽골 제국의 5대 대칸이 되었으나 몽골 초원과 중국, 티베트를 지배한 대원 울루스[=원(元)제국]으로 그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다시 말하면, 1260년 이후 몽골 제국은 하나의 중앙집권적 제국에서 4개의 칸국(Khanate) 혹은 울루스(Ulus) 병립 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유럽의 봉건제와 유사한, 그러나 혈연을 기초로 한 느슨한 연합체제의 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김호동 교수가 “원조의 황제는 표면상으로 몽고제국 전체의 군주로 간주되었으며 그러한 외형적인 제국의 연대성을 보존(하기 위해), 한국(汗國) 상호간의 빈번한 사신교환, 혹은 서방 3한국의 왕공들이 중국에 갖고 있던 봉읍(封邑), 즉 투하령(投下領)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고 황제의 대관을 통해 세수를 받아가도록 한 것은 원조가 실질적으로 분열된 몽고제국에 상징적인 연대성을 부여하고 원의 황제가 제국질서의 정점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1)” [pp. 279~280]라고 말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몽골제국의 최대 판도

     

    출처: 두산백과사전[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9636]

     

     

    몽골 제국의 후예들

     

    먼저 칭기스 칸의 장남 주치[朮赤]의 울루스[=킵착 칸국/금장 칸국(金帳汗國)이하 ‘킵착 칸국’]은 킵착 초원[흑해 북안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초원 지역]과 러시아 지역을 영역으로 한다. 크게 주치의 장남 오르다의 백장 칸국(白帳汗國)과 차남 바투의 청장 칸국(靑帳汗國)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티무르의 침공으로 큰 타격을 입고 분열되었다.  저자는 이 지역의 계승국가로 우익[흑해 초원과 볼가-우랄 지역]의 모스크바 대공국과 크림 칸국, 좌익[카자흐스탄 지역]의 카자흐 칸국과 우즈벡 칸국을 꼽았다.

    주치의 열 셋째 아들 토가 테무르의 후손들이 건국한 크림 칸국이나 카자흐 칸국, 다섯째 아들 시반의 후손이 건국한 우즈벡 칸국은 몽골 제국의 계승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킵착 칸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여기는 모스크바 대공국을 몽골 제국의 후예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비록 주치 울루스의 비호가 있었고, 몽골 제국의 군사, 정치 제도를 도입했으며, 일부 차르의 모계가 몽골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몽골 제국의 후예라고 할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조건으로 몽골 제국의 후예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오히려 쿠릴타이에 참석할 권한을 가지고 있던 고려가 더 명백하게 몽골 제국의 후예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차남 차가타이[察合台]의 울루스는 동서 투르키스탄과 천산산맥 북방의 초원 지역을 영역으로 한다. 1340년대 말 각각 모굴리스탄과 마와라안나흐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동서 차가타이 진영으로 분열되었고, 이들은 동차가타이는 모굴 칸국으로, 서차카타이는 티무르 제국으로 발전했다.

    저자는 이 지역의 계승국가로 티무르 베그 구르카니(재위 1370~1405)가 세운 티무르 제국, 티무르의 5세손인 바부르(재위 1526~1530)가 세운 무굴 제국모굴 칸국을 꼽았다.

     

    3남 오고타이[窩闊台, 재위 1229~1241]의 울루스는 50여 년간 집요하게 쿠빌라이를 괴롭혔던 카이두 [Khaidu, 재위 1248~1301]에 의해 실질적으로 세워졌다. 그의 사후 장남인 차파르가 칸이 되었으나 1306년 원나라와 차가타이 칸국의 공격에 항복하고 그 영토는 두 나라에 의해 분할되었다.

     

    막내 툴루이[拖雷] 가문은 2남 쿠빌라이의 대원 울루스와 3남 홀라구[旭烈兀, 재위 1218~1265]의 울루스로 나뉜다. 홀라구의 울루스 혹은 일 칸국(이하 ‘일 칸국’)의 영역은 아나톨리아(현 터키 반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서아시아 일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시리아 지역에서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는 킵착 칸국과 이란의 호라산 지역에서는 차가타이의 울루스와 싸워야 했다. 차가타이의 울루스를 충동질 한 것이 오고타이의 울루스를 이끈 카이두 [Khaidu]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방이 적(敵)이었다.

