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지음
2002-08-24
8,000원 | 272쪽 | 223*152mm
종합평점 : 3 ( 1 명)
<인연>은 '수필'하면 떠오르는 이름인 금아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이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아사꼬와의 이야기 '인연'부터,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로 시작하는 '수필',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로 끝나는 '나의 사랑하는 생활'까지. 이 단아하고 정결한 문체의 수필 80여편 중 단 한 편이라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수필'이란 것이 자꾸만 잡문으로 여겨져 한옆으로 치워지는 세상에서 다시 읽는 <인연>은 교과서를 통해 읽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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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달새
수필
新春
早春
종달새

파리에 부친 편지
오월
가든파티
장미
여성의 미
모시
수상 스키

선물
플루트 플레이어
너무 많다
보기에 따라서는
여성의 편지
장난감
家具
눈물
맛과 멋
호이트 컬렉션
전화
시골 한양국
장수
黃浦灘의 秋夕
용돈
금반지
이사
보스턴 심포니

2. 서영이
엄마
그날
찬란한 시절
서영이에게
어느 날
서영이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瑞英이와 蘭英이
외삼촌 할아버지
인연
유순이
島山
島山 선생께
春園
셰익스피어
陶淵明
로버트 프로스트 1
로버트 프로스트 2
痴翁
어느 學者의 肖像
아인슈타인

3. 皮哥之辯
나의 사랑하는 생활

反射的 光榮
皮哥之辯
이야기

久遠의 女像
낙서
은전 한 닢

순례
비원
紀行小品
토요일
여린 마음
초대
기도
우정
1945년 8월 15일
콩코드 찬가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유머의 기능
문화재 보존
送年
晩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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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에 대한 따뜻한 시각
    이매지 | 2007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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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천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인연'을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필이 바로 '인연'이다. 그 명성때문에 어린시절에 한 번 시도를 했었지만 당시에는 한문이 많이 섞인 책이라서 그 ...
      피천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인연'을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필이 바로 '인연'이다. 그 명성때문에 어린시절에 한 번 시도를 했었지만 당시에는 한문이 많이 섞인 책이라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글자를 읽기에 급급했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인연>이 읽고 싶어 골랐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새로운 판이 나오며 한자가 많이 빠진 것인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피천득 선생님께서 97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며 읽어나간 수필들은 그가 수필에 대해서 쓴 것처럼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하고, 마음의 산책으로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들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피천득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인연'이겠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수필 가운데에는 우리가 접해봤음직한 이야기들이 몇 편 더 숨어있다. 예를 들어, '은전 한 닢'의 경우에는 수많은 패러디 작품이 인터넷에 떠돌만큼 꽤 익숙한 수필이다. (내가 본 바로는 '이 성적표 하나가 갖고 싶었습니다'에서부터 '추천 한 개가 받고 싶었습니다' 등등 다양한 패리디 작품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든 그의 수필들을 읽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 그리고 작은 것을 통해 기쁨을 얻는 법을 알았던 한 사람의 모습이 이 책에는 녹아 있었다. 다른 수필들도 좋았지만 특히 두번째 장에서는 딸 서영이에 대한 애정과 도산 선생이나 셰익스피어, 춘원 등 흔히 위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에 대해 쓴 부분이 인상깊었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그의 수필에 대한 글처럼 그의 글은 읽는 내게 잔잔한 감동을 남겨주었다. 비록 그의 몸은 이 곳을 떠났지만 그의 글만은 남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잔잔한 물결로 채울 것이라 믿는다. 5월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신 글을 보며 그래도 좋아하시던 이 계절에 가신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본다.