    9대 칸 아부사이드[Abu Sa’id, 재위 1316~1335]이 후사 없이 사망한 후, 칭기스 칸의 자손인 황금씨족을 허수아비 칸으로 내세운 지방세력에 의해 일 칸국의 명맥은 이어가나 실질적으로 멸망했다고 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일 칸국은 1335년 이후 분열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었지 국가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었다. 1335년 이후에도 일 칸국의 몽골인 권세가들이 각지에서 할거하며 각자 다른 칭기스 일족을 칸으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p.125] 즉, “이라크를 거점으로 삼은 샤이흐 하산 잘라이르의 가문[잘라아르(Jalayirids) 왕조, 1336~1432], 아제르바이잔과 아나톨리아 지방을 차지한 샤이흐 하산 초판의 가문[초판(Chūpānids) 왕조, 1335~1357], 호라산을 지배한 토가 테무르(Togha Temür, 재위 1335~1353)가 대립” [pp. 126~127]했던 것이다. 이들의 다툼은 토가 테무르 칸이 암살[1353]되고, 초판 왕조가 킵착 칸국에 멸망[1357]되어 살아남은 잘라이르 왕조가 승자가 됨으로써 끝났다. 잘라이르 2대 술탄인 샤이흐 우와이스[재위 1356~1374]는 위대한 정복군주로 아나톨리아 동부의 카라 코윤루[Kara Koyunlu, 흑양(黑羊) 왕조, 1375~1468], 코카서스 지방의 쉬르반 왕국, 이란 남중부의 아랍계 무자파르 왕조를 복속시켰다. 뿐만 아니라 무역과 상업활동, 문예 및 건축 활동도 장려해서 잘라이르 왕조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의 아들 대에 형제간의 다툼과 티무르 제국의 침략으로 급속히 쇠퇴하여 제후국이었던 카라 코윤루[Kara Koyunlu, 흑양(黑羊) 왕조, 1375~1468]에 흡수되었다.

     

    저자는 이 지역의 계승자로 오스만 제국과 잘라이르 왕조를 꼽는다. 잘라이르 왕조는 이해가 되지만 왜 오스만 제국을 몽골 제국의 계승자라고 말할까?

    김호동 교수가 “모스크바 공국이나 오스만 제국의 출현 혹은 티무르 제국과 무갈 제국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 몽고인의 지배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2)”라고 언급한 것처럼 몽골 제국의 몰락 이후를 다루는데 모스크바 공국이나 오스만 제국을 얘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 모스크바 공국이나 오스만 제국을 몽골 제국의 후예로 간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스만 제국 내에는 칭기스 일족을 오스만 왕조의 동족 혹은 대안으로까지 여기는 인식이 존재” [p. 118]했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층 내부에서는 오스만 왕조가 단절될 경우 크림 칸국의 칭기스 왕조가 제위를 이어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했다. (심지어 오스만 2세[재위 1618~1622)]가 반란으로 시해되었을 때) 재상 다부드 파샤는 오스만 왕족들을 살해하고 크림 칸국의 칭기스 일족을 술탄으로 추대하자고 주장” [p. 117]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티모시 메이는 이와 반대로 “오스만은 스스로 칭기스 가문 출신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원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코 칸이라는 칭호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슬람의 칭호인 술탄을 선택했다. 그들은 급속하게 성장하여 곧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했는데, 독자적인 정치체로서 더 이상 몽골의 계승자로 간주되기를 거부했다3)”고 주장한다.

    게다가 저자는 “몽골제국 후예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티무르 제국의 일원들은 (오스만 제국을 세운) 투르크멘 유목민을 동족으로 보지 않았을뿐더러 이들을 멸시하거나 적대시했다” [p. 57]고 얘기했다.