  • 나의 생활
    agnes | 2010년 0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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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30p-봄)   봄이 오면 ...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30p-봄)


      봄이 오면 마음이 들뜬다. 옷차림도 날아갈듯 화사하고 가벼워지고 풍경이 다채로워진다. 기숙사에서 학교로 걸어가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개나리, 진달래 이름을 불러보고 이름 모를 연분홍빛 꽃을 보며 마음이 가득 찬다. 이들이 가고 나면 형형색색의 철쭉이 피어 늦봄의 마지막 무도회를 연다. 올해는 꼭 가겠다 한 벗꽃축제에 가지 못해 내년을 기약하며 그렇게 여름을 맞는다.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벗꽃 축제엔 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다. (58p-너무 많다)


      이 세상에는 책이 정말 많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책은 그 일부일 뿐이지만 여전히 많다. 읽고 싶은 책을 적어놓은 목록은 내가 읽어나가는 것에 비해 무서운 속도로 길어진다. 한없이 불어나는 책 목록을 나는 통제할 수가 없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의 제목을 노트에 적어나갈 때 느끼는 환희를 포기하지 못해서일까. 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책을 찾으러 간다. 너무 많다. 많아서 행복하다.


      나는 위대한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의 유사성이 너무나 없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166p-찰스 램)


     어릴 적 읽은 위인전은 참 재미있었다. 위인전 한 질을 2주만에 읽어 치울 정도로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읽고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내 미래 모습을 그려보며 즐거워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 유명한 사람이 되어 TV 프로그램에 나와 선생님 찾겠다고 했을까.
      스무살이 된 지금은 위인전, 전기는 커녕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릴적 그렸던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아직 젊지 않은가? 그치만 나는 안다.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의 길에 평범을 넘어선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어릴 적 꿈에 기대어 그 길을 선택하기에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있다. 위대한 사람들은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싫다지만 그건 변명이다. 모두가 그렇게 변명하고 있어서 암묵적인 동의가 된 것일 뿐. 누군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위인이 될 것이다. 스무 살 나는 누가 될 지 모르는 그 사람을 빛내줄 평민이 되어 줄 생각이다.


      그는 고희가 다 된 노학자이지만 때에 있어서는 젊은이보다 더 현대적이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김은 세대의 차가 아니라 늙기 전에 나를 잃음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176p-치옹)


      영원히청년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힘, 지금의 의욕, 지금의 호기심, 지금의 열정, 지금의 투지, 지금의 모든 것.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걸맞는 지혜가 생긴다지만 나는 아직 싫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두렵다. 나이가 들면 내가 나를 읽고 헤매일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섭다.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 죄 있는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칠색이 영롱한 무지개빛 거짓말일 것이다. (207p-이야기)


      아빠는 허풍이 심하다. 이야기에 풍을 얼마나 섞는지 거의 매일 아빠의 과장된 이야기를 듣는 우리집 세 여자 - 엄마, 나, 여동생 - 는 이제 적당히 걸러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아빠가 별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고 의야해 했지만 가족 모임 할 때마다 어른들끼리 뻔한 거짓말을 주고 받으셨던 것, 다른 가족들과 모였을 때 아빠들끼리 열을 올리며 거의 '누가 누가 허풍 잘치나' 대회를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무지개빛 거짓말을 즐기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보편적인 정서인걸까? 더 가까이서 살펴보면 주로 남자들이 풍을 많이 치고 과장된 자랑을 많이 하는 걸로 봐서 남자들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피천득씨도 남자였지 아마?


      미술품이나 역사적 유물은 오래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더욱 큰 문제다. 경주를 가 보고 마음 아파한 것이 어찌 나 뿐이랴. 정말 너무했다. (267p-문화재 보존)


      시멘트로 여기저기 발라놓은 석굴암이 빛의 속도로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 눈에도 그건 흉해보였다. 신라 천년 고도의 세월을 간직한 곳이라는 위용에 걸맞게 유적의 수는 많이 보존되어 있었지만 보존되어있던 상태는 어린 내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오래 남기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옛날의 숨결을 느끼러 온 곳에서 현대의 삭막하고 무자비한 시멘트 덩이를 봐야 한다니. 하려면 좀 제대로 하자. 그 시대의 건축을 공부하고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상하고 그 시대의 정신을 느끼고 복원공사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요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과거를 잊지 않고 느끼러 온사람들에게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저 김빠지는 정도를 넘어선다. 마음이 아프다.