    물론 내가 어느 쪽이 맞는다고 판결 내릴 지식은 없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점을 감안하면 오스만 제국을 몽골 제국의 후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몽골 제국에 두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몽골의 계승자 혹은 후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낯선 몽골 제국의 후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모스크바 대공국과 오스만 제국을 몽골 제국의 계승자로 본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아, 이 책의 장점을 흐린 듯 해서 아쉬웠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07.28 수정] "여섯째 아들 시반"을 "다섯째 아들 시반"으로 수정 

     


    1) 김호동, “蒙古帝國의 形成과 展開”, <강좌 중국사 3>, (지식산업사, 1989), pp. 279~280

    2) 김호동, 앞의 글, p. 242

    3) 티모시 메이, <칭기스의 교환>, 권용철 옮김, (사계절, 2020), p.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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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제국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 몽골제국,울루스,몽골제국의멸망후,지엽적인정보획득,새로운몽골제국
    행인 | 2020년 07월 27일
    13세기 아시아 극동에서 크림반도까지 거대한 영토의 제국을 형성한 몽골 제국은 14세기에 무너졌다. 이 제국의 무너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나라의 멸망이다. 대원 시대에 몽골은 크게 네 개의 칸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저자는 칸국이란 단어보다 울루스란 몽골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대원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 주치 울루스, 일 칸국 등이다. 이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들은 14세기 중반 전후 공통적으로 혼란기를 거치면서 악화되거나 분열되었다고 한다. 일 칸국은 15세기 초에 소멸했다. 일 칸국은 현재의 이란, 이라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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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세기 아시아 극동에서 크림반도까지 거대한 영토의 제국을 형성한 몽골 제국은 14세기에 무너졌다. 이 제국의 무너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나라의 멸망이다. 대원 시대에 몽골은 크게 네 개의 칸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저자는 칸국이란 단어보다 울루스란 몽골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대원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 주치 울루스, 일 칸국 등이다. 이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들은 14세기 중반 전후 공통적으로 혼란기를 거치면서 악화되거나 분열되었다고 한다. 일 칸국은 15세기 초에 소멸했다. 일 칸국은 현재의 이란, 이라크에 걸쳐져 있던 나라였다. 그 외 다른 나라들은 무너지더라도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분화 과정을 지역별, 시대별로 나눠 서술했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나는 원 나라만 늘 몽골제국의 후손으로 인식했다. 무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명 나라의 주적은 북원 세력이지 않은가. 한정적인 정보 밖에 얻지 못하고 알지 못했기에 나머지 거대 제국은 뒤늦게 하나씩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티무르제국이다. 사마르칸트란 지명이 익숙한 이 제국은 한때 명을 위협할 정도였지만 티무르의 죽음으로 서진은 멈추었다. 이 제국이 다른 몽골제국 우즈벡 칸국에 망한 후 유민들이 남하해 세운 국가가 무굴제국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워 익숙한 나라 이름이다. 저자는 울루스란 이름을 사용하면서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게 만들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저자는 이렇게 각 칸국의 기원과 발전과 쇠퇴 과정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제국의 수많은 국가들을 한 권의 책 속에 욱여 넣은 것이다. 읽으면서 하나의 계통도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책 앞에 4대 울루스가 어떻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화고 분열했는지 지도에 표기해서 보여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솔직히 부족하다. 뭐 계통도를 보여준다고 해도 참고자료 이상의 역할을 나에게 하지 못하겠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이 몽골제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 역사서보다 전문가의 논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을 “몽골제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세계사 무대에서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포스트 몽골 세계의 다양한 시공간을 독자들과 함께 둘러보려 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인 유산 부분에 이르면 솔직히 기억 속에 강하게 남는 것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이 많이 약한 느낌이다. 아니면 내가 많은 부분을 놓쳤거나. 몽골제국이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사파비제국, 청제국과 같은 유라시아 제국의 등장과 발전에 크고 작은 역할을 했다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우리가 알던 원나라는 몽골제국의 일부였을 뿐이다. 세계사를 다른 시각에서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책을 솔직히 읽기 편하지 않다. 낯선 이름과 지명과 국가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충 읽었다고 해도 나중에 중동이나 ~스탄 국가들을 여행하거나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동시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시야를 좀더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의 이름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몇몇 대목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논쟁거리가 적지 않게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역사학자들이 풀 문제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이것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읽다보면 칭기스 혈통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과연 그 시대에 그 정도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책 곳곳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민족을 구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중국 한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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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제국의 후예들-책과함께
    홧팅84 | 2020년 07월 31일
    일단 몽골제국의 휴예들이라는 책은 나에게는 다소 어려웠다. 올해는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고자 계획하였고 학창시절에 소홀히 하였던 국사공부를 차근하 하던 중, 흥미가 생긴 책이어서 선책을 하였다.   다소 어려운 문장과 정보가 있긴 하였지만 읽는 내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배우게 되어서 보람되었다. 또한 많이 노출되지 않은 몽골제국과 그 후예에 대한 정보를 책으로써 전문적으로 배우니 나의 공부의 질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었다.   이제야 완독을 하였지만 앞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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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몽골제국의 휴예들이라는 책은 나에게는 다소 어려웠다.

    올해는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고자 계획하였고 학창시절에 소홀히 하였던 국사공부를

    차근하 하던 중, 흥미가 생긴 책이어서 선책을 하였다.

     

    다소 어려운 문장과 정보가 있긴 하였지만 읽는 내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배우게 되어서

    보람되었다.

    또한 많이 노출되지 않은 몽골제국과 그 후예에 대한 정보를 책으로써 전문적으로 배우니

    나의 공부의 질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었다.

     

    이제야 완독을 하였지만 앞으로 한두번 더 책의 내용을 곱씹어 보며 공부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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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균형 잡힌 역사관 중앙아시아, 칸, 울루스, 계승, 정체성
    jjolpcc | 2020년 07월 31일
    ‘원나라에 한정되었던 몽골에 관한 앎의 지평이 이번 독서를 통해 굉장히 넓어졌다’라는 뭐 그런 말은 못하겠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떠오르는 단어는 ‘칸’, ‘울루스’, ‘계승’, ‘정체성’ 딱 네 가지 뿐이니 말이다. 쉽게 덤벼들었다가 의식의 흐름을 낯선 단어에 맡긴 채 기계적으로 읽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어렵다기 보다는 읽는 종종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했다. 글쓴이는 책을 쓰기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 저자의 깊은 내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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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나라에 한정되었던 몽골에 관한 앎의 지평이 이번 독서를 통해 굉장히 넓어졌다’라는 뭐 그런 말은 못하겠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떠오르는 단어는 ‘칸’, ‘울루스’, ‘계승’, ‘정체성’ 딱 네 가지 뿐이니 말이다. 쉽게 덤벼들었다가 의식의 흐름을 낯선 단어에 맡긴 채 기계적으로 읽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어렵다기 보다는 읽는 종종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했다. 글쓴이는 책을 쓰기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 저자의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동시에 근대사라면 프랑스혁명만 떠올리는 한없이 모자란 세계사 지식을 반성했다. 서구 중심에 편향된 세계사를 공부한 자의 무지를 절절히 깨달았다.

     

    몽골의 향기 즉, 몽골의 유산이 현재 남아있는 장소는 광범위하다.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인도 그리고 또 중동과 동유럽에 더해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중앙아시아는 구소련의 일부요, 중동은 십자군전쟁에서 멈췄고, 인도는 그냥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곳이라고 알고 있었다. 책이 나의 부족한 역사 지식을 선명하게 채워줬다는 말이 아니다. 책은 한쪽으로 치우친 나의 역사관을 균형점으로 조금 옮겨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이렇게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파악은 되는데 뭐라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다. 역사에 관한 나의 내공부족이다. 그런데 뭔가 많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대충 이렇게 들어왔다. 몽골제국은 해체됐으나 이후 그 후예들이 유라시아 각지에서 몽골을 계승한 나라들을 만들고 발전시켰다. 현재 러시아, 인도, 이란 그리고 중국까지도 몽골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나라들이다. 몽골을 계승한 나라들은 무진장 많다. 세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자주 하는 말이지만 책을 읽어 보시라. 재미는 보장하지 못하지만 전혀 몰랐던 새로운 몽골 역사를 접하는 신선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약속드릴 수 있다.