책 속의 한줄
  •   피천득-[인연]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나는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여러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싶다


     


    -[인연]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soon | 2008-12-28 13:00:00
  •   인연 中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p.17~8



    *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이 성격 파탄자들이라 하여, 또는 신문 3면에는 무서운 사건들이 실린다 하여 나는 너무 상심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대부분이 건전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소설감이 되고 기사 거리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이른 아침 정동 거리에는 뺨이 붉은 어린아이들과 하얀 칼라를 한 여학생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사람이 귀중하다는 것을 배우러 간다. -p.21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은 못하다. -p.29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국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p.30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은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샤가 말하는 자애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무엇을 줄까 미리부터 생각하는 기쁨,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 그리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기쁨, 이런 가지가지의 기쁨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선물을 받는 순간의 기쁨도 크지마는 선물을 푸는 순간의 기쁨이 있다. -p.52~3



    *이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문 분야의 책만 해도 바로 억압을 느낄 지경이요, 참고 문헌만 보아도 곧 숨이 막힐 것 같다. 수많은 명저, 거기다가 다달이 쏟아져 나오는 시시한 책들, 그리고 잡지와 신문이 홍수같이 밀려온다. 책들의 이름과 저자를 많이 아는 것만을 뽐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문과 학생들에게 고전만 읽으라고 일러 준다. 그러나 그 고전이 너무 많다. 이대로 내려가면 고전에 파묻힐 것이다. 영문학사를 강의하다가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을 읽은 듯이 이야기 할 때는 무슨 죄를 짓는 것 같다. 그리고 읽어야 될 책을 못 읽어, 늘 빚에 쪼들리는 사람과 같다. 사서삼경이나 읽고 <두시언해>나 들여다보며, 학자님 노릇을 할 수 있었던 시대가 그립다. -p.58~9



    *찝찔한 눈물, H2O보다는 약간 복잡하더라도 눈물의 분자식은 다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다양함이여! 이별의 눈물, 회상의 눈물, 체념의 눈물,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때의 눈물, 결혼식장에서 딸을 인계하고 나오는 아빠의 눈물, 그 정한이 무엇이든 간에 비 맞은 나무가 청신하게 되듯이 눈물은 마음을 씻어준다. -p.69



    *전화가 주는 혜택은 받으면서 전화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팬 아메리칸 여객기를 타고 앉아서 기계 문명을 저주하는 바라문 승려와 같은 사람이다. 물론 전화는 성가실 때가 많다. 한밤에 걸려오는 전화, 목욕할 때 걸려오는 전화, 독서삼매에 들어있을 때 걸려오는 전화, 게다가 그것이 잘못 걸려온 전화라면 화가 아니 날 수 없다. 그러나 그 화는 금방 가신다. 불쾌한 상대가 아니라면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그다지 짜증나는 일은 아니다. (중략) 전화는 걸지 않더라도 언제나 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그 가치가 더 크다. 전화가 있음으로써 내 집과 친구들 집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못 든든할 때가 있다. 전선이 아니라도 정의 흐름은 언제 어느 데서고 닿을 수 있지마는. -p.75~6

    이매지 | 2007-06-07 01:59:00
  •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에서
     

    [신춘新春]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담배를 끊어보겠다는 둥, 아내에게 좀더 친절하게 하여 주겠다는 둥 별별 실행하기 어려운 결심을 곧잘 한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볼 때난 늘 웃는 낯을 하겟다는 나의 결심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p.22)


     


    [이야기]


    "나는 말주변이 없어"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둔한 사람이다'하는 소리다.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방식에 있다. (p.204-205)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침묵은 말의 준비기간이요, 쉬는 기간이요, 바보들이 체면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p.205)

    하양물감 | 2007-06-29 12:05:00

책속의 한줄 쓰기