     

    떠오르는 내용을 조금만 써보겠다. 역참은 당시 가장 최첨단의 통신수단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초고속 통신망이랄까? 몽골이 거대한 제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바탕이 역참이었다. 역참제도는 몽골의 후손들을 통해 많은 나라에서 차용, 발전됐다. 대표적으로 모스크바 대공국이 떠오른다. 덧붙여 종교에 관해 몽골은 매우 개방적이었다. 종교에 대한 관용정책은 이질적인 다양성을 포용해 국가의 분란 요소를 강력한 국가 동력으로 통합, 발전시켰다. 이슬람 세력을 포용한 무굴 제국의 황제 악바르가 이에 해당된다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몽골의 후예들은 몽골이 가진 정치, 군사, 경제, 사회, 종교를 아우르는 제도와 정책을 상당부분 계승했으며 이를 인접한 다른 나라에 전파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 러시아와 인도가 몽골의 사회, 정치,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받았고 이를 통해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도 꽤 된다.

     

    책 후반 청나라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연암 박지원이 떠올랐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이 청나라 황제를 만나러 열하에 간 것도 몽골제국의 후예들과 관련이 있다. 청나라는 몽골 만주 동맹이라 불릴 정도로 제국 건설에 몽골세력의 도움이 컸다. 건륭제는 몽골세력과 함께 70년 동안 싸워온 오이라트계 유목국가 준가르(책을 통해 준가르가 비몽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를 완전히 굴복시킨 인물이었다. 당연히 건륭제는 오이라트계를 포함한 몽골계 유목 국가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했고 열하는 지리적으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박지원이 북경에서 황제를 만나지 못하자 황제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열하로 조선의 사신단을 부른다. 결국 열하일기라는 고전이 탄생한 이유에 몽골제국의 후예가 추가된다. 사족이지만 당시 열하에는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가 있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조선과 서북의 유목국가를 지배했던 건륭제는 자신의 치세가 자랑스러웠으리라. 그러니 동북의 작은 나라에서 생일 인사 온 조선의 사신단을 달라이 라마와 열하에 있던 유목국가 왕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를 일이다.(이 문단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했다)

     

    여하튼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우리 역사는 꾸준히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 몽골의 영향은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함께 중앙아시아와 중동도 포함된다. 그렇게 따지면 세계가 하나인데 뭐 그리 대수냐 말할 수 있다. 근데 말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현재는 하나일는지 몰라도 과거에는 아니었다는 것, 무엇보다 근대 여명기의 세계사에서 몽골은 세계의 중심이었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가 이런 몽골에 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은 물론 러시아와 인도에 관련된 역사에 몽매하다. 그래서 세계관이 편협되어 있다. 물론 서양 중심의 세계관으로 세계사를 학습해온 결과일테지만. 사고와 풍습이 서양화 되었다고 역사관이 서양화되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관은 현실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인류는 거대한 난관 앞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일이 많아 질 것이다. 코로나 시대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대미문의 세계사적 환란에 대처하기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마인드는 다양성과 유연성이다. 그런 걸 어디에서 배우겠는가? 당연히 과거의 경험이다.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근접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균형이 잘 잡힌 역사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의미는 바로 균형에 있다. 서구 중심에 편향된 세계사에 균형 잡힌 역사관을 심어준다는 의미.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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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이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남았던 몽골의 영향력 몽골제국, 계승국, 울루스, 무굴제국, 티무르제국
    노란가방 | 2020년 08월 01일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는 어디일까? 정답은 대영제국이다. 그러면 그 다음은? 바로 몽골제국이다. 근대의 발달한 통신과 교통수단, 그리고 무기를 통해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대영제국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지만, 어떻게 몽골은 그보다 5백 년이나 앞서서 아시아와 동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울루스라는 체제가 있었다. 당연히 그 당시 이렇게 넓은 영토를 중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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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는 어디일까정답은 대영제국이다그러면 그 다음은바로 몽골제국이다근대의 발달한 통신과 교통수단그리고 무기를 통해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대영제국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지만어떻게 몽골은 그보다 5백 년이나 앞서서 아시아와 동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울루스라는 체제가 있었다당연히 그 당시 이렇게 넓은 영토를 중앙집권식으로 다스릴 수는 없었고때문에 각지를 울루스라고 불리는 일종의 하위 영역으로 나누어서 일종의 봉건제 국가로 운영했다시간이 지나면서 각 울루스들의 독자성이 강화되는 동시에 서로 분화되었고주변 세력들과의 대결을 거치며 하나씩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비록 새로운 나라로 이름을 바꾸긴 했으나 몽골 제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여러 나라들이 몽골을 계승해 왔다고 말한다역사책을 읽다 보면 한 번씩은 접하게 될 이름들인 무굴제국티무르제국오스만제국 같은 나라들까지도 언급되고 있으니 일단 흥미가 생긴다.

     

     

         어떤 나라를 후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전에 존재했던 나라의 백성들이 이후 그 자리에 세워진 나라로 편입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단지 그 정도로 후계국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물론 저자도 단지 그 정도의 주장만을 하는 건 아니다여기에 후계국으로 소개되는 나라들은 상당수가 몽골을 자신들의 전신으로 스스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인 무굴제국을 보면애초에 무굴이란 몽골이란 뜻의 인도어이었고사실 그 나라의 정식 명칭은 티무르 왕조나 구르칸 왕조라고 불려야 한다고 한다이 제국의 창시자인 바부르는 자신을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자부했다.(관련 삽화만 봐도오늘날 인도인들의 외형과는 사뭇 다른정말 동아시아쪽 외형이 뚜렷한 바부르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에 수립된 여러 왕조들이 공통적으로 자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만큼 몽골제국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 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중앙아시아에 건설된 여러 후계국들이 곧바로 투르크화된 것으로 생각하지만(지금도 위키백과에는 실제로 그런 식의 서술이 보인다), 저자는 여기에서 당시 투르크라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오늘날과는 달랐다는 주장을 한다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는 투르크인이라는 집단명을 티무르 제국의 일원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사용했다는 것(75). 그리고 아예 오늘날과 같은 투르크인의 정체성은 근대 이후에야 발생한 것이고 그 이전에는 내륙아시아 유목민을 좀 더 폭넓게 지칭했다는 주장도 더해진다.(42-43) 그렇다면 이들 계승국가들에서 몽골제국 계승의식은 좀 더 강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오스만제국까지 계승국의 범위를 넓힌 것은 솔직히 약간 무리처럼 느껴진다애초에 오스만 왕조가 일 칸국의 제후국이었고후에 오스만 제국의 제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인근의 또 다른 몽골제국 계승국인 크림칸국의 군주가 그 제위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 정도는 충분한 근거라고 보기엔 약하다.

     

         또위에서 말한 투르크화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해도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현지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혈통이라든지문화라든지 현지화가 이루어졌던 면도 아예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무굴제국만 하더라도 몇 대가 지나면서 왕의 외모에서도 더 이상 몽골족의 외형이 사라지기도 했다.

     

         사실 애초에 계승국이라는 개념을 종주국과 피종주국혹은 문화적 침략의 수단 같은 걸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얼마든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인접국혹은 후계국이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고몽골제국 같은 강한 인상을 남긴 국가들의 영향이 이후 세워진 나라들에 남아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니까.

     

         이 외에도 수많은 칸국들에 관한 언급도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동시에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이제까지 역사라고 하면 보통 서유럽 중심의 역사와 우리나라가 포함된 동아시아 역사 정도였기에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그 인근 지역(동부 유럽이라든지남아시아라든지)의 역사 쪽은 아는 게 별로 없었다좀 더 폭넓은 독서 욕구를 북돋게 해 준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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